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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뜰살뜰 구구샘 May 09. 2024

결혼까지 생각했어. 왜냐고?

데이비드 버스, <욕망의 진화>

나는 초등교사다. 올해는 3학년 담임을 맡았다. 엊그제 과학 수업에 재밌는 주제가 나왔다. 바로 '동물의 암수가 하는 일' 비교하기다. 공동육아부터 독박육아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1. 공동육아: 제비

2. 엄마 독박: 곰

3. 아빠 독박: 물자라

4. 방치: 바다거북


모든 생명체의 제1미션은 종족번식이다. 제비든 곰이든 물자라든 바다거북이든 다 똑같다. 어떻게든 후손을 많이 퍼트리려고 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 다 다르다. 도대체 왜 이런 걸까?


최재천 교수님이었으면 답을 아셨을 거다. 하지만 나는 생태학자가 아니다. 그래서 그냥 방구석 뇌피셜만 끼적여 본다.




1. 제비: 다른 새에 비해서 덩치 작음. 둘이서 알 지키는 게 유리함. 한쪽이 먹이 물어오는 동안, 다른 한쪽이 둥지 지킴. 맞벌이하러 나갔다가는 뱀한테 둥지 다 털릴 수 있음


2. 곰: 최상위 포식자임. 어차피 엄마곰 아빠곰 같이 다닐 필요가 없음. 엄마 곰만 있어도 다들 알아서 도망감. 그래서 굳이 아빠가 옆에 있을 필요가 없음(아빠 곰은 젖도 안 나와서 무쓸모)


3. 물자라: 아빠가 등에 알을 짊어지고 다님. 심지어 교미 후에 암컷을 쫓아내기도 한다고. 혹시 배고픈 암컷이 자기가 낳은 알 먹을까 봐 그렇다고 함.(ebs다큐에 나옴). 왜 아빠가 더 절박한 걸까?


4. 바다거북: 뭍으로 올라와서 알만 낳고 바다로 돌아감. 알에서 깬 새끼들은 각자도생임. 그냥 물량으로 승부. 가는 길에 잡아먹히는 녀석도 있고, 운 좋게 살아남는 녀석도 있음.




이제 인간을 알아보자. 다들 아는 것처럼 우리는 공동육아하는 것으로 진화했다. 제비와 제일 가까울 것이다. 정확히는 공동육아를 넘어 집단육아였다. 동굴에 살던 우리 선조들 중에 무리를 짓지 않은 분들은 다 돌아가셨을 것이다. 어쨌든 결혼하고 대가족을 이루는 게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다.


그런데 굳이 왜 '결혼'이라는 걸 했을까? 그냥 집단으로 살면 되지 않나? 침팬지나 오랑우탄들도 다들 그렇게 살잖아. 그런데 왜 인간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지금까지 유지하는 걸까?


그 해답은 바로 이 책 <욕망의 진화>에 나온다. "양쪽 성별 모두 이득이 되니까 결혼한다."라는 것이다.


-남성: 자식이 '내 핏줄'이라는 확신이 생김(21세기의 도덕관으로 재단하지 말자^^;)

-여성: 남편에게 다양한 도움 받을 수 있음(적어도 옆 부족이 쳐들어왔을 때 책임지고 지켜줌)


2024년에 이런 말을 들으면 역겨울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러니 '동굴에 살던 우리 조상님'을 떠올리자. 마음이 한결 편할 것이다. 어차피 5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피엔스의 본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음 편하게 단군 할아버지 이전 시대를 떠올리자.




내 결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이 있다. 바로 법륜스님이 지은 <스님의 주례사>다. 총각 때부터 몇 번이고 돌려 읽었다. 결혼도 안 한 분께 결혼 가르침을 얻다니, 뭔가 오묘하지만 상관없다. 스님 말대로 했더니 장가도 갔고 결혼 생활도 잘하고 있다.


<스님의 주례사>엔 이런 표현이 나온다.(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대략 느낌만 적어본다.)


1. 자기는 3을 주면서, 상대에겐 7을 받으려고 하니 문제가 됩니다.

2. 나는 7을 주고, 상대에겐 3을 받길 기대하면? 연애든 결혼이든 순탄해집니다.


나는 올해로 결혼 6년 차다. 그 사이 아내와 지지고 볶고 열심히 살았다. 미중갈등보다 더 심한 대치상황에 빠질 때면 스님의 주례사를 떠올렸다. '그래, 7을 주고 3을 받자! 그게 결혼이다!!!'


하지만 잘 안 됐다.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나는 왜 '스님의 주례사'대로 살지 못할까? 그런데 드디어 궁금증이 풀렸다. 이 책 <욕망의 진화>에 답이 나와 있었다. 그건 바로


'사피엔스는 기본적으로 3을 주고 7을 받으려 합니다^^'


조상님들이 물려준 DNA가 그런데 어쩌겠는가? 동굴에 살던 시기에 스님 말처럼 살았다면? 그냥 꼴까닥이다. 자기 꺼 어떻게든 챙긴 조상님만 야생에서 살아남았을 것이다. 우리의 몸속엔 그 피가 다 들어있다.


결국 결혼은 거래다. 조상님들도 그렇게 살아왔다. 여자 조상님은 결혼을 대가로 남편의 보호를 약속받았다. 남자 조상님은 결혼을 대가로 자식에 자기 피가 섞였다는 확신을 얻었다. 두 거래자가 손을 잡았다. 하객들 모셔 놓고 공증까지 받았다. 결국 결혼은 거래다.



그럼 법륜스님의 말씀은 틀린 걸까?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7주고 3받기'는 매우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풍요로움이 극대화된 21세기에는 더더욱 효과적이다. 동굴에 살던 여자 조상님도 7을 받으시면 환호하셨을 거다.


물론 결혼 이후에 한쪽이 돌변하면 얘기가 다르다. 처음 사랑 끝까지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 여태껏 '결혼은 계약'이라고 외쳤다. 계약서에 적힌 특약 안 지키면 위약금 물어야 한다.


아참, 여자 조상님께서 구체적으로 어떤 남자를 좋아하셨냐고? 그건 이 책 <욕망의 진화>에 실컷 나온다. 요새 말로 '플러팅' 잘하고 싶은 남자분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아쉽게도 난 이걸 장가간 뒤에야 봐버렸넹?




아, 안 아쉽다. 전혀 안 아쉽다. 여보! 나 하나도 안 아쉬워~!



사진: Unsplash의Mariano Ri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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