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태현 Mar 18. 2024

8. 죽지 말라고?

-




여느 때와 같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출근을 하던 나는, 건물 입구에서 나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아침부터 뭐가 저렇게 시끄럽나... 에휴...'


무슨 일인가 싶어 아직 부기가 안 빠져 불편한 왼쪽 눈두덩이를 애써 추켜올린 내 눈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온다. 


'헉. 기자다. 피해야지. 피해야지. 얼른 가자. 가자. 나는 아무것도 못 봤다.'

나는 발걸음 속도를 더욱 높인다. 공무원 생활을 좀 해보니 저런 부류의 사람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란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그들 누구도 내 존재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지만,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어 다행이란 생각으로 재빨리 사무실에 들어선 나는 내 자리로 직행해 컴퓨터를 켜 시간을 확인한다. 


<8:59>


'좋아! 완벽하군!'

오늘도 늦지 않고 정시에 출근한 나 자신을 칭찬해 본다. 이렇게 나 스스로를 칭찬이라도 해줘야 이 공무원 바닥에서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1분 뒤, 그러니까 9시가 되면 작정이라도 한 듯, 내 주변 모든 것들이 내 자존감을 바닥으로 끝도 없이 끌어내릴 테니까.


따르릉-


'역시'

화면 위 시간이 9시로 바뀌기 무섭게 내 자리 전화벨이 울려대기 시작한다. 나는 무심한 듯 무거운 손길로 수화기를 들어 올린다. 민원이다. 제기랄.

처음 들어보는 낯선 목소리의 주인공이 본인의 출근길에 겪은 열받는 일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책상머리에만 앉아있지 말고 나가서 현장 좀 보고 대처 좀 빨리 하라고, 똑바로 살라고. 그게 내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무원 니가 해야 할 일이라며 버럭버럭 소리를 친다. 교양도 넘치셔라. 아침부터 이렇게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그 하루가 행복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마음 같아서는 전화를 끊어 버리고, 아니다, 전화기 선을 끊어버리고 아침 햇살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오른편 창가로 전화기를 통째로 던져버리고 싶다. 창문을 열지 않은 채로 던져서 창문도 깨지고, 전화기도 깨지고, 전화기 너머 욕을 쏟아내는 민원인도 깨져버렸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면 내가 깨지겠지... 좋무원 신세...'

전화기에서 떠들어대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모니터로 눈길을 옮긴다. 지난밤사이 들어온 민원 30개가 있다는 알림이 반짝인다. 그 아래 국민신문고 창에는 7일 이내 처리해야 할 민원 100개가 반짝인다. 그중에 30개는 처리기한이 오늘까지다. 분명 어제도 열심히 민원을 쳐냈는데, 왜 오늘도 어제랑 똑같은 숫자의 민원이 쌓여있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오늘까지인데, 오늘 신문고 답변을 달변 과장님한테 깨지겠지? 그렇다고 민원 처리를 빨리 하면 민원인은 또 성의 없이 답변 달았다고, 현장은 나가보고 다는 거냐고 또 날 깨부수겠지? 이러나저러나 깨지겠지... 좋무원 신세...'


"네, 빨리 처리하겠습니다."

드디어 전화를 끊었다. 어떻게 10분 넘게 똑같은 문제를 갖고 이렇게나 화를 낼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9급 때는 이해해 보려고, 내가 정말 그렇게 죽을죄를 지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려고 수십 번을 마음먹어봤지만, 이제는 그냥 포기다. 그냥 너는 떠들어라, 나는 포기할 테니. 그러고 말뿐.


"박 주사! 전화 끊었지? 우리 팀 오전 회의 잠깐 하지."

왜 저 팀장은 늘 나를 콕 찝어서 말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무슨 사적인 통화 했나, 아침부터 민원인한테 개박살 나고 있는 팀원을 보고 있으면 불쌍하지도 않은지 묻고 싶다. 나도 팀장이 되면 저렇게 될까 싶다. 아차, 나도 모르게 끔찍한 생각을 했다. 팀장이라니. 그전에 빨리 이 좋무원 때려치워야지. 이 좋같은 좋무원을 팀장까지 해 먹을 생각을 하다니. 정말 끔찍하다.


끼익- 탁.

회의실로 들어가니 언제 왔는지 책임관님, 고 주사, 주 주사가 자리에 앉아있다. 마지막으로 팀장님이 가운데 자리에 앉으신다.


"다들 그 소식 들었지? 오전에 장례식장 잠깐 다녀오지. 박 주사 오전에 뭐 없지? 같이 가지."

팀장님이 대뜸 내게 묻는다.


'오전에 뭐가 없냐니. 방금 전에도 민원인한테 개 털리는 거 못 봤나. 쌓여있는 민원이 100개가 넘는데, 그것도 인력 없어서 내가 직접 현장 출장 나가서 처리해야 하는데 일이 없냐니.'

왜 저 팀장은 꼭 나를 지목해서 데려가려는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같은 남자여서 편해서 그런 건가. 운전도 잘 못하는데, 팀장을 옆에 태우고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갑갑해진다.


"아, 팀장님! 저 오전에 현장 출장 갈 일이 있어서..."

민원인의 폭탄과 팀장의 눈치 사이에서 잠시 갈등한 나는 민원인의 폭탄을 먼저 처리하기로 결심하고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뱉어본다.


"그래? 잘됐네. 그럼 현장 출장 가는 길에 같이 들리지 뭐. 가까워 여기서. 배차는 받아놨지? 아, 그래! 주 주사님도 현장 볼 겸 같이 가는 걸로 하지. 주 주사님 혹시 운전 좀 하나?"

늘 이런 식이다. 미꾸라지 같은 팀장. 상대가 어떤 말을 하든 어떻게든 자기가 생각한 방향으로 하고야 마는 간악한 팀장. 나는 깊은 한숨을 속으로 눌러 삼킨다.


"오~ 그럼 오늘은 박 주사 말고 주 주사님이 운전하시는 거? 박 주사는 좋겠네~ 운전 안 해도 돼서?"

옆에 있던 고 주사가 갑자기 날 보더니 비웃음 섞인 표정으로 말한다. 얄미운 것. 평소 내가 운전하는 차 탔다가 토 쏠려 죽을 뻔했다고 버릇처럼 얘기하던 저 간악한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있자니 속이 뒤집어지는 것만 같다. 아까 던지고 싶었던 전화기를 창문이 아니고 저 고 주사의 모니터 화면으로 던져야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흠흠. 고 주사, 아까 기자들 봤지? 분위기 안 좋으니까 입 조심하고. 박 주사가 배차 키 좀 받아오고, 나 화장실 좀 들렸다 10분 뒤에 출발하는 걸로 하지. 차 1층에 준비시켜 놓고."

팀장이 평소와 달리 짐짓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선다.


"아니,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 죽을 용기로 면직하는 게 낫지 참..."

고 주사가 혼잣말인 듯 다 들리는 소리로 중얼거린다.


"고 주사님, 그래도 사람이 돌아가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그것도 같은 공무원이 돌아가셨는데."

고 주사의 앞에 앉아있던 책임관 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하시고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회의실 문을 쾅 닫고 나가신다. 쌤통이다. 책임관님이 한 번씩 저렇게 고 주사에게 따끔한 한방을 놔줄 때마다 속이 아주 시원하다.


"왜 저래~ 책임관님 아침부터 까칠하시네. 뭐, 내가 틀린 말 했나... 그럼 죽은 게 잘한 거야? 죽으면 뭐 알아줘? 참..."

고 주사의 주둥이가 쉼 없이 떠들어댄다. 나도 팀장과 책임관님처럼 한 마디 해주고 싶다. 아니면, 내 망할 전화기를 던져버리던가.


"근데... 무슨 일이 있나 보죠? 아침에도 건물 앞에 사람들 모여있던데..."

주 주사가 내 눈치를 보며 묻는다.


'그러고 보니 아까 어디 간다고 했지? 장례식? 기자?'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주 주사의 눈빛에 내게 스치자 그때서야 나도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아, 주 주사님은 잘 모르시겠구나. 어젯밤에 도로관리팀 공무원 자살했대요. 신상이 털렸다나. 무슨 맘카페 같은데 신상 털려서 욕을 엄청 먹었대요. 웃기지 않아요? 누구는 안 힘든가. 그렇게 죽으면 누가 알아주나. 공무원 목숨에 누가 관심이나 있다고. 또 며칠 지나면 잠잠해질걸요? 괜히 기자들만 몰려와서 시끄럽게 만들고. 참..."

고 주사의 말에 주 주사가 깜짝 놀란다. 나 역시도 놀라긴 했으나, 팀장이 장례식 운운할 때부터 마음속에서는 대강 눈치채고 있었는지 그렇게 놀랍진 않다.

그리고 공무원 죽는 얘기야 뭐 한두 번인가, 죽어도 달라지는 거 없는 게 뭐 하루이틀일인가.


"그 팀이 빡세다고 듣긴 했는데... 담당자 1명에 나이 많으신 공무직 2명이서 이 도시 전체를 다 관리해야 하니까. 예산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또 도로다 보니까 운전자들이 민원을 겁나 넣는데요. 전화, 신문고, 인터넷 뭐 가릴 거 없이 막 쏟아진대. 그래서 낮에는 현장 출장 가서 직접 수습하고, 밤늦게까지 초과 근무 찍으면서 겨우 민원 응대했다던데? 57시간 초근 만땅으로 다 채우고. 거기다 사고 터지면 기자들 응대해야지, 윗 선에서 자료요청 들어오면 또 그거 만들어야지. 근데 이번에는 그 담당자 신상이 어디 카페에 공유돼서 난리였대요. 들어보니 그분 늦은 나이에 공무원 돼서 되게 성실히 했다던데...  열심히 했는데 신상 털리고 욕먹으니 현타가 왔겠죠..."

눈치도 없는 고 주사가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댄다. 이내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 주 주사가 그런 고 주사의 말을 차분히 듣고 있다. 공무원으로 출근한 지 이틀차에 동료 공무원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 주 주사의 심정은 어떨까 싶다. 남 말 하기를 저렇게 좋아하는 고 주사의 얘기를 계속 듣고 있다가는 나까지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아서 일부러 의자를 뒤로 밀어 끽-소리를 내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주 주사님, 배차하는 거 알려드릴게요. 가시죠."

나는 주 주사에게 일어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한다.


"아, 박 주사. 벌써 가? 주 주사님은 놓고 가면 안 돼? 책임관님이랑 둘이 팀에 있으면 불편하단 말야."

고 주사가 되지도 않는 요상한 콧소리로 말한다. 나는 당연히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회의실 문을 열어젖힌다.


"그리고 박 주사는 죽지 마. 죽으려면 미리 알려줘.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히히."

고 주사의 말이 분명 내 귀에 닿았음에도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건가 싶다. 죽으려면 미리 알려달라니. 이게 정말 사람이 사람한테 할 소리인가 기가 막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고 주사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그런 내 눈빛 따위 우습다는 듯 고 주사가 재수 없는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내가 언젠가 이 공무원을 때려치우게 되면 저 면상에 내 전화기를 반드시 처박아 주리라. 오늘도 깊은 분노를 마음속에 꾹꾹 눌러 감춘다.


고 주사의 말대로 민원 폭탄이든, 업무 과중이든, 신상 털기든, 그런 이유로 그 공무원이 그렇게 생을 마감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주변 동료 공무원의 무관심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느낀 이 공직 사회는 겉으로 봤을 때는 엄청 체계적인 국, 과, 팀의 조직으로 잘 나뉘어있어 보이지만, 결국 업무를 처리하는 건 혼자다. 당연히 책임도 혼자다. 그리고 그 책임의 정도라는 것이 6급 팀장이든, 9급 말단이든 모두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정말 그 책임의 무거운 부담이 모두에게 동일할까?

같이 일하던 동료 모두가 그 묵직함을 알지만, 누구도 그 부담을 덜어줄 손길을 내밀지 못한다. 아니, 내밀지 않는다.

그들의 말대로 그들 모두는 모두 각자의 이유로 바쁘고,

그들의 말대로 자신도 동등한 부담을 지고 일하고 있는 공무원일 뿐이니까.

거기서 '힘들다'는 말을 내뱉는 공무원이 있다면,

'공무원 모두가 다 똑같이 그러고 일하는데 왜 너만 유난스럽냐'는 싸늘함만 돌아올 뿐임으로.


'그렇게 책임감을 갖고 죽어라 일하다가, 그렇게 결국 혼자 욕 처먹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그렇게 되는 거지...'


회의실에서 나온 나는 주 주사와 함께 배차 키를 받기 위해 회계과가 있는 위층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수명 2분 10초 ↑>

<수명 2분 12초 ↑>

<수명 2분 16초 ↑>

<수명 2분 20초 ↑>


발이 닿는 계단마다 계단을 오르면 건강을 지켜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표시가 눈에 들어온다. 끊임없이 위를 가리키는 이 화살표를 따라 걸어 오르면 분명 내 수명이 길어져야 하는데, 왜인지 그 꼭대기에 닿고 나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 07화 7. 70살 막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