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게 다 꿈이었다고?

도넛 빵 위 셋과 도넛 안에 셋.

by 빨양c


"응애앵? (여기가 어디지..?)"

내 몸이 둥실둥실 떠있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여기가 장모님 집이 아닌 건 분명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새하얀 네모난 공간이다.

한눈에 보려고 마음먹으면 볼 수 있을 것 같은 방인데, 또 세상의 끝처럼 새하얗게 펼쳐져 볼 수 없을 것 같은 이상한 공간이다. 그 공간 한가운데 붉은빛이 도는 하얀색 원형 테이블이 있고 그 원형 테이블 안은 뻥 뚫려있다. 그래 얼마 전 나만 쏙 빼놓고 엄빠가 먹던 도넛 같은 모양. 원형 테이블 바깥 부분, 그러니까 도넛 빵 부분엔 세 개의 형상이 앉아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흐릿한 건지 너무 밝아서인지 내 0세 눈으로는 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원형 테이블 안쪽 부분, 도넛 가운데 뚫린 부분에 다른 셋의 형상이 서있다.

나는 조심스레 가까이 둥실둥실 접근해본다.맙소사.

낯익은 둘과 처음 보는 하나가 서 있다.

삼신과 염라, 그리고 새하얗게 빛나는 형상 하나.

삼신은 내가 아는 모습과 다르게 은색 단발 머리카락이 아닌, 진한 보랏빛 단발을 하고 있고, 격식을 갖춘 은빛 옷을 입고 있다. 옷 가운데 동그란 출(出) 마크가 새겨져 있어 되게.. 뭐랄까.. 촌스럽다. 줘도 안 입을 랭. 끄앙.


삼신 옆에는 지금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염라가 보인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평소 격식 있는 옷을 좋아하는 염라의 옷과 비슷하지만, 등에 사(死) 마크가 붉게 수놓아져 있다. 이건 삼신 거보다 더 촌스럽다. 어휴. 저런 건 어디서들 저렇게 구하는 건지.


'음 저 둘 사이에 저건 뭘까. 그래도 삼신 염라보단 멋져 보이긴 하는데.'

나머지 새하얀 존재는 과연 무엇인지 보기 위해 내 작은 눈꺼풀을 손으로 비벼보지만 명확하지 않다.

내 눈엔 너무 밝게 빛난달까? 볼수록 눈이 아픈 거 같아 손쉽게 패스!


고요한 적막을 깨고 보라색 삼신이 말한다.

“인간은 인간의 숙명이 있고, 우리는 우리의 숙명이 있는 법. 인간이 숙명을 어기면 우리는 우리의 정해진 숙명을 따라 인간의 숙명을 단죄하는 게 바로 우리의 숙명이지 않은가?”

서릿발 쏟아지듯 냉랭한 목소리의 삼신이 도넛 빵 위 세 존재 에게 말한다.

“삼신의 말은 지나치게 결과만 보고 숙명을 논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제 옆에 있는 천국 천사 미카엘과 제가 직접 저 혼을 심문하였고, 실제 현생에서 있었던 일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판단한 결과는..”

삼신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염라가 손가락으로 원형 테이블 위 공간을 가리키며 쩌렁쩌렁한 소리로 말한다.

‘염라가 저렇게 큰 목소리로 말할 수도 있구나.’

소리 지르는 걸 본 적이 없던 것 같아 나는 염라의 큰 목소리가 놀랍고 신기했다.

그리고 저렇게나 말 잘하는 염라라니. 어색하군 어색해!


나는 염라가 가리킨 위쪽을 간신히 올려다본다.

틈틈이 터미 타임으로 목 근육 운동을 한 나지만, 고개를 올리는 게 여전히 조금은 버겁다.

'응? 빨강 솜뭉치..?'

삼신이 현생에서 내게 붙여준 하얀 솜뭉치보다 약간 크고, 색깔이 붉은 솜뭉치가 원형 테이블 위 저 먼 윗 공간에 떠있다. 그 솜뭉치 보다 더 위쪽으로는 법(法)의 검은 글씨가 하얀 공간 천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니 하얀 천장을 계속 채워가고 있달까? 신기하다.


아무튼 천장에 매달린 솜뭉치는 묶여있는 건지, 아무런 미동도 없이 멍하니 붉은빛만 띠고 있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저게 뭔지 확실히 알고 싶어 눈을 부릅뜨지만, 윽. 신생아의 눈으론 그저 빨강 솜뭉치로만 보일 뿐. 신생아의 목 근육은 어찌나 가냘픈지. 터미 타임 연습 시간이 지나면 여지없이 바닥으로 축 처지는 내 고개. 응앵!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높으신. 어르신. 해주신. 삶. 미카엘. 호수. 죽음. 네 번. 지옥. 인간. 세상. 환생. 저세상. 희생. 천국. 변호. 하늘. 제약. 또 미카엘. 삼신. 염라. 비. 자동차. 검은. 높으신. 해주신. 어르신. 한계 등등”


위 단어들이 도넛 안 셋과, 도넛 위 셋 사이 대화에 오갔다.

음.. 잘 모르겠지만 좀 들어보니 뻔한 저세상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인 듯하다. 뻔한 저세상 판타지 노노. 뻔한 회귀물 노노!!


'음.. 근데 나 꿈꾸고 있는 중인가? 아니면 저세상 기억?'

그러다 너무 많은 대화가 들려서인지 아니면 신생아의 저질 체력 때문인지 갑자기 만사가 귀찮아지더니 급 관심이 1도 안 간다. 열도 좀 나는 거 같구.

그나마 좀 관심 가는 건, 삼신의 보라색 머리가 꽤나 잘 어울린다는 것과 염라의 큰 목소리가 신기하다는 것. 그리고 염라가 가리키는 저 하얀빛을 내는 미카엘이란 존재가 조금 궁금하다는 것 정도?

그마저도 오래가진 않는다.

뭐.. 그들은 엄청 긴장한 듯 뭔가 팽팽해 보였지만.


'따분하다 지루하다 재미없다

엄빠 장모님 보고 싶다'

그렇게 점점 멍해지는 내 0세 눈꺼풀이 스르륵 졸린 듯 감기고 있는데, 순간 도넛 속 염라의 붉은 눈동자가 번쩍이는가 싶더니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게 느껴진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 눈빛을 따라 공간 위 천장에 매달려있던 붉은 솜뭉치도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헉”

나는 마치 걸리면 안 될 걸 걸린 것처럼 숨이 턱 막힌다.


“내가 보여?”



“축뽁이 괜찮아?! 땀을 많이 흘리네!!

사위! 냉장고에서 냉찜질 팩 좀 꺼내다 애기 등에 좀 대보게.”

흐릿하게 장모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는 내 무쌍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려 실눈을 떠본다.

내 이마 부분에 있는 *대천문이 엄청 빨리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다.

하얀 솜뭉치가 장모님 얼굴 옆에서 웬일인지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꿈인가.. 기분 나쁜 꿈..”

열에 취해서였을까.

나는 의식을 잃듯 그대로 잠에 빠져버렸다.



★축뽁이의 1분 육아 꿀팁!
*대천문이란?
대천문은 신생아의 이마 윗부분에 위치하여, 아직 머리가 단단해지기 전 말랑말랑한 부분을 말해요! 처음 수개월간은 범위가 점점 넓어지지만 그 후에는 축소되어 생후 2년 후에는 완전히 닫힌다고 하네요~! 대천문은 유아의 이상한 증후를 관찰, 발견하기 위한 중요한 부위라고 하구.. 제 대천문도 아직 열려있어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머리가 숨을 쉬는 듯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볼 수 있답니다 :)
친절한 축뽁이의 오늘 육아 꿀팁 끗. 아니 끝!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대천문(anterior fontanella, 大泉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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