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나야 아빠. 잘 지내?
아빠라는 두 글자와
잘 지내 냐는 세 글자가
나란히 있는 걸 보니
너무 어색하다.
죽은 아빠에게 잘 지내냐고 묻는 게
영 이상해.
그래도 시작은 안부 인사로.
얼마 전에 차 엔진오일을 갈러갔어.
평일 할인을 하길래 아기를 태우고 부랴부랴 갔지.
도착해서 아기를 차에서 내리고 차는 정비해 주시는 분께 맡기고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아기와 주변을 잠시 산책 시작.
"도서관 옆에 카센터가 있네? 시끄러워서 도서관에서 싫어하겠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들려오는 노래 한 소절.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 나비.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카센터에서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더라구.
그 소리가 꽤나 커서 도서관에서 항의가 들어갈 거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왜인지,
나는 걸음을 멈췄어.
물론 아기는 걸음을 멈추지 않더라구.
나는 아기를 들어 안고 잠시 그 풍경에 서있었어.
도서관은 조용했고, 카센터는 시끄러웠지만,
하얀나비를 그리는 그 노래가 좋았어.
그 노래가 녹은 풍경이 좋아서 그렇게 얼마간 서서 그 노래를 들었어.
"제목이 뭘까?'
아빠, 요즘 세상 되게 좋아.
길 가다 노래 제목이 궁금하면 모다?
초록창을 열어 음악 검색을 하면 바로 짜잔.
제목은?
배우 심은경이 부른 "하얀 나비"
들어봤어?
못 들어봤겠지? 아빠는 감수성이 빵점이잖아.
어린 시절 시골 외가댁 할머니 댁에서 엄마가 학창 시절 쓴 시들을 본 순간 나는 확신했어.
내 감수성은 백 프로 엄마에게서 온 거라고.
요란한 카센터 옆에 13.2kg 아기를 부여안고 멍하니 서서 가만히 노래 듣는 그 감수성 말야.
그 풍경에 녹아 서있자니 가을이더라 아빠.
하얀 나비가 주는 하얀 이미지와 달리 나는 가을을 느끼게 되더라구.
올해는 유독 가을이 내게 참 깊게 느껴져 아빠.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겨서 가을을 느낄 여유가 좀 생긴 걸까?
작년까지만 해도 가을이 이렇게 깊게 찔러들어온 적이 없었는데
올해 가을, 요즘의 날들은 자꾸 나를 가을로 물들이네.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지금도 하얀나비가 흘러나와.
아빠, 그거 알아?
이모는 앞으로 이 가을 속에 2주밖에 못 있는대.
결국 호스피스 병동으로 갔고, 거기서 2주라는 숫자를 받았대나 봐.
더 자세히 알고 싶고, 당장이라도 가서 뵙고, 곁에 있을 때 한 번이라도 꼭 안아드리고 싶은데.
정말 그런데,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살 수 있는 날을 통보받은 사람에게,
그리고 그 사람의 가족들에게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어.
나는 왜 이모양인지 모르겠어.
아빠, 잘 지내. 하고 물음표가 아닌 온점을 남기고 돌아섰던 그때가 벌써 10년 전인데,
이모, 잘 지내.라는 말은 또 내게 얼마나 오래 남을까.
요즘의 나는 매일밤 기도해.
그녀에게 아프지 않은 평화를 주시고,
그녀의 아들 딸과 그녀의 동생,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슬픔이 너무 길어지지 않길.
내 슬픔도 너무 길지 않길.
그녀와 그녀의 모든 이들의 평안을.
...
지금 내 눈앞에 가을 풍경은 눈부신데,
매일이 이별인 날들이라 서러운 느낌.
더 암담한 건,
앞으로 이런 이별을 수도 없이 맞게 될 거라는 거.
그럴 나이가 되어버렸네.
아빠, 어린 시절 봤던 어른들은 이런 걸 어떻게 그렇게 잘 버텨간 걸까.
잘 지내.
2주의 언젠가.
나는 이 세 글자를 담담히 남길 수 있을까.
슬픔이 깊게 베인 가을이야.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서러워 말아요.
서러워 말아요
*하얀나비, 심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