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빛(불)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그리고 헤스티아

by 노수연

최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책을 읽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 되었으며 두고두고 여러 번 읽게 될 책인 것 같다. 마음에 담아두고 생각하고 싶은 부분이 굉장히 많은데 오늘은 '빛'에 대해서 내 생각을 정리하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사람들의 영혼과 사랑을 ‘빛’으로 표현한다.


빛을 발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워. 빛이 강해질수록 유리의 곡선도 전구의 형태도 그 빛에 묻혀버리지. 실은 대부분의 여자들…그러니까 그저 그렇다는 느낌이거나…좀 아닌데 싶은 여자들…아니,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가수니, 배우니 하는 여자들이 아름다운 건 실은 외모 때문이 아니야.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주기 때문이지. 너무 많은 전기가 들어오고, 때문에 터무니없이 밝은 빛을 발하게 되는 거야.


그건 단순한 불빛이 아니라…평범한 인간들의 무수한 사랑이 여름날의 반딧불처럼 모이고 모여든 거야. 그래서 결국엔 필라멘트가 끊어지는 경우도 많지. 교만해지는 거야. 그것이 스스로의 빛인 줄 알고 착각에 빠지는 거지. 대부분의 빛이 그런 식으로 변질되는 건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어. 하지만 어쨌거나 그들도 결국은 개인일 뿐이야. 자신의 삶에서 사랑받지 못한다면 그 어떤 미인도 불 꺼진 전구와 같은 거지. 불을 밝힌 평범한 여자보다도 추한 존재로 전락해버리는 거야. 195p


인간은 참 우매해. 그 빛이 실은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걸 모르니까. 하나의 전구를 터질 듯 밝히면 세상이 밝아진다고 생각하지. 실은 골고루 무수한 전구를 밝혀야만 세상이 밝아진다는 걸 몰라. 자신의 에너지를 몽땅 던져주고 자신은 줄곧 어둠 속에 묻혀 있지. 어둠 속에서 그들을 부러워하고…또 자신의 주변은 어두우니까…그들에게 몰표를 던져. 가난한 이들이 도리어 독재 정권에게 표를 주는 것도, 아니다 싶은 인간들이 스크린 속의 인간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헌납하는 것도 모두가 그 때문이야. 자신의 빛을…그리고 서로의 빛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 기대하지 않고…서로를 발견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야. 세상의 어둠은 결국 그런 서로서로의 어둠에서 시작돼. 196p



이 글을 읽으니 그제야 이해가 갔다. ‘빛'이 TV 속 연예인들이 더 잘생기고 예뻐 보이는 이유였다. 나에겐 야구선수가 그런 존재인 것 같다. 그 사람이 잘생기지 않았어도 사람들의 빛(사랑) 때문에 더 빛나 보이고 멋있어 보인다. (러닝에서는 요즘 ‘심진석’님이 이런 경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빛은 평범한 사람도 밝게 비추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서로에게 그 빛을 나누어 주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분명 우리도 서로의 빛을 나누어주면 연예인만큼의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텐데. 왜 우리는 골고루 전구를 밝히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생일, 키, 몸무게, 활동, 취향, 취미, 속사정 등을 안다. 과연 나는 내 주변인에게 그만큼의 관심을 주는가? 나는 누구의 생일과 취향을 기억하고 있는가? 이것은 굉장한 모순이다. 제일 중요한 내 주변인들에게는 관심이 없으면서 누구나 다 아는 연예인의 정보는 빠삭하게 알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연예인보다 내 주변인에게 빛을 나누어주어야겠다.



내 안의 빛

예전에 이모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수연이가 러닝 동아리를 들어가고 나서 얼굴이 좋아졌어. 사람이 밝아진 것 같아서 좋아.”


정확한 멘트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말이었다. 나의 전구에는 빛이 거의 없었다가 동아리 사람들이 빛을 나눠주면서 밝아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빛이 들어오기 전의 나는 ‘좀 아닌데 싶은 여자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친구들이 빛을 나누어주었고 나는 어느새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의 빛 덕분에 처음으로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아 고마워.


나는 그 친구들에게 빛을 나누어주었을까? 내 빛이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었을까? 나를 빛나게 해 준 친구들에게 지금부터라도 빛을 나누어주려고 노력해야겠다.



헤스티아

이 빛에 대해 생각하다가 헤스티아가 떠올랐다. 헤스티아는 불(화로)의 여신이다. 그녀는 내면의 불꽃을 지키는 여신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원래 헤스티아는 12 신 중 한 명이었지만 자신이 빠져도 된다고 하여서 디오니소스가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감이 없어도 될 만큼 자존감이 있는 여인인 것이다.


이 빛과 불꽃이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모두가 가지고 태어난다. 태어날 때는 이 빛을 가득 안고 태어나서 부모님과 빛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점점 커가면서 빛을 엉뚱한 곳에 너무 많이 주는 바람에 빛을 잃게 된다. 이때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불(헤스티아의 불)마저 지키지 못하고 꺼져버린다면 다시 살려낼 수 없을 것이다.


나도 한때는 빛이 꺼지기 직전이었지만 나 스스로가 그 불을 꺼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불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공부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잘 살아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빛을 받아 연명했다는 생각도 든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 안의 불꽃이 크든 작든 꺼지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받아서 살아가는 것은 한계가 있고 그 불은 금방 꺼져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빛과 불이 절대 내 불과 섞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불도 마찬가지로 다른 세계(우주)의 불은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불로 인해 내 불을 키울 수는 있는 것이다. 내 불을 키울 수 있는 에너지가 되는 것이 아닐까.



내 안의 빛이 거의 다 소진이 되었더라도 내 안의 아주 작은 불씨가 살아있다면 그것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주는 빛을 활용해 더 큰 불을 만들 수 있도록 보살피고 공부해야 한다. 앞으로 다른 사람이 준 빛을 헛되이 쓰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 헤스티아는 처녀의 신이기도 하다. 처음에 헤스티아를 배울 때는 왜 굳이 그녀가 처녀의 신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뮤지컬 레드북을 통해 날 이해해 줄 한 사람은 어떤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그리고 지금 이 글을 통해서 헤스티아가 왜 처녀의 신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