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 텔로미어
지수 : 텔로미어
거실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유진 언니가 던진 말. '이성적 사고의 상실.' 그 단어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
수연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내 옷자락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도대체 언니 정체가 뭐야?"
날 선 질문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F-72에 대해 그렇게까지 잘 알아?"
유진 언니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내가 만든 건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만들었지."
"'우리'?"
"나, 그리고 은현철 박사님."
멈췄다. 숨이 아니라 머리가.
"네 아버지 말이야."
***
"아빠가... F-72를 만들었다고?"
목소리가 떨렸다. 옆에서 수연이 내 손을 꽉 쥐었다.
"말도 안 돼. 아빠는 유전공학 전공이긴 했지만, 세포 연구만 하셨잖아."
"그건 대외적인 커버였어."
언니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박사님이 진짜 천착했던 건 세포가 아니라 '시간'이었어. 생체 시계를 멈추는 기술. 그리고 MELAS를 치료하는 기술."
MELAS.
엄마를 앗아간 병. 그리고 내 안에도 잠들어 있는 시한폭탄.
아버지의 서재가 떠올랐다. 밤늦게까지 켜져 있던 스탠드 불빛. 창백한 얼굴로 모니터를 응시하던 뒷모습. 세포 연구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아프니까 관련 연구를 하시는 거라고. 그런데 그게 — 이거였다. 같은 기억인데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 뒷모습이 낯설어졌다.
"아빠가... 그걸 연구하고 있었어?"
"네 엄마가 진단받았을 때, 박사님은 미친 사람처럼 연구에 매달렸어. 같은 병이 너한테도 발현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
"처음엔 자금이 없었어."
언니가 소파에 앉았다.
"대학 연구비로는 턱없이 부족했지. 그때 윌리엄이 나섰어."
"윌리엄?"
"마이클 강. 지금 칼릭스의 CEO. 박사님의 대학 동기였어."
가슴 안쪽이 복잡하게 뒤틀렸다. 마이클 강. 며칠 전 그가 보내준 네이비색 재킷이 옷장에 걸려 있다. 의장석에 앉았을 때 몸이 가벼워지던 감각이 아직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 사람이 — 아버지의 연구를 가능하게 한 사람이었다.
"윌리엄이 자기 아버지한테 투자를 받아냈어. 터너 가문. 월 스트리트의 큰손."
"얼마나?"
"10억 달러."
투자 규모가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환산됐다. 1조 원. 이 돈이면 연구가 아니라 사업이다.
"공짜는 아니었겠지."
언니의 눈이 살짝 움직였다. 내가 먼저 도착한 것을 확인한 눈.
"터너 회장이 조건을 걸었거든."
"영생."
"......맞아. MELAS 치료제만으로는 투자할 수 없다. 바이오 바디를 만들어라. 부자들에게 영생을 팔 수 있는 상품을."
그게 F-72의 시작이었다.
***
"지수야, 텔로미어 알지?"
"염색체 끝에 달린 보호 캡. 세포 분열 때마다 짧아지고, 한계점에 도달하면 세포가 사멸하는."
"박사님은 그 타이머를 멈추는 방법을 찾아냈어."
언니가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세포 구조도가 화면에 떠올랐다.
"미토콘드리아의 기원에 대해 알아?"
"내공생. 20억 년 전에 큰 세포가 산소 호흡 박테리아를 잡아먹었는데 소화시키지 못하고 공생하게 된 것."
언니가 잠깐 멈췄다. 기대하지 않았던 대답을 들은 것 같은 표정.
"박사님은 그 사건을 재현했어."
화면에 애니메이션이 재생되었다. 큰 세포 안에서 살아남은 작은 생명체.
"텔로미어를 무한히 복구할 수 있는 특수한 합성 단백질 복합체. 일명 'T-오가넬'. 우리는 그걸 인간의 세포 내에 주입하는 데 성공했어."
***
T-오가넬.
"F-72의 세포 하나하나에는 미토콘드리아 외에 제3의 기관이 공생하고 있어. 이 녀석이 끊임없이 텔로미어를 수선해."
수연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 그 피부 아래 세포 하나하나에 아버지가 만든 무언가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영생이 가능한 거야."
"대가가 뭐야."
물은 게 아니었다. 공생이면 반드시 대가가 있다. 미토콘드리아가 산소를 태워 ATP를 만들듯이, T-오가넬에도 에너지원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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