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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뜰살뜰 구구샘 Apr 18. 2024

죄송해요 사장님! 월급쟁이라 몰랐어요

국세청, <세금 절약 가이드1(2023)>

나는 월급쟁이다. 10년 넘게 월급만 받았다. 심지어 그냥 월급이 아니라 나랏녹이다. 교사는 공무원이고, 공무원은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니까 말이다.


교사는 겸직이 힘들다. 끽해야 책을 쓰거나 강의 같은 걸 하는 게 전부다. 당연히 자영업은 꿈도 못 꾼다. 그러므로 소위 '사장님'들이 활동하시는 곳은 나에겐 미지의 세계다.


17일이다. 띵동. 월급이 들어왔다. 한 달 동안 꽁꽁 묶어 뒀던 녀석을 오늘만큼은 봉인해제해도 될 것 같다. 바로 소비라는 넘이다. 어디다가 돈을 투척해 볼까? 옳지! 화장실 타일이 부풀어 올랐는데, 이걸 해결해야겠다. 공사 업체를 찾아볼까?


"사장님, 혹시 화장실 벽면 타일 수리하려면 얼마죠?"

"덧방 말고 완전 철거 후 시공 말씀하시는 거죠?"

"네! 한쪽 벽면만 싹 바꾸고 싶어서요~"

"그럼 50만 원입니다. 부가세 포함 55만 원이에요~"


50만 원이면 50만 원이지, 55만 원은 뭘까? 그냥 처음부터 55만 원이라고 하면 안 되나? 여태까지 난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완전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평생 월급쟁이로 살아서 세상 물정을 몰랐던 거다. 이런 나의 뚝배기를 깨기 위해 국세청이 나섰다. 바로 <세금 절약 가이드>를 내준 거다.


책을 다 읽었다. 후회된다. 여태까지 사장님들을 오해했던 것이다. 난 여태까지 사장님들이 뭔가 꼼수를 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사장님들은 내 수고를 덜어주셨던 거다. 죄송해요 사장님! 월급쟁이라서 몰랐어요 엉엉!


책에 나오는 부가세의 메커니즘은 아래와 같다.


1.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한 '나'는

2. 구매 가격의 10%를 부가세로 내야 함

3. 근데 이걸 일일이 모아 홈택스에서 신고하면? 너무 귀찮음

4. 그래서 '사장님'께서 나 대신 이 수고를 해주심

5. "부가세 포함 55만 원이에요~"

     = "나는 50만 원 법니다. 고객님은 5만 원 세금으로 내셔야 하는데, 그 작업은 제가 대신해드릴게요. 그래서 55만 원이에요~"


세상이 다시 보인다. 그 전까진 사장님들을 미워(?)했다. 죄송하지만 진짜다. 말 바꾸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예시 1) 이사비 100만 원이라면서! 이사 다 끝냈더니 왜 110만 원 달라고 하시지? 이거 사기 아닌가!

예시 2) 법무사 수수료 30만 원이라면서! 등기 치는 당일 되니까 왜 33만 원 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예시 3) 인테리어 견적 낼 땐 3000만 원이면 된다면서요! 근데 왜 공사 끝나니 3300만 원 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 소리를 사장님께서 들으셨다면? 정말 서운하셨을 거다. 본인들은 세금 신고 대신해 주고 원망받은 상황인 거니까. 물론 내가 이 지경(?)이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나도 나름의 변명을 하고 싶다.


편의점에 들어가 보자. 과자 한 봉지에 1500원이란다. 가격표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아르바이트생에게 과자 봉지를 내밀었다. 1500원 내면 된단다. 삼성페이로 산뜻하게 결제까지 끝냈다. 농협뱅킹에서 경쾌한 출금 알람이 울렸다. 1500원이 빠져나갔단다. 그 어디에도 1650원은 없다.


방금 편의점 사장님은 1500원을 풀로 벌진 못하셨을 것이다. 그중 150원 정도는 부가세로 뜯기셨(?)을 거다. 실제론 1350원 정도 번 택이겠지. 난 여태까지 이런 세상에서 살아왔다. 바로 '부가세 포함' 세상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도 많다. 이사비, 인테리어, 중개사 수수료, 법무사나 세무사 수수료 같은 것 말이다. 이런 분야는 '부가세 별도' 세상이다.


나는 부가세 포함 세상에서 평생을 살았다. 월급쟁이라서 더더욱 그렇다. 부가세 신고는 딴 나라 이야기였다. 그런 내가 '부가세 별도'를 만났으니 어땠겠는가? '이거 뭐야? 왜 10% 더 뜯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월급쟁이에게 세금 신고는 낯설다. 끽해야 1년에 한 번 연말정산 하는 게 전부다. 그마저도 국세청이랑 다이렉트로 연결되는 건 없다. 세무사를 만날 일도 드물다. 기장 같은 것도 안 한다. 세금계산서 같은 것도 본 적 없다. 그냥 행정실에 서류만 제출하면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소득이 조금만 다양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월급 이외에 다른 소득이 생기면 종합소득세를 신고해야 한다. 집이 여러 채가 되면 간주임대료도 내야 한다. 집이나 주식을 판다면 양도세 신고도 필요하다. 이런 거 챙기는 거 은근히 일이다.


세금 신고는 번거롭다. 그런데 부가세 신고를 사장님들께서 대신해 준다니!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사장님! 저 대신 부가세 신고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여태까지 오해해서 죄송해요. 앞으로 부가세 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드릴게요!


(아참, 설마 간이과세자는 아니시죠? 크흠!)



사진: Unsplash의Alexander Mi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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