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 방문자
지수 : 방문자
제주도에서 돌아온 뒤, 수연은 거실 한구석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창밖을 바라보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햇살이 들어오면 눈을 감았고, 어둠이 내리면 그제야 눈을 떴다. 내가 출근하고 집에 혼자 남겨지면, 숨만 쉬며 존재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필요한 말 외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키스만 했어.'
제주도에서 수연이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믿어야 했다. 믿고 싶었다.
그런데 왜 자꾸 의심이 드는 걸까. 바에서 돌아온 수연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던 것. 입술이 부어 있던 것. 드레스 지퍼가 반쯤 내려가 있던 것.
키스만으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물을 수 없었다. 진실을 들으면 끝이니까.
***
그러던 어느 저녁이었다.
현관 인터폰이 울렸다. 모니터를 확인했다.
"이유진 수석님...?"
40대 초반의 여자가 화면에 서 있었다. 날카롭고 지적인 인상. 수척한 얼굴이었지만 눈빛만은 형광등처럼 밝았다.
칼릭스. 아버지의 연구소. F-72를 만든 곳.
뒤에서 수연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급하게 현관으로 향했다.
"수석님! 아니, 유진 언니! 어떻게 여기까지..."
"지수야... 잘 지냈니?"
유진 언니가 들어왔다. 그녀의 시선이 거실로 향했다. 거기 수연이 서 있었다.
시간이 멈췄다.
유진 언니의 눈이 수연을 훑었다.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마치 스캐너로 읽어내듯. 그녀의 동공이 미세하게 확장되었다. 무언가를 인식할 때 나타나는 반응.
'알아보는 건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수연은 현관 쪽을 보고 있었다. 아니, 유진 언니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코를 살짝 벌름거리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맡는 것처럼.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어머... 지수야. 손님이 계셨네?"
유진 언니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하지만 뭔가 느껴졌다. 숨이 평소보다 가빠진 것 같은.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수연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아... 언니. 인사하세요. 제 사촌 동생 수연이에요. 제주도에서 왔어요."
사촌 동생.
그 단어가 내 입에서 나왔다. 수연에게 어떻게 소개할지 한 번도 상의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입이 먼저 움직였다.
수연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찔했다. 나를 보았다. 짧은 시선이었지만, 거기에 뭔가 있었다. 놀람인지, 다른 무엇인지.
유진 언니가 수연에게 다가갔다. 50센티미터도 안 되는 거리까지. 수연이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벽이었다.
"아... 사촌 동생이었구나. 어쩜, 정말 아름다우시다."
그녀가 수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신기하네. 눈매나 콧날은 꼭 네 엄마를 닮았네."
심장이 얼어붙었다.
그녀는 알고 있다. 적어도 이 얼굴이 누구를 모델로 했는지는.
"언니, 무슨 우연의 일치겠죠. 수연이는 외가 쪽 사촌이라서요."
내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유진 언니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한 발 물러섰다.
수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키지 않아도.
***
유진 언니가 들고 온 비닐봉지들을 주방에 풀었다.
"지수 너, 얼굴 보니까 제대로 못 먹은 것 같아. 내가 밥 해줄게."
칼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 기름이 달궈지며 튀는 소리. 된장찌개 냄새가 집 안을 채웠다.
수연이 주방 근처로 왔다가 멈칫했다. 미간을 찌푸렸다. 찌개가 끓는 냄새에 반응하는 것 같았는데, 표정이 이상했다. 불쾌하다기보다는 과부하가 걸린 것 같은. 손으로 코를 가리고 거실로 돌아갔다.
"수연 씨, 된장찌개 괜찮아요? 혹시 알레르기라도?"
유진 언니가 물었다.
"아뇨... 괜찮아요. 좀 예민해서요."
수연이 거실에서 대답했다. 목소리가 작았다.
식탁에 앉았다. 수연이 내 맞은편에, 유진 언니가 내 옆에.
수연의 젓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은 술로, 천천히.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뜨고 잠깐 멈추었다가 삼켰다. 맛을 분석하듯 천천히. 예전에는 밥을 빨리 먹는 사람이었다. 달라진 것들 중 하나였다.
유진 언니도 수연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계속 수연에게 머물렀다.
"수연 씨... 혹시 우리 이전에 어디서 본 적 없나요?"
수연의 젓가락이 멈췄다. 나를 보았다. 이번에는 시선이 길었다. 내가 대답해줄 것인지, 아니면 자기가 말해야 하는지.
"언니, 무슨 소리예요. 수연이는 계속 제주도에서만 살았어요."
내가 끼어들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수연의 시선이 밥그릇으로 내려갔다.
유진 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가... 내가 착각했나 봐."
그녀가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납득하지 않았다는 것을.
***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지수야. 당분간 언니 여기서 좀 지내도 될까?"
숟가락이 멈췄다.
"박사님 돌아가시고 회사를 그만둔 후에 서울 집을 정리해버렸거든. 호텔 전전하다가... 여기 오니까 살 것 같아."
유진 언니의 목소리에 피로가 묻어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로 지쳐 있었다.
하지만.
이 여자가 이 집에 머문다고?
나는 수연을 보았다. 수연도 나를 보았다. 불안이 오갔다.
아버지가 제일 신뢰하던 사람이었다. 거절할 수 없었다.
"언니... 당연히 여기 계셔도 되죠."
"고마워. 여자 셋이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유진 언니가 수연을 향해 웃었다. 그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
밤.
수연의 방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서재로 쓰던 곳. 우리가 함께 쓰던 안방이 아닌, 좁은 손님방.
문이 닫혔다.
제주도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했다. 수연의 얼굴이 가까이 있었다. 여전히 지치고 상처받은 표정. 내가 만든 표정.
"지수야... 유진 언니라는 분, 정말 잘 아는 분이야?"
"응. 아빠 연구소에서 같이 일하셨어."
"그래서 나를...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수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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