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잘 키우셨네요. 그런데 사회성이..."
얼마전 아들의 영유아 정기검진 차 갔던 병원에서 들었던 많은 이야기 중 두 가지가 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철분과 사회성.
먼저, 아이의 철분을 위해서 소고기를 끼니당 10~20g씩 하루 세 번 먹이라는 이야기.
나는 그동안 철분을 하루 20g 정도만 먹이면 되는 줄 알고 하루 한 끼만 챙겨 먹였었다. 그런데 그게 한 끼가 아니고 세끼 모두 그렇게 챙겨 먹어야 했었다니. 나름 11개월 동안 육아만 해서 육아 달인이 되었다고 내심 자부하고 있던 나였기에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에 나는 순간 가슴이 뜨끔 하였다.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늘 어딘가는 부족한 아빠라니.
이런 뜨끔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품에 안겨 의사 선생님을 보며 생글생글 웃기만 하는 아들의 웃음 앞에 묘한 미안함이 남았다.
그리고 이어진 의사 선생님의 한마디.
사전 문진표 통해 나온 결과에 사회성 부족이 의심된다는 것.
앞에 철분이 손가락 끝에 살짝 빨간 핏방울이 맺혔던 정도였다면,
이 사회성 세 글자는 내 몸속 피가 가득 담긴 마음속 깊은 심장을 푸-욱. 하고 찔러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내 탓인 것 같다." - 는 들리지 않는 소리와 함께.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그 길로 육아휴직을 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든 11개월 동안 아이를 돌봤다.
문제는 아이만 돌봤다. 돌아보니 집에서 아이와 나, 둘이서만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물론 주변에선 항상 까망 강아지, 하얀 강아지, 털 없는 고양이가 함께 부산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긴 했지만.
아기를 키워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먹이고, 싼 거 치우고, 집안일하고, 목욕시키고, 그러다 재우고.
이런 반복되는 틈바구니에 치여 살다 보니
아기가 아직 아내의 배 속에 있을 때 다짐했던 동화책을 읽어준다거나, 노래를 불러준다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다거나 하는 장면들은 잘하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다.
누군가는 어린이 집에 일찍 보내는 게 좋다고 했다.
그러면 돌보는 나도 조금 쉴 틈이 생기고, 그 쉴 틈이 아이를 돌보는 데 여유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아이의 "사회성"을 위해서도 여러 아이들과 있을 수 있는 어린이 집에 보내라는 말.
그래도, 내가 복직하기 전까지 아빠인 내가 돌볼 수 있으면 그게 아이한테 더 좋지 않나 하는 내 고집에 나는 어린이 집 보내는 걸 망설였다. 그때 그저 미소로 같이 흘렸던 "사회성" 세 글자가 이렇게 나를 괴롭힐 줄이야.
그래서 다시,
"내 탓인 것 같다."-는 생각.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 늘 그 순간을 생각하면 부족한 모습만 보이는 건,
아이를 돌보는 부모의 숙명 같은 걸까.
철부지 아들이기만 했던 내가, 부모의 숙명까지 운운하는 아빠가 되다니.
이게 머선일인지.. 나도 내가 어색해.
그래서 이번 주 내 목표는 "철분"과 "사회성"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오늘 낮에 쭈뼛쭈뼛 동네 키즈 카페에 갔다.
키즈 카페는 커녕, 젊을 적 노키즈 존을 선호했던 나로서는 도무지 그 공간에 서있는 내가 그렇게나 어색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 날의 내 그런 생각들이 미안해지는 무색함이라니.
그렇게 멀뚱멀뚱 서있는 내가 마주한 아들 또래의 네다섯의 아기들.
역시나 나처럼 아빠랑 둘이 온 아기는 없어 보였다. 엄마들 품에 파묻혀 놀고 있는 아기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성큼성큼 걸어가
"엥? 아빠 뭐해?" 하는 표정의 아들을 한가운데 내려놓고 최대한 멀리떨어져 서서 지켜보았다.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하는 알 수 없는 자책감을 발바닥 밑에 최대한 감춘 채.
그리고 한참을 지켜본 내 아들을 본 내 생각은,
"나보다 나은 거 같은데?"
옆에 기어가는 아기를 따라서 기기도 하고,
뛰어다니며 점프하는 남자아이에게 다가가기도 하고,
얼굴이 작은 여자아이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기도 하고.
"사회성..? 아무리 봐도 나보다 나은 거 같은데.."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나아서.
그리고 내 눈엔 전혀 사회성이 부족해 보이지 않았으니까.
마음 한편에 있던, 너를 돌보는 내가, 다른 아기의 "엄마"들처럼 엄마가 아닌, "아빠"여서
그리고, 그 아빠가 사회성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 나 때문에 혹시나 내 아이가 사회성이 없는 아이로 자랄까봐 하는 걱정이 한순간 사라졌다.
낯선 공간 속 아들은 평소처럼 귀여운 몸짓을 흔들며 그 넓은 공간을 이리 기고, 저리 기고,
그러다 한 번씩 나의 부재를 느꼈는지 우두커니 앉아 고개를 돌려 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이내 생글생글 웃음을 지어 보여 주었다.
아빠, 나 괜찮다고 하는 그 웃음.
그래, 그 웃음이면 되었다.
그 웃음 한 번에 의사의 입에서 나왔던 세글자에 내내 짓눌려 왔던 내 마음속 알 수 없는 자책이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봐도,
몸만 커버린 나보다,
내 눈엔 아직 한없이 작기만 한 내 아들이 더 나은 것 같다.
"오늘도 고마워, 아들. 넌 정말 최고야.(엉덩이도 완벽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