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그만하자, 말고 살아가는거야, 로.
이번주 내내 아팠어,
그래도,
내 아기 크리스마스, 첫 재롱잔치 간다는데 예쁘게 보이게 해주고 싶어서
아침부터 울고 불고 난리 치는 아기 어르고 달래 가며
간신히 머리를 잘라줬어.
그러는 중에도 간혹 날 괴롭히는 불쾌한 통증이 영 거슬렸어.
그리고 예약된 시간에 맞춰,
대학병원, 외과 교수님을 만나러 갔지.
아기는 카시트에 태우고.
근데 이상한 게,
동네 병원 의사 아저씨들 보러 갈 때는 애기 유모차 착! 태워서 잘만 가서 진찰받았는데,
왜인지 대학병원 의사 교수님을 보러 간다니까 애기와 함께 진찰실에 들어가면 안 될 거 같은 거야.
알 수 없는 위압감. 그런 불편한 위화감이 들었어.
맞아,
내 기억엔 내 생애 처음으로 내가 아파서 만난 대학병원 의사 교수님이었어.
내가 어쩌다 3차 병원? 상급 병원? 뭐 그렇다는 대학 병원에까지 오게 된 건지,
정말 모를 일이란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도 건강한 몸뚱이 하나 재산이라고, 아픈데 없어서 다행이라고 살았던 젊은이 시절이 엊그제 같았는데,
고 누가 보면 얼마 되지도 않았을 나이 조큼 먹었다고 이렇게 꼬꾸라질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런데 애기가 있잖아.
나는 육아 중이니까.
그래서 애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대학병원 교수님 진찰실에 데리고 들어갈 순 없을 것 같은데 말야, 고민했지.
결국 엄마에게 부탁을 했어. 와달라고.
엄마는 형한테 부탁을 했겠지. 평소 엄마가 봐주던 형의 아이 좀 봐달라고.
오늘 형의 아이이자 나의 조카인 아기의 유치원 재롱잔치가 있는 것 같았는데,
그 아이가 나의 엄마인 할머니에게 꼭 오라고 한 눈치더라구.
근데 못 갔지.
아픈 나 때문에.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왜 이렇게 주변 사람들한테 피해만 주는 거 같을까.
사춘기 때나 했을 법한 고민이, 왜 이 나이에 드는 건지.
왜 어린 시절 봤던 늠름하고 멋진 주변 어른들의 모습이, 나는 아직도 되지 못한 건지.
왜 난 아직도 이 모양인건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 아빠.
아무튼 그렇게 엄마와 나와, 나의 아이와 건물부터 으리으리한 대학 병원에 도착했어.
사실 그 대학병원을 나는 엄청 자주 갔어.
왜냐면 사랑하는 나의 아내의 일터니까.
고마운 아내 덕분에, 나는 수월하게 병원 진찰을 예약하고,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때까진 괜찮았어.
그런데, 울더라.
내 아기가.
괜찮던 아기가 내가 진찰실에 들어가려니 막 우는 거야.
근데 그 울음이 왜 그렇게나 내 귀에 잘 들리던지.
일부러 유모차 차양막을 내려 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하고 얼른 진찰받고 나오려고 잔머리를 굴렸는데,
그런 잔머리 우습다는 듯 박살 내는 거대한 울음소리로 내 심장을 때리더라고.
그 큰 병원 건물이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았어.
놀란 아내가 일하다 말고 뛰쳐나왔고, 결국 아기를 안았어.
나는 안을 수 없었어. 몸이 아파서 진찰을 받아야 했거든.
아기의 울음에 왜인지 내가 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한 번 들었어.
진찰실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
그냥 최대한 차분히 설명하려고 했는데,
사실 아기 울음에 허둥지둥 뛰어다니느라 온통 땀범벅이 되어있었고,
그리고 왜인지 내 몸이 아픈데, 내가 어디가 어떻게 왜 아픈지 의사 선생님에게 말을 잘 못하겠더라고.
"의사 선생님이면, 아니 무려 대학병원에서 교수라고 불리는 의사라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는지 알아야 하는 거 아냐?" 하는 고약한 환자의 이기심인지도 모르지. 나이 먹으니 왜 이렇게 고약해지기만 하는 것 같은지.
다행인 건, 의사 교수님은 초음파로 보이는 모습이 심각해 보이진 않으니 1년 동안 추적관찰 해보자는 거였어.
그런데,
나는 계속 아팠고, 계속 아플까 봐 겁이 났어.
내가 아파서 저 밖에서 내 심장을 찢어대던 아기의 울음소리를 계속 듣게 될까 봐,
겁이 났어.
사춘기 어린애도 아닌데, 겁이 나는 건 겁이 나더라.
나이가 들면 겁이 없어지는 줄 알았는데,
난 아닌 거 같아.
아빠도 늘 겁 없이 당당한 모습이었는데,
난 아닌 거 같아.
결국 겁먹은 환자였던 겉만 어른인 나는 한 달 뒤에 다시 진찰을 보고 싶다고 했어.
의사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하는 것 같았지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어.
실례였을까?
왜인지 대학병원 의사 교수님들에겐 위화감이 느껴져.
그렇게 진찰실 문을 닫고 나왔어.
"증상이 반복되면, 무조건, 바로, 응급실로 오세요. 교수님이 바로 봐주실 거니까요."
따라 나오신 간호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이 말을 덧붙여주셨어.
그런데 이 말이 왜 그렇게 힘이 되던지.
방금 전까지도 이 문짝 하나로 나뉘어있던 저 안쪽에서 겁먹어서 아프다고 하던 환자는 어디 갔는지,
그래도 나를 살려줄 누군가가 있다는 마음이 들더라.
나약하기도 하지.
그 말 덕분인지, 나는 다시 병원 복도에서 아기를 찾았어.
언제 진정된 건지, 나의 엄마 옆에 앉아 차분하게 앉아있는 아기가 보이니
왜 그렇게 행복하던지.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더라.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 내 옆에는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어느새 와있었어.
이건 더 행복했어.
나는 정말, 오늘 너무 아프고, 힘들었는데,
그래도 내 곁에는 이렇게 소중한 이들이 날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더는 혼자가 아니라는 그 느낌이
너무 행복하더라.
이기적인 걸까?
왜 갑자기 이런 행복을 느끼는 내가 이기적이란 생각이 드는 건지 모르겠어 아빠,.
아빠, 나 오래 살고 싶어. 건강히.
애석하고, 애석한 삶이
앞으로 나이들 나를 끝없이 괴롭힌다 해도 말야.
기도해 줘.
내가 그곳에 있는 아빠를 위해 늘 기도하듯이.
행복을 빌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