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랑'에 대한 나의 대답
나는 우주를 알고 나서부터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해졌고 어떻게 이렇게 까지 긴 시간(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까지 살아왔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러다 에너지를 떠올렸다. 우리는 음식을 먹고 거기서 얻은 에너지로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그 에너지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이뤄냈다. 인간이 만든 세상은 인간만의, 또 동물만의 에너지로 흘러간다. 나는 인간과 동물만의 에너지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물리적인 것까지도 사랑 때문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하나씩 설명하겠다.
일단 인간은 태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태어나기 위해서는 부모의 사랑이 필요하고 자식은 부모가 준만큼의 사랑의 크기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사랑의 크기가 작다면 자신이 담을 수 있는 사랑도 적고 줄 수 있는 사랑도 적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들은 그 사랑을 어떻게 받을지도(받아들일지도), 쓸지도, 주는 방법조차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받는 사랑 중에서 부모가 주는 사랑이 제일 중요하고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큰 사랑을 주는 부모 역시 부모의 부모가 큰 사랑을 받은 사람이어야 가능할 것이다. 부모에게서 얻은 에너지는 그대로 자식에게 이어지고 그 자식의 자식에게까지 이어질 테니까. 항상 그대로 전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우주는 부모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래서 부모가 무너지고 망가지면 아이의 우주도 망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큰 사랑이 부모의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느끼는 것은 부모의 사랑 밖에 없으니까. 어린아이들은 엄마 아빠 사랑을 먹고 큰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뒤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만약 아이를 원하지 않는 부부가 있다면 그 부부의 사랑은 자식이 아닌 자신에게 쏟고 있거나 배우자에게 많은 사랑을 쏟게 되거나 친구 또는 반려동물에게 더 많은 사랑을 줄 것이다.
나는 아직 자식을 낳아보지는 않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안다.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낳기 전부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심리적, 육체적 준비가 되었는지 꼭 생각하고 계획적으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나의 아이에게 많은 사랑을 주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어떤 책에서 “현재의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돈을 쓰는 것보다 불우한 가정환경에 놓여있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비용이 더 적게 들며 효과가 좋다.” 대충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이 연구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에 동의한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나오기 때문에, 즉 자신이 받은 사랑이 적기 때문에 그런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일반사람보다 훨씬 큰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우한 가정환경의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은 받지 못하더라도 사회가 주는 사랑을 조금이나마 먹고 컸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회가 나쁜 곳 만은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조금 늦었지만 여기서 ‘사랑’의 정의를 해보자. 국어사전에서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한다. 나도 이와 비슷하게 이야기하자면 ‘나의 시간을 남에게 쏟는 것 자체’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하면 연인 간의 사랑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인뿐만 아니라 부모, 친구, 반려동물 등 우리가 시간을 쏟는 것 자체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 친구를 만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약속 장소까지 가는 것 자체가 그 친구를 사랑하는 것이다. 서로를 위해 자신의 돈과 시간을 쏟기 때문이다. 앞에 ‘친구’라는 단어를 ‘연인’으로 바꾸어도 어색한 것이 하나 없지 않은가. 나는 연인이나 친구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동성이냐, 이성이냐의 차이 일뿐이라고 생각한다. (이성 간의 친구사이도 마찬가지이다.)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안 들뿐 우리는 친구를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과의 사이에도 사랑의 크기가 존재하는데 내가 더 좋아하는 친구일수록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친구일수록 같이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 추측이지만 예전에 동성과의 사랑은 금지였고 이성 간의 사랑이 더 크기 때문에 ‘우정’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것 같은데 나는 이 ‘우정’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랑’ 안에 포함된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정은 사랑의 한 카테고리에 있을 뿐이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 연인과의 사랑과 다른 결의 사랑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워질까? 지금까지 나의 친구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편지로라도 사랑한다고 전하려고 한다. 실제로 그렇게 해봤다. 진짜 사랑하니까. 오해하게 쓰지는 말고 하고 싶은 말을 다 전한 후 ‘어색하지만 사랑한다 친구야~^^’라고 전했다. 나름 기분이 좋다.
1차 산업은 농업, 목축, 수렵, 임업, 어업 등을 뜻하고 2차 산업은 제조업이고 3차 산업은 서비스 산업이다. 이는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예시는 고등어다. ‘어부가 고등어를 잡으면 공장에서 우리가 먹기 좋게 손질과 포장을 하고 전국으로 유통된 후 마트에서 팔면 드디어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게 된다.’는 예시였다. 감사함을 배우고 난 뒤 사소한 것에도 감사함을 얻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깨닫게 된 사실이었다. 우리에게 오는 모든 음식들과 물건들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저 돈만 벌려고 억지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온전한 사랑을 주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을 속이거나 (가격, 날짜, 원산지 등)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사회가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그 사실은 알려지고 탈이 되는 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못 믿는다는 것을 안다. 인간은 부정적인 것들을 더 쉽게 받아들이고 오래 기억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다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1차 산업을 하는 사람들이 제일 힘들고 많은 사랑이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투자비용, 시간, 인건비 등 정말 많은 사랑이 들어간다. 그래서 농부들은 자신의 농작물이 자식 같다고 비유하는 사람들도 많다. (반대로 ‘자식 농사’라고도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랑으로 힘들게 키운 농작물과 잡은 수산물들을 많은 사람들이 맛있게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깔려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돈 때문에 이 일을 한다고 해도 내가 키운 것들, 내가 잡은 것들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본다면 그 사람들은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음식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책상, 침대, TV, 시계, 냉장고, 텀블러, 장식품 등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이것들을 만든 사람들, 그리고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기 위해 연구하는 사람들을 통해 나는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자존감이 없다며 낙담한다. 자존감이 낮다는 것만 알고 높이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즉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랬다. 나 같은 경우는 자잘한 실패들과 큰 실패를 많이 했고 앞으로도 실패할까 봐 두려워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내가 정말 못난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난 이 감정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찾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 성공의 경험은 없고 실패의 경험만 쌓여 성인이 되었을 때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고 책도 읽기 시작했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성공의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해서 살도 20kg나 감량했으며 전액장학금도 받았다. 하지만 자존감은 쉽게 올라오지 않았다. 나를 미워하고 우울한 나날들이 많았다. 나의 가치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모도 아니고 장학금도 아닌 '진로'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나에게는 제일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진로를 잃어버린 후 찾지 못한 나는 다른 성공의 경험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과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노력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의 자존감은 다시 바닥을 치려고 했다. 진로는 하루아침에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쭉 자존감이 높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성공의 경험 말고 다른 방법으로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보고 있었다. 그 방법은 바로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는 방법'이다.
자기 계발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다가 이런 문장을 보았다. (어디서 봤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샤워하는 하는 것도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았다. 샤워를 하는 행동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라니.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니. 나는 나를 단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지금까지 매일 샤워를 했던 것은 뭐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아침 일과를 생각해 보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내가 살기 위해 밥을 먹고 내가 깨끗해지기 위해 샤워를 하고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서 노래를 듣고 또 부르면서 학교에 간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남을 깨우고 운동을 시키고 샤워를 시키고 밥을 먹이라고 한다면 힘들어서 안 할 것이다.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픈 사람을 간호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한다고 단정 짓기도 했고 매일 하는 것 인데도 너무 당연해서 느끼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다른 것에도 확대해서 적용시키기 시작했다. 웃긴 영상 보기(유튜브 보기), 여행하기(놀러 가기), 공연 보러 가기, 전시회 관람하기 등 우리가 그냥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나를 행복하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다. 우리가 SNS를 중독이 될 때까지 하는 이유는 도파민 때문이다. 도파민은 쾌락의 호르몬이라고도 불린다. 즉 우리는 쾌락을 느끼려고 하는 것이다. 쾌락은 국어사전에서 ‘유쾌하고 즐거움. 또는 그런 느낌, 감성의 만족,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유쾌하고 즐거운 감정, 성적 쾌락.‘이라고 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나를 웃기게,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조차도 나에 대한 사랑이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조차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더 일상적인 것을 찾아보자면 나는 사진 찍기도 이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에 찍는 것인데 결국 나를 위한 행동이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내가 걷는 것보다 편하게 육체적 노동을 덜 하기 위해, 즉 나를 위해서 이용하는 것이다. 심지어 병원은 아픈 나를 낫게 하기 위해 가지 않는가?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항상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
조금 더 본능적인 것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더울 때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것, 추울 때 따뜻한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내 몸을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다. 나를 살리기 위해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들이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예를 들 수 있다. 남에게 위로받고 싶어 하는 마음, 칭찬받고 싶어 하는 마음, 남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 등 그런 마음까지도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드는 것이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랑은 부모님이 주시는 사랑 다음으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은 부모님이 주신 사랑보다도 나를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예전에 방탄소년단을 좋아했을 때가 있었는데 (내가 중학교 때였다) Love Myself라는 앨범이 나왔었다. 그때는 사실 나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 그냥 그런 콘셉트의 앨범이구나’ 하고 넘어갔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이 정확히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팬들에게 대단한 것을 알려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때 이 메시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나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도 한 때 ‘나를 어떻게 사랑하라는 거야?’라고 질문했던 적이 있다. 나의 답은 ‘이미 사랑하고 있는데 못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당신이 살기 위해 하는 모든 행동이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는 ‘그 사소한 것들을 지나치지 말고 느껴라.’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한없이 우울할 때면 누군가가 해주었으면 하는 말이다. ‘어차피 내일 나는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음악을 들으며 밖으로 나간다. 지금 우울해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나의 진로를 찾는다면 그때는 더 높이, 더 크게 나를 사랑할 수 있겠지(자존감을 높일 수 있겠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크게 무너진 이유는 나에게 제일 중요한 '진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힘들고 우울했다. 개인적으로 내가 자존감이 낮은 것을 인식하고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지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무작정 성공의 경험만 쌓기보다는 내가 진정 무엇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졌는지를 찾고 그것을 보완했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성공한 경험이 있더라도 쉽게 좋아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이유를 찾지 못했거나 나처럼 단기간에 보완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 방법이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악동뮤지션의 '사소한 것에서'라는 노래를 추천한다. 이 글을 쓰고 오랜만에 들어봤는데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 가사에 담겨있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이 사실을 알고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까지 이 노래를 헛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찬혁 당신은 정말 언제부터 이런 것을 깨달은 거야… 사랑해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해 줘서 감사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평균 1명도 안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저출산은 사회적인 문제가 제일 크다고 말한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기 힘든 환경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주장에 살짝 변론을 하자면 일단 전쟁 중에도 아이는 낳았다. 그리고 지금보다도 더 키우기 힘든 옛날에도 많이 낳았다. 여기서 나는 지금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안 좋은 현상이다.) 이 현상으로 인해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생각하는 의식 수준이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는 나도 포함된다. 생명체를(아이, 반려동물 등) 키우는 것은 전혀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즉 한 생명에 대한 존중과 키우는 사람의 책임을 예전보다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 시대에는 우리가 키워 먹는 닭, 소, 돼지 등의 동물 복지까지 생각하는 시대이다. 외국에서는 해산물도 한 번에 기절시키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기사도 보았다. 우리가 먹을 동물들의 고통까지 생각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와 동시에 자신이 키우는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책임에 대한 생각도 훨씬 커졌다. 아동학대의 법이 강화되고 동물학대의 법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범죄자에 대한 연구에서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가정환경이 좋지 않다는 결과들이 나오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나는 이러한 사건들이 차곡차곡 모여 지금 사람들의 생각('개인주의'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 하나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아이를 낳아요'
'저는 지금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아요.'
'차라리 저 혼자 편하게 살래요'
내가 아이를 낳아도 완벽하게 케어를 해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전제하에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제대로 챙기지도 못할 거면서 자신도 힘들다면 그냥 낳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나는 이것이 정말 그 생명체를 존중하고 책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생각하며 그 아이가 고통 속에서 자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테니까. 이것은 그저 두려움에 떠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생각들이 한편으로는 자신을 더 사랑하고 싶다는 말로 들린다. '나를 사랑하라'라는 말이 세상 밖에 퍼졌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는 결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나는 이에 동의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는 결혼과 출산이 최고의 행복이며 나를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나에게는 제일 큰 행복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했을 때 사회는 아이를 낳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생각의 수준이 높아진 사람들을 생각하며 법을 만들고 복지를 지원해야 한다. 무턱대고 돈만 준다면서 아이를 낳으라고 하고 왜 안 낳냐고 비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애국심이 없어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각이 발전한 것이다. 이전의 어른들이 먼저 생명체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존중과 책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음에 낳지 않게 된 것뿐이다. 솔직히 나는 이 저출산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이 발전한 것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이 부분을 윗 세대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랑은 다른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를 공감 못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계속 이대로라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더 떨어지고 말 것이다.
우주, 내가 이런 생각을 처음 갖게 해 준 동기가 된 것이기도 하다. 우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우리는 작다.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사진과 글을 알게 된 후 내 인생이 조금이나마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다. 창백한 푸른 점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지구에서 제일 멀리 있는 탐사선인 보이저호로 지구를 찍은 사진이다. 칼 세이건의 말처럼 우리는 이 작은 지구에서 도둑질을 하기도, 연극을 하기도, 일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싸울까? 왜 힘든 것이 크게 느껴지는 것일까? 우리는 우주의 먼지만큼도 안 되는 존재인데.
창백한 푸른 점 -칼 세이건-
"지구는 광대한 우주의 무대 속에서 하나의 극히 작은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조그만 점의 한 구석의 일시적 지배자가 되려고 장군이나 황제들이 흐르게 했던 유혈의 강을 생각해 보라. 또 이 점의 어느 한 구석의 주민들이 거의 구별할 수 없는 다른 한 구석의 주민들에게 자행했던 무수한 잔인한 행위들, 그들은 얼마나 빈번하게 오해를 했고, 서로 죽이려고 얼마나 날뛰고, 서로 얼마나 지독하게 미워했던가."
나는 우울함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너무 힘들 때마다 생각하는 것은 창백한 푸른 점이다. 그 사진은 지금 일어난 일이 이 우주에 비하면 너무나도 하찮고 쓸데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곳에 살면서 왜 이렇게까지 슬퍼하며, 우울해하며 살아야 하나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 30분 후에는 다시 새 삶을 살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주를 알게 되니 세상 모든 것들이 하찮아 보였다. 그냥 짜증 내는 사람들, 권력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서로를 죽이는 사람들, 비난하는 사람들 모두 하찮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반성하기 시작했다. 나는 뭘 위해서 싸우고 짜증을 냈을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우리는 우주에 비하면 너무 짧은 공간에서 짧은 시간 동안 산다. 그 짧은 시간에 우리는 사랑을 나누기도 벅차다. 나는 이 사실을 안 후 모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화를 내도 달라지는 것은 없으며 화를 내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너무나도 작고 하찮다. 그렇기 때문에 더 사랑해야 한다.'
이 말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님이 하신 말씀이다. 정말 처음에 이 강의를 들었을 때 몇 시간 동안 멍해져 있었는지 모르겠다. 너무 인상 깊어서 며칠 동안 쇼츠로 10번 넘게 본 것 같다. 나는 이분의 생각에 너무나도 동의한다. 그래서 나는 죽기 전까지 최대한 내가 받은 사랑을 주며 살아가고 싶다. 우린 아무것도 아닌 존재니까 더 사랑해야 한다. 짜증 내는 시간이 아깝다.
내가 우주와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우주는 너무 거대하고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어렸을 때 큰 공룡을 동경하는 것처럼 나는 우주를 동경한다. 과학을 좋아하게 되고 나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그저 감사하다.
나는 솔직히 연애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누군가를 미치도록 좋아해 본 적도 없다. 그래서 이별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좀 과장해서 전 세계의 90% 이상의 노래가 다 연인관계의 사랑에 관련된 노래이다. 그래서 나는 반항하는 것처럼 일부러 사랑 노래를 듣지 않았다. 공감이 되지 않는다면서 힙합에서 자랑하는 노래(flex), 과거를 회상하는 노래, 위로가 되는 노래, 그냥 신나는 노래 등 사랑에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노래들만 골라서 들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되었고 '샤워를 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노래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랑을 하는 노래는 자신을 사랑하는 노래이고 위로가 되는 노래는 듣는 이에게 사랑을 주는 노래이다. 누군가는 억지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믿는다. 노래를 듣는 것 자체도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노래를 만든 사람들도 사랑을 쏟아부어 만든 것이다. 그렇기에 듣는 이에게 공감을 줄 수 있고 사랑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노래를 만든 사람은 자신의 노래가 대중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모든 노래가 다 사랑노래처럼 들린다. 약간의 예외가 있다면 디스곡 정도 일까나…?
'소금(sogum)'은 내가 좋아하는 가수 중에 한 명이다. '소금'의 노래는 연인과의 사랑 노래도 있지만 자신의 꿈에 관한 노래나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도 있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에 대해 말하는 노래도 있다. 그런데 인터뷰에서 '내 노래는 전부 사랑 노래야!'라고 하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때는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소금'은 이미 모든 것은 사랑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노래한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소금의 앨범 중에서 'Precious'라는 앨범을 듣고 충격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 그냥 이 앨범을 들었을 때는 연인과의 사랑 노래인 줄 알았는데 이 앨범 홍보 영상을 보고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랑노래도 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노래가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고 특별했다. 나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Precious -sogum-
어떤 말을 할까 참 고민했어
너무 소중해서 너무 아까워서
너의 일분일초가 내게 와서
날 안아줘서 날 잡아줘서
I know that I have a lack of experience
이 시간이 특별하다는 건 알아
Oh wow 빛나
그리고 이 앨범에서 또 다른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이 사랑은 나에 대한 사랑이다.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 혼자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내가 말하고 싶은 '사랑'에 대한 메시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처방전 -sogum-
인생의 쓴맛이 손끝까지 느껴질 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때
오 너의 사랑을 통해 약이 되고
우리 그냥 하던 거나 하면 돼
……
오 사랑 약이 되어주오
쓰다고 뱉지 않을게요
나는 지금까지 사랑노래를 거의 듣지 않는다고 부정해 왔다. 어느 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내가 제일 많이 듣는 노래의 가수는 누구일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제일 많은 노래를 듣는 아티스트는 '검정치마', '콜드', '악뮤', '릴러말즈'였다. 신기하게도 이들의 공통점은 사랑노래를 제일 많이 부른다는 것이다. 특히 검정치마와 콜드는 거의 모든 곡이 사랑노래이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주변인들에게 사랑노래를 거의 듣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가수가 사랑만을 노래하는 사람이라니. 사랑을 해본 적도 없으면서 그들의 가사에 공감을 하고 상상하며 행복해했다. 어쩌면 나는 계속 사랑을 갈구하고, 또 궁금해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내가 이 노래들을 지금보다도 더 이해하고, 공감하고, 해석하고, 감동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다 사랑을 주기도, 받기도 하는 존재 들이다. 어느 누구라도 사랑을 한 번도 주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항상 사랑을 주어야만 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가끔씩 그 사랑이 너무 지나쳐 잘못된 사랑을 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개는 훌륭하다'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강아지가 이상행동을 보이는 것은 거의 다 보호자의 행동 때문인 경우가 많다. 사랑을 안 주거나, 너무 많이 주거나이다. 대부분 후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호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잘 모른다. 잘 키우고 예뻐하기만 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을 보아도 똑같다. 보호자(부모)가 아이에게 관심이 없거나, 너무 과도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우리는 항상 사랑을 끊임없이 주고받지만 어떤 것이 올바른 사랑인지, 얼마큼, 어떻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지금까지도 훈육에 있어서 많은 논쟁들이 있다. 우리들이 올바른 어른이 되고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랑을 주는 방법에 대해 지금보다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사랑에 대해 공부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생각해 보다가 '군중이 동시에 느끼는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모두 같은 사람, 같은 경기, 같은 이야기를 보려고 보인 사람들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보고 싶었던 가수나 배우, 선수를 기다리는 마음, 그리고 시작되었을 때의 설렘, 신남, 흥분 등은 모두 사랑이 되어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런 곳이야 말로 사랑이 끊임없이 순환이 되는 곳이 아닐까? 예를 들어 가수는 팬들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한 무대에 올라서 사랑을 표현하고 팬들은 그 가수만을 위해 공연장에 오고, 굿즈를 사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열광을 하며 사랑을 준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이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사랑은 혼자일 때보다 여러 명일 때 훨씬 크게 와닿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모든 것들이 사랑으로만 이루어지긴 하지만 특히 무대, 스포츠, 영화, 드라마 등은 오로지 사랑으로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우리는 무대 없이도, 스포츠 없이도, 영화, 드라마가 없어도 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실용적인 것에는 전혀 상관없는 이것들은 돈이 되고 영향력이 생겼다. 무대는 팬들의 수요가 없으면 못하고 스포츠도 응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저 공놀이일 뿐이고 영화, 드라마도 수요가 없으면 돈이 없어서 만들어지지 못한다. 이런 것들의 공통점은 정말 사람들의 '사랑'으로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혼자 좋아해서는 할 수 없는 것, 여러 사람들이 좋아해야만 내가 같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검정치마'의 단독 콘서트를 다녀왔다. 여러 명이서 하는 콘서트는 한번 다녀왔지만 단독 콘서트는 처음이었다. 내 주변에 나만큼 '검정치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 혼자 다녀왔다. 다들 아름아름 알기는 하지만 나는 거의 모든 곡을 다 알고 앨범의 노래 순서까지 외울 정도로 정말 많이 듣는 편이라서 내가 좋아하는 만큼 같이 공감해 줄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공연장 근처에 가기만 했는데도 검정치마 티셔츠(굿즈)를 입은 사람들이 보였고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티켓을 받고 굿즈를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혼자 갔지만) 소속감을 느꼈다. 그리고 공연장에 들어가서 검정치마가 등장할 때 그 환호성과 함께 느낀 전율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정말 순수한 사랑을 보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사랑은 너무나도 컸다.
내 주변에 이 노래의 가사를 외우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는데 무대에 모인 사람들은 너도나도 잘 안다는 듯이 떼창을 했다. 솔직히 그 가수를 본 것보다도 그 가수를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도 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시간들로 기억에 남았다. '이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그래서 난 '군중의 사랑'을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 기분은 내가 지금까지 느꼈던 어떤 감정과도 비교할 수 없이 좋았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인 것 같기도 하다. 나만 좋아하는 가수가 있다면 단독콘서트를 가보기를 권장한다. 정말 색다른 경험이 될 거라고 장담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야구의 찐 팬이다. 집에서 보는 것 보다도 직관에 가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팬이다. 야구장도 무대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한 팀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다. 잘할 때는 한 목소리로 같은 노래를 부르며 응원하기도 하지만 못 할 때는 모두가 탄식을 하거나 욕을 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것이 좋다. 소속감을 느끼는 것.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팀을 응원한다는 것이 그냥 기분이 좋다. 응원은 어쩌면 군중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 표현이 아닐까?
나는 한화 팬들을 정말 존경한다. 지금 몇 십 년째 하위권에만 머무른다. 항상 8등이거나 9등이거나 10등(꼴찌)이다. 그런데도 한화 팬들은 떠나지 않고 끝까지 응원한다. 우승을 꽤 여러 번 한 우리 팀(SSG) 보다도 팬 수가 훨씬 많다. 많은 경기를 지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계속 기죽지 않고 응원하는지 모르겠다. 팀이 못하는데도 팬들은 넘치는 사랑을 준다. 팬들은 참 대단한 것 같다.
+이 글은 꽤 오래전(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2~3년 전)에 썼다. 드디어 그 많은 사랑을 받았던 한화가 우승을 해서 팬들에게 돌려줄 수 있을까? 나는 내심 한화가 우승하는 것을 보고 싶다. 한화가 우승을 하면 대한민국이 들썩일 것 같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국시리즈에서 롯데와 한화가 하는 경기를 보고 싶다. 얼마나 재밌을까 벌써부터 도파민이 터지는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교양 프로그램인 알쓸별잡에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님을 인터뷰를 했다. 거기서 '영화의 극장 상영을 중시하시는 이유는?'이라는 질문에 감독님은 영화관은 소설이 주는 주관적 경험을 관객들과 공감으로 연결시킨다고 하셨다. 그리고 "붐비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건 영화에 대한 감정을 증폭시킨다고 생각해요", "공동 경험은 감흥을 증폭시키는 것 같아요."라고 하셨다. 이 인터뷰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혼자가 아닌 '군중'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모르는 사람이 모였음에도, 서로 말을 하지 않더라도 공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참 신기한 존재인 것 같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동시에 함께 한 존재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까.
'표현하지 않아도 안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에서 표현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연애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하트시그널이라는 프로그램과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사랑은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행동보다는 말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행동으로는 사랑이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행동은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사랑이 직접적으로 느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 이만큼 힘과 노력과 시간을 쏟았구나'라는 것까지 생각을 해야 사랑이 느껴진다. 하지만 말(언어)은 그렇지 않다. 제일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사랑해', '고마워', '감사해' 등 할 수 있는 표현도 굉장히 많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행동보다는 말이 더 중요하다. 나는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하는 행동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나에게 하는 행동들의 수고를 깨닫기 전까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안다. 그것을 깨달은 지금도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는 서로 사랑을 표현하는 말을 안 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날카로운 엄마의 말을 들을 때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진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굉장히 크게 느꼈다. "말을 예쁘게 하자."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말을 더 이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서로 행동을 잘해준다고 해도 그 노력이 말 한마디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 크게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도 아직 노력하고 있다. '사랑해'라는 말을 하지 못하더라도 예쁘게 말하려고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