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축뽁이의 100일 파뤼 현장 생중계

예쓰! 소리 벗고 기저귀 질러!

by 빨양c


“떡은 이쪽에다 놓자. 그리고 반지 받은 거는 저쪽에 놓고, 선물 받은 이 신발도 상 위에 올리자!”

엄마의 들뜬 목소리가 들린다.


“이 현수막은 요정도 높이 걸면 되겠지? 여보 위에 수평 맞나 좀 봐줄래?”

뭘 하는지 끙끙대는 아빠의 목소리도 들리고.

“나는 잡채 얼른 마무리 짓고 오겠네. 이런 날 잡채 같은 면을 먹어야 오래오래 산다고.”

한창 요리 중이신 장모님의 목소리도 저 멀리서 들려온다.


“음냐음냐. 솜뭉치 뭐야. 왜 이리 시끄러워 이거.”

나도 한마디 빠질 수 없지! 아침부터 온 가족이 무슨 일인지 정신 사나워 강제 기상 당한 나는 아주아주 심기가 불편해 한마디 해본다. 이럴 땐 모다? 만만한 솜뭉치 잡기 뚜시뚜시!


“요 쪼그만 게 벌써 100일이 되었단 말이지?”

“그러게요. 시간 참 빠르네요. 벌써!”

“맞아 맞아. 정말 아기 키우다 보면 시간이 어쩜 이리 빨리 가는지.”


'헉. 깜짝야!‘

실눈 떴는데 평소라면 천장이 보일 내 시야 앞에 장모님, 엄마, 아빠 셋이 둥그렇게 앉아 머리를 맞대고 나를 가까이서 내려다보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맞댄 세 명의 머리 사이에 있는 솜뭉치는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뭐지 이 상황은.... 아!'

아하. 생각났다! 며칠 전부터 그렇게나 말했던 100일 파티가 오늘인가 보다.

그러게. 시간 참 빠르네. 삼신이랑 염라랑 요상한 영상 보면서 현생 하네 마네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니 말야. 그사이 이제 나도 제법 사람다운(?) 모습을 갖췄지. 점점 더 훌륭해지는 이 힙한 자태는 어쩌냔 말이지 헤헿.


오늘을 위해 엄마가 특별히 내 100일 옷도 준비해줬다.

사실 평소 장모님 집에서는 그냥 내복 윗도리에 쿨하게 바지 따위 입지도 않고 기저귀만 입고 벌렁 누워있었지. 이게 바로 요즘애들 힙한 감성이라 이 말씀이야! 엣헴!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올 이게 뭐야? 예전 라디오에서 들은 적이 있는 영국 신사들만 입는다는 투버튼 정장 조끼까지 있는 차콜색 정장 패션이다. 라디오에서는 100일 때 한복 입힌다고 하던데, 우리 엄마는 센스 있게 요론 귀티 나는 옷을 준비해줬나 보다. 헛. 거기다 머리엔 베레모까지? 완벽하군 으헤헿. 조타 조아!

아빠가 번쩍 들더니 100일 상 한가운데 호텔에서나 볼 법한 하얀 시트로 덮어놓은 범보 의자에 옷을 차려입은 나를 앉힌다.


'오호? 여기 이렇게 앉으니 아주 기분 좋은데?'

멋진 정장을 입고 하얀 호텔 시트 위에 앉아 상 위에서 이렇게 세상을 굽어 살피자니 왕이 된 것 같..아 이건 너무 간 거 같고, 그냥 상에 뭐가 차려져 있나 좀 볼까.

어디 보자. 일단 내 오른쪽에는 까만 한자로 백일이라고 쓰여있는 하얀 백설기 떡케이크가 있고, 그 앞에는 백백백백백 글자가 쓰여있는 성벽 모양 백설기가 보인다.

그 옆에는 초록빛 샤인 머스캣, 노란 오렌지, 빨간 사과, 구릿빛 배, 그리고 내 100일 상을 지키려는 듯 꼿꼿이 서있는 든든한 파인애플 장군이 우뚝 솟아있다. 색감이 아주 화려하니 마음에 든다. 다시 생각해도 현생에서 가장 행복한 것 중 하나는 색을 볼 수 있다는 것 같다.

'세상엔 색이 있어 이렇게나 아름다운 것 아닐까.'

100일쯤 되니 0춘기가 왔나 요새 괜히 신생아의 감성이 폭발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상 왼쪽으로는 오웃 저게 뭐야! 번쩍번쩍 빛나는 금반지 7개가 번쩍이고 있다. 근데 왜 7개지?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7개가 번쩍이고 있다. 그 뒤로는 요상한 오리모양 장난감과 파란 신발 등 형형색색의 귀여운 장난감들이 진열되어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 앞쪽에는 앙팡이라고 쓰여있는 요구르트 병들이 상 맨 앞쪽에 쫘악 줄지어 놓여 마치 백일상 한가운데 있는 나를 지키는 성벽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내 뒤로는 벽이 있는데

'오웃 대박쓰!!! 이게 바로 그 현수막이구만?'

며칠 전부터 아빠가 방에 콕 처박혀 컴퓨터란 기계로 뭔가 뚝딱뚝딱 클릭클릭 해대며 만들었다는 현수막이 이건가보다. 이건 인정! 킹정! 잘 만들었다 진짜!

현수막이 엄청 크다. 내 뒤 벽면을 다 덮고 있을 정도? 왼쪽에는 당근을 안고 있는 내 50일 사진이 딱 보이고, 만화 말풍선으로 “우주 최강 귀요미 나. 축뽁”이라 쓰여있다. 오른쪽에는 '축뽁이 100일 축하해'라는 글씨가 보이고 그 밑에는 아빠, 엄마, 장모님 얼굴이 작게 들어가 있다. 전체 색은 옆은 민트색인 거 같은데 처음 보는 색인데도 너무 마음에 든다.

아빠가 이런데 소질이 있었어? 도대체 저 아빠 사람의 직업은 멀까. 내심 궁금해진다. 이런 현수막 디자인하는 사람인가?


아무튼 이렇게 떠억하고 앉아있자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100일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자 사진 촬영부터 하자! 여보가 축뽁이 왼쪽에 서고 장모님이 오른쪽에 서시고, 제가 축뽁이 뒤로 뛰어갈게요! 자 찍을게요!”

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가 너튜브만 보던 네모난 기계를 앞에 세우더니 타이머를 맞추고 호다닥 내 옆으로 뛰어온다. 뛰어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나는 그만 빵 터져버렸다.

찰칵-


"앗! 축뽁이 활짝 웃는 것 봐! 행복한가 봐!!"

엄마의 행복해하는 목소리. 저 아빠 뛰어오는 궁둥짝 보고 안 웃게 생겼냐고요 헤헿.


“자! 그럼 오늘의 하이라이트! 시작해볼까? 흐흐”

아빠가 뭔가 음침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갑자기 엄빠, 장모님이 내게 달려들더니 베레모부터 해서 아침부터 졸린 나를 깨워 간신히 입혔던 옷을 싹 벗겨버린다. 덕분에 나는 벌거숭이가 되고, 내 소중이도 아주 자랑스럽게 세상과 조우한다.

찰칵찰칵찰칵찰칵-

그러더니 엄마랑 한번, 아빠랑 한번, 장모님이랑 한번, 엄빠랑 셋이 한번, 장모님까지 넷이 한번.

그렇게 벌거벗은 나를 안고 사진을 마구 찍더라. 이럴 거면 영국 신사 정장은 왜 입혔던 거야 정말!

“옷 입힌 거보다 벗은 게 더 잘 나왔는데?”

아빠의 저 만족스러워하는 목소리. 아주 얄밉다. 이거 이거 신생아 초상권 보호도 좀 해주라고. 흥.

솜뭉치가 나를 비웃듯 옆에서 킥킥댄다. 저저저 저것도 아주 얄미워 하여튼!

그렇게 사진도 많이 찍고, 떡도 자르고, 과일도 씻어서 먹고 하며 즐거운 100일 파티를 보냈다.

나야 뭐 분유만 쪽쪽 빨 수밖에 없었지만. 나중에 나도 꼭 다 맛봐야지 흥!

음.. 근데 갑자기 문득 든 생각인데, 생일도 아닌데 왜 100일을 챙기는 걸까 궁금해진다.

내 궁금증과 함께 솜뭉치가 갑자기 녹음 파일 하나를 재생시킨다.


"100일은 사실 신생아를 위한 잔치라기보단, 100일 동안 몸을 잘 회복한 엄마를 축하하기 위한 잔치라네.

100일이 지나면 그동안 출산으로 인해 많이 망가진 엄마의 몸이 그나마 좀 나아진 거라고. 그리고 이렇게 떡이랑 과일도 풍성하게 해서 주변에 돌리고 하면서 아기의 복도 비는 거고."

장모님의 목소리다.


당연히 나는 산모가 되어본 적 없으니 어떤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엄마에 대한 왠지 모를 고마움에 자꾸 코끝이 찡해지긴 했다. 후. 이 0춘기 감성이란!!

‘하- 그러고 보니 정말 100일이 순식간에 가긴 하네..’

백일 파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자니, 시간이 원래 이렇게 빠른 건가 싶다.

어른이 되면 좀 느리게 갈까?


엄마 배에서 현생으로 나오면서 너무너무 아팠는데, 왜인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장모님 집에서 살게 되고, 눈썹이 없어서 걱정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 날 생긴 내 은은한 눈썹에 행복해서 소리 지르고, 아빠의 두 집 살림 정체는 아직 밝히지 못했지만. 아 그리고 왜 변태짓을 내게 하는지도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또.. 완모 못하고 혼유 해서 속상해하는 엄마를 위로해주고, 저 말썽쟁이 솜뭉치의 너튜브 태담도 몰래 엿들어보고, 요상한 저세상 천사 꿈도 꾸고, 밤에 열이 펄펄 나 아프기도 하고, 모로 반사 이불 득템에 꿀잠 시작하고, 손싸개 싫어서 칭얼댔다가, 눈물샘이 드디어 뽱 터져 찐한 눈물도 흘려보고, 하루아침에 총천연의 색을 입은 세상을 보며 경이로움에 감성 폭발도 하고, 백화점 나들이인 줄 알고 갔는데 속아서 예방주사 세방 맞고 눈물 죽죽, 그리고 엄마 복직에 심란했다가, 아빠와의 첫 바깥나들이 낮잠에 행복해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100일이 되었다.

'음.. 이제 오늘 100일 밤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저세상에서 봤던 엄빠의 삶과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에 대한 내 기억도 지워지겠지?'

처음에는 신경도 안 썼던 일인데, 막상 그날이 되니 괜히 아쉬운 기분이 든다.

그래도 그 기억들이 있어서 조금 더 겁 없이 소리 떵떵 지르며 신생아로 살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그 기억이 없어지면 앞날을 모르니까 조금 걱정은 된다. 물론 기억만 못할 뿐 내 무의식에 다 남아있을 거라고 삼신이 알려주긴 했지만. 근데 그나저나 삼신이랑 염라는 진짜 100일 됐는데 안 올 모양인가?

“야 솜뭉치, 저세상에서 소식 없음? 삼신이야 며칠 전에 왔다가긴 했다 쳐도, 염라는 좀 서운하네 괜히?”


나는 솜뭉치에게 칭얼대 보지만, 솜뭉치는 자기는 모른다는 듯이 으쓱하더니 백설기 케이크 위에 자리 잡는다.

'흥. 결국 안 오겠다 이거지? 뭐 어쩔 수 없지. 잘 먹고 잘 살아라!!'

나는 쿨하게 그들의 부재 따위 무시하기로 한다.

나 몰라? 나 세상 쿨한 힙한 0춘기 신생아라고!! 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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