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엄마는 가고 아빠만 남았네.

아빠의 편지와 '사랑은'

by 빨양c

“꺄르륵 꺄르륵”

대체 내가 왜 이럴까.

왜 아빠가 날 포대기에 감싸 안아 스쿼트 자세로 위 아래로 무릎굽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 왜 나도 모르게 이렇게 소리내어 웃게 되는걸까.

거의 100일이 임박해지니 웃을 때 목에서 정말 “꺄르륵” 소리가 난다.

처음엔 신기했다. 오. 신이시여 이게 정녕 내 목에서 나온 소리가 맞습니까.

당연히 아빠도 내 이 웃음 소리 매력에 완전 퐁당 빠졌지. 이렇게나 열심히 스쿼트를 해대는 걸 보면.

으. 그만 웃고 싶은데 계속 “꺄르륵”웃음이 나도 모르게 난다.


“솜뭉치야 나 좀 어떻게 해줘. 웃음이 계속 나!! 아니면 저 아빠 좀 그만하게 어떻게 좀 해봐. 이 아빠 다리 후들거리는거 봐라. 쓰러질라!!”


솜뭉치가 보기에도 아빠의 하체가 영 못미더웠는지, 아빠 어깨와 머리 위를 왔다갔다하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근데 아빠는 그만할 기색이 없나보다.


‘내가 웃는게 그렇게 좋나 참.. 아빠 사람도..’


“앗! 그래 유모차! 축뽁아~ 엄마, 장모님 다 출근하시고 안계시니까 아빠랑 산책이나 갈까? 유모차 펴야지 응챠!”

죽어라 스쿼트 하다말고 갑자기 산책이란다. 이 분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기란 신생아로서 정말 피곤한 일이다. 산책이라면.. 그때 그 백화점 거기 간다는 건가?


"응애!!(엄마 없이 괜찮겠어 아빠 사람? 영 불안한데.. 나 불편하게하면 그때처럼 도착하자마자 끙아 싸버릴거야!)"

영 못미더워 아빠에게 으름장을 던져본다.

아빠는 그런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바지따위 입지 않고 쿨하게 기저귀 차림의 내 올록볼록 허벅다리에 초록 바지를 입힌다.

그리고, 공룡모양의 날개가 달린 양말을 신킨다. 신발따위는 가볍게 무시. 음. 역시 힙하군. 패완얼!!


그렇게 나는 아빠의 서툰 손에 유모차에 대(大)자로 눕혀졌다. 아빠가 유모차를 밀기 시작한다.


“음..아빠 밖에 없으니까 오늘은 그냥 아파트 단지 산책 좀 하자. 야외 산책은 처음이네 축뽁이! 좋지?”


‘엥? 오늘은 백화점이란 곳에 가는게 아니고 그냥 주변을 좀 걷자는 얘기인가보다. 와!! 근데 창밖, 자동차 창을 통해서 봤을때보다 직접 이렇게 나와서 보니 나무의 초록색과 하늘의 파란색, 구름의 하얀색, 꽃들의 노란색, 빨간색까지. 정말 다양한 색을 품고 있는 이 현생에 다시한번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이게 바람이란 거구나. 생각보다 쎄고 차가운 느낌이긴 했지만, 바람이 주는 시원함이란게 뭔지도 알 것 같았다. 엄마가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아빠랑 단 둘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영 지루했는데, 이렇게 밖에 나오니 너무 좋다. 이런건 또 좋네. 헷!


그렇게 멍하니 매일 장모님 집 창을 통해 위에서 내려다만 보던 경치를 가까이서 보며 감탄하고 있는데, 머리 뒤편 유모차 위에서 음악이 들려온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죠
세상을 아는 지식과 산을 옮길만한 믿음 있어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 소용 없죠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질투와 자랑도 아니하고
교만하지 않으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고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죠


왜인지 모르겠지만, 귀에 매우 낯익은 음이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


“축뽁아~ 이거 기억해? 축뽁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빠가 이 노래 태담할 때 맨날 불러줬는데. 여기 경치랑 오늘 따뜻한 햇살이랑도 너무 잘 어울린다 그치?”


’아하! 그래서 익숙한가보구나!'

아빠 말대로 경치도 좋고,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좋은 노래까지 들리니 행복한 기분이다.

그렇게 유모차에 몸을 맡긴채 이곳저곳 다니던 아빠가 갑자기 단지 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는다.

그러더니 유모차 앞으로 얼굴을 불쑥 내민다.


“응애!!(깜짝야!)”


유모차에 앉은 나는 앞쪽을 보고 있고, 아빠는 유모차를 뒤에서 미니까 아빠 얼굴이 안보이고 경치만 볼 수있어 무척 만족스러운 산책중이었는데 아빠가 이렇게 앞에서 갑자기 얼굴을 불쑥 내미니 깜짝 놀랐다.


“여기서 잠깐 쉴까? 음.. 아 맞다! 이제 축뽁이 100일이잖아. 그래서 아빠가 선물 준비했어. 자 볼래?”


'선물? 선물은 거부하지 않죠. 어서 보여줘 어서!! 커몽커몬!"

아빠는 바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편지지를 하나 꺼내 펼쳐 내 눈앞에 펼쳐보인다.

뭐라 검정글씨가 가득하긴 한데, 응애어(語)밖에 할 줄 모르는 내가 당연히 읽을 수 있을리가 있나.

그나저나 100일 선물을 고작 요따위 편지로 때울려는거야? 으그. 정말 아빠 사람답네!


“응. 아빠가 축뽁이랑 지내면서 꼭 해주고 싶었던 말들을 편지에 담아봤어. 기대되지?”

응. 물론 하나도 기대 안된다. 그래서 나는 그냥 눈을 질끈 감기로 했다.

유모차에 누워있는 내 위로 꽃향기 머금은 바람이 따사롭게 불어오고 온화한 햇살이 비추는게 느껴진다. 그저 유모차 위에 이렇게 누워 바람과 햇살만 느껴도 너무너무 행복한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 그럼 흠흠. 읽어볼께. 축뽁아 100일 축하해. 100일동안 초보엄빠의 서툰 돌봄 받느라고 축뽁이 고생 많았어. 이렇게나 건강하게 자라줘서 너무 고맙구. 앞으로두 우리가족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자. 알았지? 곧 있을 100일 잔치도 성대하게 열어줄테니 기대하구. 100일을 맞이해서 축뽁이에게 편지를 써주려고 이렇게 펜을 들었어.”

여기서 아빠가 잠깐 읽는걸 멈추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나는 눈을 감은 척 했지만 내심 아빠가 뭐라하나 궁금해 실눈뜨고 쳐다보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아무일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다시 눈을 질끈감고 자는 척 시작. 음냐음냐.


“음.. 자나? 눈을 감고 있네. 흐음. 아무튼, 그럼 계속 읽어볼게.

아빠도 축뽁이처럼 신생아 시절부터 이렇게 이젠 누가봐도 아저씨라 부르는 나이가 될 때까지 자라오면서 느낀 것들을 전해주면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아서. 물론 지금은 이해 못하겠지만, 이 세상을 살면서 언젠가 축뽁이에게 마음에 와닿는 말이 될수도 있으니 말야. 하하. 당연히 해주고 싶은 말이야 엄청 많아서 축뽁이가 자라는동안 항상 옆에서 아빠가 가르쳐줄거니까 오늘은 그래서 딱 한가지만 이 편지에 담아봤어.


재미나게 살아!

아빠가 요즘 축뽁이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아빠는 축뽁이가 늘 재미나게 살았으면 해.

음...아기에게 할 소린가 싶지만, 한 살 한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보통 우리 주변 사람들이 사는만큼 평범한 삶을 이루고, 그걸 지키며 살아가는게 사실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 내가 원하지 않아도 세상은 가끔은 얄밉게도 어려운 일을 주는 것 같기도 하구. 그래서 축뽁이가 자라고, 어느순간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을거야.


'아빠는 차도 있고, 운전도 잘하고, 집도 좋고, 직장도 좋은거 같고, 사랑하는 엄마도 있고, 나처럼 소중한 아이도 있고. 아빠는 정말 다 가진 사람이구나. 근데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어쩌면 축뽁이에게 이런 생각이 드는 조금 마음 아픈 때도 있을거야.

아빠를 보면 참 쉽게 잘만 했던 거 같은데 왜 나는 이럴까.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하는 생각.


근데 축뽁아,

아빠는 그래.. 불과 축뽁이 태어나기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보통의 삶은 커녕, 나름 힘든 일들을 더 많이 겪은 사람이었단다. 그래서 좌절도 많이하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 긴 시간 그렇게 힘들었어도 아빠는 꼭 희망을 붙잡고 있었어. 지금은 힘들지만 내가 열심히 준비하고, 견뎌내면, 기회가 올것이고, 노력한만큼 그 기회를 반드시 잡아 나도 언젠간 잘 될 것이라는 믿음.

주변 다른 보통 사람처럼 그래도 보통의 삶은 이룰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렇게 견뎌내니 정말로 꽉 막힌 것만 같았던 삶이 어느 순간 확 풀어지는 때가 오더라. 그러고나니 더 큰 행복이 같이 오는 건 말할 것도 없구 말야.

다만 그러는동안 아빠가 한가지 아쉬웠던 건, 그 힘들었던 시간동안 재미나게 살진 않았던 것 같아.

뭐랄까.. 오히려 항상 세상 걱정 다 머리에 이고 다니는, 없는 걱정도 만들어서 하고다니는 것 같은 사람이었달까? 오죽하면 친구들 사이 별명이 시니컬 이었을까?

글쎄 지금 생각하면 한창 밝게 웃고 친구들과 떠들며 지내기도 모자랐을 그 때에 왜 그렇게 혼자 진지하고, 세상만사 고민을 다 끌어안으며 지냈는지 모르겠어. 그래, 마치.. '삶은 무언인가?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뭐 이런 말만 해대는 철학자 100명이 머릿속에 같이 사는 기분이랄까.


뭐.. 그 과정을 통해 아빠도 성숙해지고, 철도 들고 그건 맞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 힘들었어도 좀 더 재미나게 살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더라구. 내가 그렇게 걱정을 많이 하든 안하든, 결국 시간은 흐르거든. 비록 힘들었지만 그 시간에 좀더 재미나게 삶을 살았다면 하는 그 아쉬움.

그래서 아빠는 축뽁이가 세상을 살아가는동안 조금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그럴 때 꼭 긍정적으로 재미있게 살아줬으면 좋겠어.


살다보면 친구, 직장 인간관계에 어려움도 있고,

충분하지 못한 돈 때문에 실망할 수도 있고,

나만 이모양인 것 같아서 힘들수도 있어.

그렇게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사랑에 실망하고 인간관계에 지쳤다고,

끝도없이 비교해대는 사회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그래서 하나도 행복하지가 않다고 생각이 들 수도 있어.

그렇게 시간은 공평하지 않고, 세상은 공정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하나도 정의롭지 않다고 느끼는 그런 날도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축뽁아.

그렇게 어쩌면 네가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 힘든날이 오면 아빠가 오늘 해준 이 말들이 기억났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 그런 현실 앞에서 그렇게 좌절하고 있는 우리 축뽁이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아빠가,

우리 축뽁이가 이런 순간들을 잘 이겨내고 더 밝은 웃음으로 세상을 재미나게 살아가길 간절히 기도하는 이 아빠가, 그 한사람이 분명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


축뽁이 너를 처음 병원에서 봤을 때 네가 얼마나 우렁차게 소리쳐 울었는지 아니? 힘은 또 얼마나 센지, 속싸개를 덮어주려고 그렇게나 노력했는데 갓 태어난 아기 발 힘이 얼마나 쎈지 속사개를 뻥뻥 차버리더라구.

그렇게 처음 세상에 나와 잔뜩 겁먹고 울고 그랬던 널 본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0일이라는 시간이 흘러 지금 이렇게 아빠를 향해 활짝 웃어주는 축뽁이를 보고 있네.

지금 웃는 얼굴처럼 앞으로 축뽁이가 살아갈 이 세상에서 항상 밝은 웃음을 지켜주기 위해 아빠는 노력하고, 매일 기도한단다.


축뽁이 너는 잘할 거야.

이제 터미타임도 잘하고, 목도 좀 가누고, 그 작은 손가락으로 아빠 손가락을 이렇게나 세게 움켜쥐는 힘센 아이인걸. 그리고 엄마 쭈쭈 먹으려고 그렇게나 땀 뻘뻘흘리며 열심히 젖을 빨던 너인걸.


그래도 혹시나 이 세상이 너를 너무 힘들게 한다면, 꼭 이 아빠를 찾아오렴.

언제나 든든한 축뽁이 편! 이 아빠는 언제나 지금처럼 축뽁이 곁에 있을거니까,

그리고 누구보다 따뜻한 웃음으로 축뽁이가 재미나게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힘을 줄게!

꼭 재미나게 살아! 아니, 우리 가족 모두 재미나게 살자! 알았지?

사랑한다 우리 애기. 아빠가.”


“하아아아아품”

아빠의 일장연설이 끝나자마자 나는 하품을 날려주었다.


“축뽁이 잘잤어? 자느라 아빠 편지 못들은거 아냐 요 귀여운 녀석? 그래두 요기 심장속에 아빠가 잘 전달하고 넣어줬으니까 걱정마 울애기! 아고 좀 쌀쌀해진다, 이제 집에 들어갈까?


아빠가 내 심장을 손가락으로 콕콕 가리키며 말한다.

글쎄. 사실 이 좋은 풍경에 젖어 잠이 든듯 비몽사몽한 상태로 들어서인지, 아니면 나는 아직 아기니까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만 해서 그런지 아빠의 편지가 무슨 이야기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한가지 기억에 남는건 이 현생을 재미나게 살라는 거. 맞겠지?

이 힙한 신생아에게 그정도 쯤이야!! 헤헿.

지난 100일동안 신나게 살았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신나게 살면 되는거겠지 뭐.!


나는 살며시 주변 초록잎의 물결로 시선을 옮겨본다. 그 찰나에 마주친 아빠의 눈가가 왠지 모르게 촉촉해진 것 같았다.

아빠와 단둘이 한 첫 외출이 따뜻하게 느껴진건 햇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빠의 마음이 느껴져서였을까.

세상을 비추는 따뜻한 노란 햇살이 유모차를 통해 내게 닿았고, 향긋한 꽃내음을 머금은 바람은 내 마음을 간지럼피는 것 같았다.

행복한 느낌이었다.



★축뽁이의 1분 육아꿀팁!
Q. 아빠가 오늘 유모차 태워주면서 들려준 노래는?
A뽁. 제목은 ‘사랑은’ 이라는 노래이고, 원래는 제이레빗이라는 그룹의 노래인데 엄빠는 ‘부부천재’버전으로 많이 들려주셨다고 해요. 아이 태담해주시는 독자님이 계시다면 아래 링크 남겨드릴테니까 오늘 밤 뱃속 아이에게 들려주세요.! 엄청 행복해할걸요? 헤헷.

https://www.youtube.com/watch?v=CDJIjF4kyn0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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