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에게 전화 한 통이 날아왔다
오늘은 유달리 창가의 햇빛이 잘 드는 날이었다. 뒷목에 진득한 땀을 훔치며 잠에서 깼다. 환한 창문, 지저귀는 새소리, 고요한 방.. 직장인이라면 이해하는 그 어떤 소름 끼치는 공기, 출근 시간을 지난 그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다. 난 직장인이 아니니까.
지난주 이 시간엔 사무실 책상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고장 난 에어컨에 불평하던 인간이 지금은 그때보다 더 더운 날씨에도 웃어넘길 수 있는 관대함을 지녀버렸다. 역시 훌륭한 인성은 마음의 여유에서 나온다. 이제 고작 백수 생활 일주일째, 난 완벽한 쉼 속에 행복을 만끽하는 중이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늘어지게 누워있다 부지런을 떨어보려 일어났다.
'띵디리리리띵리리리리'
오전 10시, 갑작스럽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이 아닌데? 평일에는 근무 중이라, 주말에는 벨소리에 잠 깰까 봐 웬만하면 오전에 전화하지 않는 분이신데.. 무슨 일이지?
"갑자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진아, 혹시 오늘 내려올 수 있니?"
"왜 왜 무슨 일 있어?"
"... 별 건 아니고 보험 문제가 있어서..."
서울서 고향까지는 기차로 3시간 거리다. 그렇기에 이렇게 갑자기 오라고 하는 경우의 거의 없다. 뜬금없는 전화와 뜬금없는 호출이라니. 묘한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엄마를 믿어보려고 한다.
"혹시 아빠 그 친구분 보험?"
"응응, 올 때 가족관계증명서도 꼭 떼오고.."
어린 시절 보험설계사이신 아버지 친구분을 통해 들어놓은 보험이 하나 있었다. 그 보험에 관련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하셨다.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해 우선 부랴부랴 짐을 쌌다.
"언제 올 거야?"
"음.. 한 이틀이면 되지 않을까?"
기차역에서 친구과 점심을 먹으며 나누던 대화. 서류적인 업무라 단순히 생각했다. 승강장에서 다시금 금방 오겠다며 약속을 하고 기차에 올랐다. 가벼운 배웅을 받으며 고향으로 내려갔던, 그땐 몰랐다. 엄마의 호출은 이틀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한 문제였단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