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아빠의 아빠?

by 빨양c

'100일이 순식간에 가긴 하네..'


오늘 낮에는 집에서 간단히 엄빠와 장모님과 100일 기념 파티를 했다.

파티를 마치니 몸이 조금 피곤하다. 100일 살아보니 삶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음.. 100일이 지났으니, 이제 내일이면 저세상에서 봤던 엄빠의 삶과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에 대한 내 기억이 지워진다.

뭐.. 그래도 어린이로서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겠지만, 이전과 달리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어린이가 된다. 설렘도 크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이 마음속에 남는다.


뭔가 중요한 걸 잊고 있는 듯한..


파티 후 피곤한 몸으로 그런 저런 싱숭 생숭한 생각에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뒤척뒤척. 들썩들썩.

'하-정말!! 옆에 누운 이 아빠 왜리 들썩거리는 거야 진짜!'

원래 몸이 피곤하면 잠들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날도 더운데 굳이 바로 옆에 누워있는 아빠의 계속되는 움직임에 잠에서 깨버렸다.


"헤이 솜뭉치.. 아빠 왜 저래? 자다 말고 왜 어깨춤을 추는 거야 대체."

난 눈도 뜨지 않고 솜뭉치를 불러 말해본다.


...


역시 솜뭉치는 아무 말이 없다.

내일 되면 쟤도 사라지는 거 아닌가? 근데 마지막까지 하는 짓이 영!!

아니, 쟤는 안 사라지나? 계약서 내용에 저 하얀 솜뭉치에 대한 내용이 있었던가?

잘 기억이 안 난다. 100일이 돼서 그런가. 정말 저세상에서의 기억들이 잘 기억이 안 난다.


계속되는 아빠의 뒤척임에 살짝 왼쪽 눈꺼풀을 들어 실눈을 떠 아빠를 몰래 쳐다본다.


응?.. 아빠 눈에서 물이 줄줄 나온다. 입은 비뚤어졌고 콧방울은 빨개져있다.

'음.. 울어? 아까 저녁 때도 울더니. 신생아야 뭐야 왜 자꾸 울어 수염 아저씨.'

가뜩이나 험한 얼굴, 더 못생겨져서 마구 놀려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다 갑자기 왼쪽 가슴 쪽이 살짝 따끔한다. 처음 느껴보는 느낌.

아픈 느낌인가? 응아 마려울 때랑은 좀 다른 알 수 없는 느낌.


장모님과 엄마는 방에서 주무시는 거 같고, 이 아빠는 궁상맞게 왜 혼자 울고 있는 거지?


오줌 쌌나?! 설마 신생아인 내가 아빠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오진 않..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혹시 모를 대참사를 막기 위해 살짝 떴던 눈을 질끈 다시 감고 자는 척을 시전 한다.

음.. 눈을 감고 차분히 저 수염 아저씨가 왜 우는지 생각해본다.

항상 하하하 허허허 그렇게 해맑던 사람이 저러니까 조금 무섭다.

원래 평범한 애가 눈이 돌면 더 무서운 법이라는 기억이 떠오른다.


'왤까.. 왜 날 보면서 저런 멍충 멍충 표정으로 울고 있는 거지?'


내 얼굴이 조각처럼 너무 완벽해서?

신이여 이게 정녕 나의 작품입니까 모 이런 감격에 겨운 눈물인가?

그건 아닌 거 같다.

일단 눈물을 삼키는 저 삐뚤어진 입모양이 감격을 말하는 건 아닌 거 같다.

궁금해서 나름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던 그때 아빠가 나직이 속삭인다.


"축복아, 아빠는 아빠에게 좋은 아들이 못됐는데.. 그런 내가 너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갑자기 귀에서 쨍 소리가 나고 머리카락이 쭈뼛서는 기분이다.

아까 느꼈던 가슴 쪽 통증이 엄청난 속도로 머리카락으로 솟구치는 느낌이다.

그러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잠시 멍해진다.


어느새 감았던 내 두 눈은 놀란 토끼눈이 되어 아빠를 보고 있다.

난 웃지도 울지도 않는 표정을 짓고 선명한 눈동자를 꿈뻑이며 아빠를 미동도 없이 바라본다.


'응? 아빠의.. 아빠? 아빠가 아들? 아빠의 아이는 난데, 아빠가 아들이라고 하면.. 아들이 아이가 되고.. 근데 아빠는 아들이 아니고 내 아빠인데.. 근데 아들이라고?'

이게 다 뭔 소린가 싶다. 100일이 지난 내 작은 뇌를 열심히 굴려본다.


'흠.. 그래 아빠도 누군가의 아이인 거고.. 그럼.. 우리 아빠의 아빠인 사람도 당연히 있겠지. 그래 처음에 장모님도 엄마의 엄마라고 해서 엄청 헷갈렸던 기억이 난다. 엄마의 엄마도 있으니.. 아빠의 아빠도?'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장모님은 엄마의 엄마라고 했다.

그럼 엄마의 엄마가 있는데,

아빠의 아빠도 당연히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그동안 아빠의 아빠 이야기는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음.. 삼신이 보여준 엄빠 삶의 영상에서 분명히 봤었을 텐데,

아무리 100일이라 기억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해도,

저 아빠의 아빠란 존재에 대해서는 아예 처음 듣는 얘기인데?'

이상하다.

유독 아빠의 아빠란 사람에 대한 기억이 없다.

음.. 저 천장 새하얀 벽지 느낌이랄까? 응,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생각하려 하면 할수록 새하얗게 빛나는 블랙홀로 생각들이 모조리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블랙홀이 새하얀 색이라니. 아! 이 0세의 창의력이란!

아냐 아냐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생각해보자.

아빠의 아빠란 존재라..


그렇게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 불현듯 저렇게 갑자기 눈물 쏟는 아빠를 보고 있자니 뭐라도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래, 이제 나도 나름 100일 된 아이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걸 해보자 결심해본다.

일단 토닥토닥이라도 해주려 내 손을 쭈욱 뻗어 아빠의 볼에 올려본다.

아니 올려보려고 시도했지만, 토실토실 살이 올라 짧고 뭉툭한 내 짧은 손으로는 닿질 않는다.

이런 것도 할 수 없는 0세라니! 퉤.

그나저나 대체 아빠의 아빠가 뭘까. 이 사람의 아빠라 그런지 괜히 신경이 쓰인다.


'흐음.. 나중에 삼신 생색내는 거 꼴 보기 싫어서 최대한 안 쓰려했는데.. 그래도 어차피 내일이면 유효기간 끝나서 사라지는데 그때 삼신이 말한 그거나 지금 써볼까?'


"헤이 솜뭉치. 현생 계약서 6번 조항에 있는 부모 생각 읽을 수 있는 거 지금 쓸래. 아직 100일 안 끝났으니까 쓸 수 있는 거지? 아빠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보여줘."


평소 내 말이라면 오지게 안 듣던 솜뭉치였는데, 계약서 내용을 들이미니 웬일로 순순히 뭔가 꽁냥꽁냥을 시작한다. 솜뭉치의 색이 잠시 파랗게 바뀌더니 스크린 하나가 내 눈동자 앞에 나타난다.


'응? 이거 뭐야? 보라고?'

파란색으로 바뀐 솜뭉치는 평소와 달리 미동도 없이 내 눈에 영상을 쏟아낸다.

그러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영상을 재생시킨다.


영상이 시작되고 눈물 속 아빠의 마음속 이야기가 보인다.

아주 슬픈 이야기가 내 눈동자에 하나하나 새겨지기 시작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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