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빠'로 사는게 맞는거야, 아빠?

by 빨양c



중학교 때였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낡아 다 떨어진 책이 학교 도서관에 있었어.

뭐, 당연하게도 무려 제목에서 두 번이나 언급되는 '아빠'라는 단어보다,

'부자'라는 단어에 끌렸고, 내 손은 자연스레 그 책의 첫 장을 펼쳤지.

그때는 아빠라는 두글자는 너무 흔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거든.


당시 내가 그 책을 보며 든 생각은,

부자 아빠가 되려면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방식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과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그래, 흔히 선생님과 부모님이 좋아하는 모범생으로 자라면, 가난한 아빠가 된다는 거였어.


어린 마음에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몰라.

당시 나는 그래도 나름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통했으니까.


어린 나여서 그랬을까?

그 책을 덮고 부자 아빠는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니 잘못된 거고, 정직하고 바람직하게 사는 아빠인 가난한 아빠가 맞는 거라 결론을 내렸어.

그래, 무려 비록 "가난할지라도" 말야.


그때만 해도 세상은 돈보다 꿈, 슬픔보다 희망, 눈물보다 행복이 많은 것이라고 배웠고,

꽤나 모범생이었던 나는 그 배움을 착실하게 믿음으로 바꿔 지내던 학생이었으니까.


얼마 전에 그 책이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더라.

내용이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듯했는데, 나는 그 책을 자연스럽게 샀어.

응, 돈도 없는데 말이지. 학교에서 배운 대로 책 사는 데는 돈 아끼는 거 아니라는 모범생 기질이 아직까지 남았나 봐.


세월이 지나 개정판을 읽으며 어느새 어른이라 불리게 된 나는 부자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가난한 아빠처럼 정직하고 도덕적으로 살다가는 죽을 때까지 부자는커녕

갚아도 갚아도 잔액 숫자 0에 다다르지도 못한 채 은행 대출에 허덕이다 죽을 거 같더라구.


눈을 감는 순간에


"아... 나 대출 5천만 원 있는데, 결국 못 갚고 죽네."

이따위 생각이 드는 건 꽤나 슬픈 일일거 같잖아. 그치?


지금 보면 그래,

내가 어릴 적 봤던 아빠도 부자 아빠 스타일은 아니었어.


아빠는 넌지시 내게 그런 걸 가르쳤던 것 같아.

나 스스로 떳떳하게 착하고, 정직하고, 올곧게 자라면,

마찬가지로 선하고, 정의롭고, 공평한 이 세상이 당연하게

그런 나를 돌봐줄 거라고.


아빠,

그게 맞아?

정말 그게 당연한 거 맞아?


정말 아빠가 알려준 대로 그렇게 정의롭게 살고 또 살아 나가다 보면,

언젠가 이 세상이 정말 정직하게 그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 줄까?

당연하게...?


그러지 말아야지,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도

매일 아침 떠 있는 온갖 흉악 무도한 뉴스들을 너무 당연하게 마주하는 현실 앞에서

아빠의 그런 말들이 공허하게만 들리는 건 왜일까.


중학생의 나는 가난한 아빠로 살게 되더라도 정의롭고, 정직하게 살고 싶었는데,

지금의 나는 비정하고 불공평한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부자 아빠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어.

내 일신의 평안을 위해서냐고?


그럴 리가.


그저,

내 가족과 내 아들이 가난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겠지.

그때의 나와는 달리 나는 같이 행복하고 싶은 아내와 아들이 있는 아빠가 되었거든.


아빠도 그런 거였겠지?

아빠의 평안보다,

엄마와 형과 내가 가난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가끔 나는 생각해,


사실 많은 세상 사람들이 막 저 마크 저쿠버거인지, 마쿠롱인지, 빌겟츄인지, 아님 삼성의 재드래곤이라든지,

그런 부자 순위 500위에 꼭 들어가고 싶은 건 아닐 거라고.


그저 내 가족, 내 자식과 쉴 수 있을 때 같이 쉬고, 맛있는 거 먹고 싶으면 같이 먹고,

그렇게 행복하고 싶을 때 행복해할 수 있고 싶은,

딱 그 정도의 부자를 원하는 거 아닐까 하고 말야.


오늘도 뉴스로 도배된 세상이 내게 말 거는 것 같아.

돈은 부어도 부어도 끝없는 욕심이니,

그 욕심을 다독일 수 있는 내 마음을 먼저 살펴보라고.


어릴 적 나는 가난한 아빠여도 정의롭게만 보였던 아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요즘의 나는 조금은 바뀌고 싶은 거 같고, 바뀌는 게 맞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가난한 아빠처럼 살면 나만 벼락 거지로 남는 기분이랄까?

이런 생각 드는 내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이 세상이 잘못된 걸까?

알 수 없는 세상이야 그치?

아빠가 있을 때도, 아빠가 없는 지금도 이 세상은 하나도 나아진 것 같지가 않은 건 나만의 생각일까.


내 아들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책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빠?


아니,

나는 내 아들에게

부자 아빠처럼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까,

아니면,

가난한 아빠여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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