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왜 내 꿈에 나왔어 아빠?
모르겠어.
근데 아빠,
아빠가 나오기 전 꿈에
외할머니가 꿈에 나왔어.
그리고 외할머니가 나온 꿈에서
외가댁 식구들이 다 같이 가족사진을 찍었어.
다 모였으니 그 숫자가 한 50명은 돼 보였어.
그래,
마치 외할머니 납골당 유리창에 따뜻한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창백하게 매달려있는 그 사진처럼 말야.
외할머니의 표정은 무표정했어.
"에이. 돌아가신 분이 꿈에 나오고, 또 웃고 있어야 좋은 꿈이라는데!"
잠에서 어렴풋이 깬 내가 주섬주섬 핸드폰을 찾아 초록창에 꿈해몽을 검색하고 든 생각이야.
교활하기도 해라.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도 이미 다 팔아먹은 모양이지?
그런데 이게 뭐야.
그리곤 잠든 꿈 속에 이번엔 아빠가 나왔네.
그전 찾아본 꿈해몽 덕분일까?
나는 꿈속에서 아빠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어.
근데 이런.
아빠도 웃질 않네.
그래,
마치 그전 꿈에 나왔던 외할머니의 그 무거운 표정만큼이나 말야.
반가울 줄 알았어.
외할머니도, 아빠도.
내가 살고 있는 이 노오란 벼 익어가는 가을 풍경에선 더 이상 볼 수 없으니까.
꿈속에서라도 한번 본다면 정말 반가울 것 같았거든.
근데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모르겠어.
그런 내 머릿속에 갑자기 이모의 얼굴이 스쳐가더라.
응, 췌장암에 간암까지 투병하고 있는 이모 말야.
그 이모가 주인공인 책까지 출간했을 정도로 나한테는 남다른 의미인 그 이모 말야.
얼마 전 엄마가 그러더라.
이모가 더 이상 항암제 투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낫지도 않는데 아프기만 해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마음이 슬퍼.
응,
마음이 슬퍼서
자꾸만 그 이모의 엄마인 외할머니와, 아빠의 꿈속 표정이 마음에 걸려.
그게 왜 이모랑 연결되는지 모르겠지만 말야.
그래서 이모의 카톡을 열어봤는데,
이모는 하얀 시트 깔린 입원실에서 활짝 웃으며 순댓국을 먹고 있더라.
다 괜찮다는 듯 말야.
다 괜찮을 거라는 듯 말야.
나이가 사십 줄에 다다르니
내가 많이 달라진 게 느껴지는데,
그중 가장 큰 게,
어릴 적부터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된다는 것 같아.
그중 요즘 내게 뼈저리게,
그래 정말 뼈가 시리도록 저려오는 슬픔 중 하나는
내게 정말 소중했던 이들이 하나둘씩 점점 이 예쁜 가을 풍경에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하게 된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 같다는 거야.
슬프지?
응, 난 슬퍼.
외할머니도, 아빠도.
그렇게 내가 이 세상에 올 때부터 내 주변에서 함께 있어주던 이들이 더 이상 나와 같은 세상에 있지 않게 된다는 게 말야.
내 길은 마음을 잃은 것 같아.
아니지,
내 마음이 길을 잃은 거겠지?
오늘밤 내 꿈속에 온다면,
이번에는 웃어줬으면 좋겠어.
'죽음'이 '현실'로 다가와 날 괴롭히는,
내 마음을 다독여줬으면 좋겠어.
죽음이란 현실이 내 손에 닿았을 때,
너무 큰 슬픔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스물일곱에 내가 아빠를 잃었을 때도
이렇게까지 마음이 슬프진 않았던 것 같은데,
왜 10년도 더 지난 지금은
이렇게나 마음이 슬퍼지는 걸까.
오늘도 역시나 물음표만 가득한 글로 남네.
왜 아빠한테 쓰는 글은 늘 이모양일까.
오랜만에 쓰는 건데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