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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솔로에겐 소개팅 주선도 힘들다

자청, <역행자>

by 알뜰살뜰 구구샘

제 동생은 모태솔로입니다.


말 그대로예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연애란 걸 못해봤죠. 외모도 특출 나지 않습니다. 출신 대학도 그냥 그래요. 서울대는 아니고, '서울에 있는 대'를 나왔으니까요. 직업도 특별하지 않습니다. 지방 공사 다니고 있어요. 결혼 시장에서는 조건이 중요하다던데, 소위 말하는 '킬각'이 안 나옵니다.


동생은 비혼주의자가 아닙니다.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대요. 그래서 제가 나섰습니다. 소개팅을 주선하기로 한 거죠.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렸습니다. 어디 괜찮은 분 없냐고요. 오오! 한 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결혼 적령기의 여자분이 있대요. 지인이 그 여자분께 의사를 물어보겠답니다.


따르르릉

"그 여자분께선 뭐라고 하셔? 소개팅하시겠대?"

"아뇨 형. 안 하겠대요."

"에? 이유가 뭐래? 우리 동생 나이랑 직업도 모르잖아. 뭐 때문에 안 된 거야?"

"모태솔로라는 말에 고사하시던데요..."


일동, 묵념.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지인도 입을 닫았죠. 그 한 마디에 모든 게 담겨 있었습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해도 돼요. '모태솔로' 누가 지은 낱말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작명 센스가 엄청납니다. 네 음절 안에 모든 걸 담아냅니다.


[연애 책 10권 읽은 모태솔로 vs 10번 이별한 사람]


누구와 소개팅 하고 싶으신가요?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 둘 다 만나볼 순 없어요. 빅테이터는 아니지만 제 주변 지인들로 나름의 스몰데이터를 굴려본 결과, 후자가 이깁니다. 모태솔로보다는 경력자가 낫다는 거죠. 도대체 이런 통계는 왜 나오는 걸까요?


이별한 분은 뭐라도 한 사람입니다. 사귀기라도 해 본 거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어디 쉽나요?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죠. 연애라는 꽃은 그런 역경 속에서 피어납니다. 이성이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겪어 봤습니다. 구질구질 매달려 보기도 했고요. 그 속에서 성장합니다. 조율하고 개선하죠. 그리고 다음 연애에 써먹습니다.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에일리 ver.)'


하지만 제 동생은 다릅니다. 평생 뇌 속에서만 연애해 봤습니다. 법륜스님의 명저인 <스님의 주례사>도 읽었답니다. 하지만 아직 역부족입니다. 실전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고백을 해본 적도 없대요. 도대체 뭘 한 거야 이 녀석아! 30대 중반이 되도록 뭐 한 거니!(취직 준비한다고 자소서 열심히 썼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 들어 보셨죠? 사실 이거 풀문장이 있어요. 바로 "백문이 불여일견, 백견이 불여일각, 백각이 불여일행"입니다. 풀어서 써볼까요?


-백문이 불여일견(유튜브 듣기x100 < 책 보기x1)

-백견이 불여일각(책 보기x100 < 생각정리x1)

-백각이 불여일행(생각정리x100 < 행동하기x1)


유튜브 듣는 것보다 책 한 권 보는 게 낫습니다. 책만 읽고 끝내는 것보다 생각하고 정리하는 게 낫죠. 그리고 생각으로 끝내는 것보다 행동하는 게 낫습니다. 결국 종착지는 '행동'입니다. 엉덩이 떼고 밖으로 나가서 부딪히라는 거죠. 고 아웃사이드!


50만 부 넘게 팔린 이 책, <역행자>의 저자 자청도 그렇게 말합니다. 책만 많이 읽으면 문제가 생긴대요. 자의식만 커져서 자존심만 세진답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많은 거죠. 흔히 말하는 '방구석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싫으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답니다.


행동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실천하기 싫어요. 제 안의 거대한 벽이 저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저에게 속삭이죠. '그냥 어제처럼 살아. 뭐 하러 바꿔? 지금 편하잖아. 좋잖아. 그냥 쉬어." 끄아아!


성공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게 있습니다. 유튜브를 하래요. 다른 SNS와는 차원이 다르답니다. 결국 유튜브를 하지 않을 수 없대요. 모든 길은 이쪽으로 통한답니다. 사용자 수와 파급력 모두 압도적이니까요. 하지만 영상 하나 올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얼굴 공개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악플도 무섭습니다. 거대 권력(인사혁신처, 교육청 등)의 눈치도 봐야 합니다. 모든 영상을 셀프 검열해야 해요. 그걸 뚫어야 영상 업로드라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혓바닥이 길었습니다. 안 되는 이유만 자꾸 풀어냈네요. 하지만 저도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유튜브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걸요.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나은 내일을 기대한다? 헛소리라는 거 저도 알고 있습니다. 엉엉.(입 닫고 영상 올려!!!)


다시 동생의 사례로 돌아옵니다. 제 동생이 소개팅 주선 과정에서 살아남으려면? 모태솔로 딱지를 끊어야 합니다. 아이러니죠? 신입사원을 모집하는 데 경력직만 채용하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현실은 냉혹합니다. 어떻게든 부딪혀야 합니다. 하지만 여자친구를 돈 주고 살 순 없습니다. 그건 범죄니까요. 결국 정답은 하나입니다. 동생 스스로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꽃에는 나비가 앉으니까요. 훠이훠이 쫓아내도 나비는 다시 날아듭니다. 꽃에서 향기가 난다면 말이죠.


저는 오늘도 동생에게 잔소리를 시전 합니다.

-좋은 향기: 매일 씻어라. 매일 옷 세탁해라.

-좋은 피부: 좋은 재료 먹어라. 운동해라. 잘 자라.

-좋은 생각: 책 읽어라. 일기 써라. 기록해라.


...형의 잔소리가 심하긴 하네요. 용돈도 한 푼 안 주면서^^;...




사진: Unsplash의Jay Ruze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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