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노수연

말. 혼자 살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말'이라고 생각한다. 말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지만 그 어떤 것 보다도 강력하다.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 이 글을 통해서 왜 우리는 말을 예쁘게 해야 하는지, 진실하게 말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말을 조심히 하며 살자는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말은 표면적인 것이다.

말은 내 생각을 밖으로 내뱉는 것이다. 하지만 말(언어)이 복잡한 마음과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굉장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을 말로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내 모든 생각을 말로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분명 좋은 의도로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생각을 읽지 못하고 상처를 받는다. 말은 굉장히 표면적이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하는 것이 다 일 때가 있다.


말은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들어 버린다. 나는 그것이 싫다. 나는 굉장히 복잡한 인간인데 누군가 나보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말하면 나는 그냥 게으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말로 인간을 정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말로만 듣고 판단할 때가 많다. 말이 그 전부라고 생각한다. 말은 마치 생각의 외모 같다.


‘감동적이다.’ 또는 ‘예쁘다.’는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없다. 어떻게 감동적인지, 무엇 때문에 예쁘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모든 풍경과 작품에 똑같은 감동을 받지 않는다. 모두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감동'이라는 말로 그 감정들을 퉁치게 된다. 말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한 최선의 도구지 최고의 도구가 아니다. 이런 말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오랫동안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을 말로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 ‘애증 하다.’, ‘가슴이 아린다.’, ‘공허하다.’, ‘황홀하다.’ 등 사람은 많은 복잡한 감정들을 말로 표현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말로 굉장히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저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말을 예쁘게 하자.

우리가 외모를 신경 써야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것처럼 말도 잘 꾸며야 한다. 사람들과 같이 살려면 꼭 말을 꾸며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은 실제로 무겁지만 우리는 그 무게를 잘 느끼지 못한다. 너무나 쉽게 할 수 있어서 막 해도 되는 줄 아는 것 같다. 사실 나는 말하는데 자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막말을 할 권리가 전혀 없다. 즉 상대방에게 말로 상처 줄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말은 무엇보다도 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남이 통제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매번 우리는 상처를 받는다. (이 생각에 제일 유사한 것이 모욕죄, 언어 폭행죄쯤이 아닐까.) 우리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한 말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신이 우리에게 ‘언어'라는 것을 준 것은 소통하기 위해서 준 것이지 서로를 상처주기 위해 준 것이 아니다. (물론 난 신을 믿지 않지만 이 능력을 부여받은 이유에 대해 쓰려니 ‘신'이라는 단어를 썼다. 역시 말로 내 생각 전부를 표현하기는 힘들다.) 이 글을 쓰니 스님들이 묵언수행을 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는 원래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팩트를 말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상처 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것은 솔직한 것이 아니라 무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상대방의 감정은 생각(배려)도 안 하고 말을 한다. 나도 모든 것을 좋게만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부드럽게 말해야 하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말과 말투가 아닌, 스스로 깨닫고 나아갈 수 있는 말과 말투로, 따뜻하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팩트라고 말하며 모욕하는 말은 아무리 상대방을 위한 말이라고 해도 평생의 상처와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제발 우리 모두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말로 표현하기

우리는 생각을 말로 표현해야 하는 존재다. 인간은 말을 못 하면 근질거린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하루 종일 떠든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정작 제일 중요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사랑합니다.


나도 아직까지 입에 붙지 않는 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인 줄 알면서도 말하기 어딘가 부끄럽다. 내가 살면서 느낀 것은 몰래 사랑을 주는 것은 진짜 별로라는 것이다. 사랑을 받는 입장에서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사랑을 서로 알아야 완성이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사랑을 받는 사람이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랑을 찾아서 느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느껴지지도 않는 사랑을 꼭 알아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나는 말을 통해 매우 직접적으로 진심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말로만 사랑하면 안 되지만… 왜 누군가를 상처 주는 말은 쉽게 나오면서 사랑해 주는 말은 잘 나오지 않을까. 진심이 담긴 말은 왜 하기 어려운 것일까.



뒷담

중학교 때부터 누군가의 뒷담을 까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아직까지도 누군가의 욕을 한다. (너무 솔직한 것인가?) 이 뒷담은 인간의 본능인 것인지 자꾸 하게 된다. 뒷담하고 후회하고를 수십 번 반복한다. 그것이 소문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그 말의 무게도 알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리고 뒷담이 끝나면 괜히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 난 얼마나 완벽한 사람이길래 누군가의 욕을 하는 것일까. 앞으로 계속해서 성찰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제발 입 좀 다물자. 입이 지금보다 더 무거운 사람이 되자.



나의 다짐

한 번 뱉으면 휘발되는 말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 둥둥 떠다닐 거라고 생각한다. 따뜻한 말은 따뜻하게, 차가운 말들은 차갑게, ‘감정'이라는 세계 속에서 평생 그 온도를 유지할 것이다. 그 말들은 상대방의 감정 속 세계에서도 살지만 말을 하는 동시에 듣게 되는 내 안에서도 살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따뜻한 사람이 될지, 차가운 사람이 될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아주 냉철하고 뾰족한 말이 들어와도 그것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감정이 많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말을 아낄 줄 아는 멋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연습하고 또 연습할 것이다.


+최근 흑백요리사 2의 우승자 최강록 셰프님이 너무 좋다. 그분은 말을 하는데 조금 오래 걸리고 잘 안 하시는데 그 이유가 말의 무게를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분처럼 고심하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 생각을 기다려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