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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SH Feb 10. 2021

커리어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경력관리 노하우

15년쯤 전 스물일곱이던 나는 대학 졸업 후 창업을 선택했다. 업종은 웹에이전시였다. 지금 같으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나는 포토샵과, 에디트 플러스로 코딩도 조금, 디렉터와 플래시, PHP와 ASP도 조금, MY-SQL과 MS-SQL도 조금씩 다룰 수 있었는데, PHP SCHOOL과 TAEYO ASP라는 커뮤니티를 뒤져가며 혼자 웬만한 쇼핑몰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단지 그 이유 하나로 취업은 알아보지도 않고 대학 졸업과 함께 창업을 시작했다.


사무실은 동네에 보증금 500에 월세 50만 원짜리 조그만 공간 하나를 빌려서 개인 사업자를 내고 디자이너만 한 명을 뽑아서 직원 한 명인 회사로 출발을 했다. 영업은 당시 경제신문에 나오던 신규 법인 리스트에서 주소를 뽑아 DM을 보내는 것과 네이버 검색 키워드 광고 정도를 했는데 시기가 좋아서인지(당시 작은 웹에이전시들도 난립하던 시기였지만 고객이 되는 회사들도 홈페이지 하나는 있어야지 했던 시기였다) 1년여 만에 직원이 10명 가까이 늘어나기도 했었는데, 하지만 늘어가는 운영 비용 대비 매출은 정체가 되는 시기가 찾아왔고,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2년이 채 안돼서 폐업을 하게 됐다. 당시에는 경험이 부족한 것을 패인으로 보고 웹에이전시에 취업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렇게 해서 중소기업이지만, 직원이 200여 명 정도로 나름 업계에서는 규모가 좀 있는 회사에 첫 취업을 하고 웹기획자로서 일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해당 직군을 'UX 기획'이라는 용어로 정의하는데 당시는 '웹 기획'이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이 됐다. 하지만 실제 '웹기획자'라고 할만한 업무는 채 2년을 못한 것 같고, 말이 기획이지 사실상 PM을 겸하는 업무들이 주를 이뤘다. 게다가 내가 창업을 했던 경력이 있다 보니, 회사에서도 기획자보다는 프로젝트 관리 업무를 주로 배정했고, 여기저기 파견을 다니며 PM으로, 웹 기획으로, 또는 PM 겸 웹 기획으로 프로젝트를 5년간 하다가 '온라인 교육 콘텐츠' 회사나 'E커머스'쪽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직을 결심하게 됐다.


왜 갑자기 '온라인 교육 콘텐츠' 회사나 'E커머스' 회사를 생각하게 됐는지 궁금하신 분도 있을 터인데, 웹에이전시는 업종의 특성상 여러 분야의 회사와 일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매우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만나면서, 수주를 하려면 제안을 해야 하는데, 제안을 위해서는 해당 시장의 분석이 필수다. 이렇게 배우는 시장 환경과, 실제 클라이언트들과 같이 일하며, 경험하는 해당 업계의 동정과 시장 경험, 그리고 해당 회사에 대한 근무 환경 등이나 비전등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다 보니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렇게 이직을 하게 됐고 현재는 이른바 대기업이라고 하는 곳에서 E커머스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온라인 전반에 대한 지식이 있고, 쇼핑몰 구축 영업과 PM 업무를 진행할 경력직 직원을 뽑고 있었는데, 사실 PM 업무를 더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웹에이전시에서 하는 업무와 그래도 대기업에서 하는 건 좀 다르겠지라는 생각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10여 년간 이른바 대기업이라는 곳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인데, 신입들의 면접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 이른바 스펙이라고 하는 부분에 대한 준비가 정말 소위 빵빵하다. 그에 비해 경력직 입사는 스펙보다는 경력/경험 중심이기 때문에 스펙이 부족하다 싶은 사람은 신입 준비보다는 5~6년 정도 경력을 쌓고 경력직으로 도전하길 추천한다. 회사들도 점점 공채 신입은 줄이고 수시 경력직을 늘리는 형태로 채용도 변화하고 있다.


창업과 웹기획자와 PM을 거쳐 입사 후 여기서는 온라인 운영 전반에 대한 업무와, 마케팅, 신사업 프로젝트 등의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스스로 이제 내 직군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직장인들은 아시겠지만 '블라인드' 가입할 때 직군을 뭘로 선택해야 하나 고민이 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총 15년 넘는 직장생활을 해보니 스스로가 장점도 분명하고 단점도 분명하게 보인다.


장점은 업무에 영향도를 파악하기 위한 시야가 넓고 연계된 업무들을 고려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컨버전스의 시대라고 하는 데 있어서 핵심 역량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마케팅이면 쭉 마케팅을 하고, 영업을 한 사람은 쭉 영업을 하기 때문에 보통 여러 분야에 정보와 지식을 다양하게 가진 사람이 생각만큼 흔하지는 않다. 흔하지 않다는 것은 곧 유니크 한 부분이고, 이 것은 직장생활에 큰 경쟁력이 된다.


단점은 어느 한 분야의 전문성이 없어서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이다.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은 이직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스스로 내 직무와 직군의 카테고리를 잘 정의하지 못하게 된다. 모호함의 결정체라고 해야 하나.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못하는 것도 없다고 해야 하나..


내 커리어가 좋은 커리어 인지 나쁜 커리어 인지는 사실 아직 커리어가 끝난 상황이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 이제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은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고 이직을 한다고 해도 어디든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있다. 어쨌든 경험을 근거로 추천을 하자면 큰 방향은 딱 두 가지이다.


먼저 내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갈지 진로를 정해야 한다. 처음 정해야 할 것은 이 둘 중 하나다.


1.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것

2. 다양한 분야의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것


1번을 선택했으면, 그 분야를 파고들면 된다. 사실 여기선 나도 경험이 없기 때문에 별로 해줄 조언이 없다.

2번을 선택했으면, 처음부터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다.


대기업은 업무가 세분화되어 있고, 신입으로 입사하면 정말 작은 단위의 일, 예를 들어 마케팅에서는 광고, 광고에서도 바이럴, 바이럴에서도 SNS, SNS에서도 인스타그램, 이런 식으로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마케팅이라고 하면 광고/홍보/판촉/제휴/CRM 등 아주 크게 구분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구분이 되는데, 여기서 더 세분화 세분화 세분화된 업무만 담당하게 돼서, 이렇게 3년을 일한다고 해도 내 업무 외 다른 마케팅 업무는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수가 없다. 반대로 스타트업과 같이 작은 회사의 마케터는 광고/홍보/판촉/제휴/CRM 등의 업무를 혼자 다하는 경우도 많다. 소위 얇고 넓게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좁혀 가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그럼 언제 이직을 해야 하는가가 고민인데, 최소 4년~7년 정도를 추천한다. 6년 정도 경력이 사실 경력직으로 이직이 가장 활발하기 한데, 본인의 나이도 고려해서 서른 초중반은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회사를 다녀보니 10년 이상의 경력직의 입사는 거의 대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서 오는 경우가 별로 없다.


사실 스스로 정체성 혼란이 없지는 않다.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스스로 정의를 할 수 없어서 고민일 때도 많았다. 하지만 모두가 1번처럼 스페셜 리스트가 될 수는 없다.  주변을 보면 1번도 2번도 아닌 상태로 머무르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느니 애초부터 제너럴리스트적인 역량을 가진 사람이 되리라고 준비하는 것이 앞으로의 시대 변화에도 부합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중심이 되는 커리어가 하나는 있어야 한다. 대여섯 가지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대여섯 가지 업무가 모두 다 Main이 될 수는 없다. 최소한 Main과 Sub는 나눌 수 있고,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하나'는 꼭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나는 못 가지고 있는 것 같아 하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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