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입주할게요
부동산 직원의 차를 타기 전 다시 심호흡했다. 이번이 몇 번째 집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사흘간 부동산 직원과 함께 적당한 월세집을 보러다녔지만, 크게 소득이 없었다. 살고 있던 건물이 관리비 미납으로 도저히 관리가 되지 않으니 이사를 해야겠다고 결정한 뒤로 매일같이 집을 보러 다녔다. 또 다른 전셋집은 구할 수 없었다. 한 번 사기당한 전세금을 언제 회수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또 어딘가에 목돈을 묶어둬야 한다는 게 겁이 났고, 무엇보다 또 다른 전셋집을 구할 만한 목돈도 없었다. 마침 부산시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를 대상으로 월세 지원 정책을 시행 중이어서, 큰 고민 없이 이사를 결정할 수 있었다.
"그 가격에 맞추려면 지금 이 정도가 최선이에요."
최대한 지자체의 지원금에 맞춰 집을 보러 다니다 보니, 큰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썩 마음에 드는 집이 나타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월세(조건)를 올리면, 지원금 외에 추가로 돈을 들여야 했다. 전세금보다 훨씬 적은 월세보증금도 지금의 나에게는 큰 부담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지출을 줄이는 쪽을 택했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과 차를 타고 다니며 집을 보러 다니는 것.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전세사기가 아니었다면 지금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기에 유쾌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어깨도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집주인은 믿을만한가요?"
집을 볼 때마다 입버릇처럼 물었다. 조금 우스운 질문이기도 했다. 집주인이 믿을 만 한지 아닌지, 직원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걸 알면서도 '이 동네에서 오랫동안 임대업 하신 분이세요' 같은 답변을 들으면 조금 안심했다. 그러면서도 의심했다. 오랫동안 임대업 했어도 다음 달 파산할지, 전세사기를 칠지 어떻게 알아? 무척 의미 없는 질문과 답변이었다. 나는 두 번 사기당하지 않기 위해 부동산에 들를 때마다 전세사기 피해자임을 밝혔고, '나는 이미 피해자니까 부디 다음번엔 사기당하지 않을 안심할 만한 집을 소개해주세요'라는 암묵적인 압박감을 그들에게 전달했다. 다행스럽게, 피해 건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괜찮은 조건의 집이 나타났다. "입주는 언제 가능하신가요?"라는 새 집주인의 질문에 "내일도 가능해요"라고 답하고 바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중개수수료가 들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만 했다.
계약서를 들고 나와 집으로 향했다. 공동 현관 앞에 쓰레기가 나뒹구는 건물을 탈출할 수 있다니 당장은 안도감이 들었다. 매일 퇴근할 때마다 거대한 우울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는데, 최소한 이제 이곳으로 오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긴 한 걸까. 새 집에 이사 간다고 당장 전세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해결된 것도 없는데,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곧바로 걱정이 밀려왔다. 이사를 해야 한다. 짐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엄연히 '이사'다. 전자레인지, 책, 사계절 입는 옷, 화장품, 잡동사니, 그릇, 밥솥 등 꽤 많았다. 그렇다고 이삿짐센터를 부르려니 돈이 아까웠다.(지자체에서 이주비 지원이 별도 책정되는지는 이사 후에 알게 되어 땅을 쳤다) 옮길 집은 도보로 5분 거리였다.
가방에 밥통을 넣고, 캐리어에 옷을 최대한 많이 넣어 첫 번째 이사를 시작했다. 그렇다. 첫 번째 이사다. 왕복 10분 거리를 걸어서 첫 번째 짐을 새 집에 옮겼다. 이제 시작이었다. 걸어서 굉장히 가까운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짐을 들고 가려니 몇 배는 멀어 보였다. 문제는 이걸 몇 번은 더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불을 업고 다시 캐리어를 끌고 한나절간 네 번 정도 왕복했다. 내가 오고 간 거리에 카페와 식당 편의점 등이 있었는데, 만약 거기서 누군가 나를 지켜봤다면 정말 이상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캐리어와 가방을 들고 왕복하는 어떤 사람. 세 번째 이사가 끝날 무렵 몸이 무척 지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번에 많은 짐을 옮기려고 무리하게 챙기다 보니 캐리어 하나에 백팩 보조가방 2개를 들고 옮기기도 했다. 회수를 거듭할수록 짐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았고, 어깨는 더 아래로 처졌다. 문제는 이걸 고스란히 몇 번은 더 반복해야 이사가 끝난다는 것이었다. 나를 짓누르는 게 짐이 아니라 인생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왕복 10분 거리의 도로가 고된 순례길 같기도 했고, 나는 그곳을 끊임없이 오고 가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시포스 같기도 했다.
급한 짐을 우선 옮기고, 이후부터는 퇴근하면서 한 번, 주말에 두세 번 왕복하는 식으로 첫 번째 이사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마지막 이삿짐을 옮겼다. 그때의 후련함은 오랫동안 잊지 못한다. 하지만 기쁘진 않았다. 아직 해결된 건 없고, 단지 그곳을 벗어난 것뿐이니까. 그래도 이사를 마쳤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그날밤은 무척 깊은 잠에 든 것으로 기억한다. 일주일은 몸도 마음도 무척 힘든 한 주였다. 이것도 나에게 귀중한 경험이 될까? 아주 나중에, 내가 걸어서 이사했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무용담처럼 밝게 이야기하면서 "그땐 그랬지만 결국 전세금도 다 받고, 인생의 귀중한 경험이었지"라고 말할 수 있기를, 자기 전에 간절히 기도했던 것 같다.
참고/전세사기를 당한 이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면, 먼저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배당금을 받을 때까지 소유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므로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해야 한다. 이사를 가도 그 집에 대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가지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