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안녕, 2025년
대학교 막학기인 나는 최근 ‘마지막’, ‘끝'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대학교도, 자취방도, 친구들도, 자주 가던 카페도, 교수님도, 악기도 저번주를 마지막으로 모두 마무리하고 왔다. 물론 가끔 학교를 놀러 가기도 하고 친구들이나 교수님도 보겠지만 어쨌든 이 학교의 학생으로서는 마지막이다. 이 ‘마지막’, ‘끝'이라는 단어는 마치 ‘죽음'처럼 묘한 기분을 남긴다. 씁쓸하고 아쉽고 공허하기도 하다. 약간의 두려움도 있는 것 같다.
마지막이라는 것은 곧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 아닐까.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은 곧 기존의 생활을 깨야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낯선 곳에서 처음부터 성장하기 시작해야 한다. 기존의 편안했던, 적응을 했던 생활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 나는 줄곧 그런 새로움을 갈망했다. 10년 동안 해온 한 길을 접어두고 내가 전혀 모르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두렵고 무섭다. 매우 힘들 것을 알기에 그렇게 원하던 마지막이지만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그리고 그렇게 싫어했던 학교와 악기였지만 내 인생에서 대학교가 제일 재밌고 행복했기에 이를 떠나보내는 마음을 쉽게 달랠 수가 없다.
나는 처음에 시작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시작이 반이다.’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시작하면 일단 열심히 하고 공들이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시작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성향이 있다. 시작하면 쏟는 에너지가 많기 때문에 미룬다. 고쳐야 할 나쁜 습관이다.) 하지만 시작만 창대하고 끝은 미약하면 시작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또 엄청 꾸준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시작은 잘 하지만 항상 끝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영어공부가 있다. 지금까지 적어도 10번 이상은 영어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어서 두 달까지는 꾸준히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포기하게 된다. 별나도 괜찮아 쉐도잉, 해리포터 쉐도잉, 원서 읽기, 여행영어, 스픽 등 시도는 정말 다양하게 했다. 그런데도 아직도 초등학교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꾸준히 한 것은 스픽인데 지금은 또 일주일째 불꽃이 끊겼다. (매일 하지 않으면 불꽃이 끊긴다.) 내가 영어를 잘하게 되는 날이 올까? 계속 시도하다 보면 꾸준히 하게 되는 날이 올까?
다시 생각해 보니 끝이 조금 더 중요한 것 같다. 물론 시작을 하지 않으면 끝도 없으니 시작도 중요하다. 하지만 ‘마지막’, ‘끝', ‘마무리'는 나에게 더 깊은 울림과 여운을 준다. 솔직히 시작할 때의 설렘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리고 금방 까먹는다. 그리고 끝은 나에게 성장을 보여준다.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해결했고, 지금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시작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알려준다. 또 한 가지의 마무리의 좋은 점은 ‘미화'다. 힘들었던 기억들을 추억으로 남게 해 준다. 만약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미화되지 못할 것이다. 끝을 지었다는 것은 끝까지 책임을 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시작보다 끝이 더 멋있고 중요한 이유이지 않을까. 내가 수도 없이 시작했던 영어공부처럼 시작은 언제든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느냐의 문제는 다르다. 마무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멋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나도 장장 4년(휴학 포함 5년)의 대학 생활을 탈 없이 잘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멋있는 사람으로 한 발자국 정도 나아간 것 같다. 대학교에서 나는 무엇을 했을까.
-총 140학점을 들었다.
-학점은 평균 4.29로 꽤 열심히 들었다.
-처음으로 1등도 했다.
-동아리에 들어가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러닝을 꾸준히 하게 되었다.(하프도 뜀)
-학회장이 되어서 내 인생에는 평생 없을 줄 알았던 경험들을 했다.
-마지막 정기연주회에서는 솔로파트도 맡았다.
-막학기에는 인생 강의를 들었고 그 강의에 대한 에세이를 써서 대상을 받았다.
처음으로 나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4년이다. 살면서 한 번도 내가 나를 바꾸기 위해서 시도한 것이 없었는데 대학 생활은 달랐다. 나에게 더 큰 세계를 구경시켜주고 싶어서 동아리, 학회장을 자원했으니까. 이거 두 개만 해도 나에게는 큰 수확이다. 특히 러닝동아리는 내 인생을 바꿨다. 러닝동아리에 들어간 나 자신 진짜 칭찬해.
안녕 2025년
이렇게 좋은 경험이 가득한 곳을 떠나려니 묘한 마음이 드는 것 같다. (이런 좋은 경험을 했던 적이 처음이어서 더 그런 것 같다.) 굉장히 복합적인 마음이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씁쓸하고, 허전하고, 아쉽고, 벗어나기 싫고, 뿌듯한 마음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어 있다.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이다. 이곳을 떠나 새로운 길을 찾고 싶으면서도 편안한 이곳을 떠나기 싫은 마음이랄까. 그래서 처음에는 조교까지도 고민했었다. 단순히 이곳에 더 머무르고 싶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떠나가야 할 때인 것 같다. 학교에서의 일들은 마무리 짓고 더 넓은 세계를 경험시켜 주기 위해 밖으로 나갈 것이다. 이 여운은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언젠가 또 이런 여운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이 감정을 또 느낀다는 것은 어떤 일이든 잘 마무리했다는 것이니까. 안녕 2025년. 올해는 진짜 열심히 살았다. 한 번도 열심히 산 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2025년은 진짜 열심히 산 것 같아서 보내주기가 아쉽네. 진짜 마지막 안녕.
만남보다 헤어짐에 더 큰 예를 갖추고, 시작보다 끝이 중요하다고 배웠으니까. 사람관계든 일이든 마무리는 늘 신중해야 해. -베아- 2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