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철 : 개발
현철 : 개발
터너 회장의 투자가 확정된 후, 나는 보스턴으로 향했다.
바이오젠. 세계 최고의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보유한 회사. 그들과의 협력 없이는 T-오가넬을 인체에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미토콘드리아를 대체할 인공 소기관을 만들었지만, 그것을 담을 그릇이 필요했다.
로건 공항에서 내릴 때 보스턴의 봄 공기는 차가웠다. 윌리엄이 옆에 있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눈에 무엇이 비치는지 알 수 없었다.
"긴장되나?"
윌리엄이 물었다.
"긴장보다는 기대라고 해야 하나."
거짓말이었다. 손바닥에 땀이 차 있었다. 오늘 미팅의 결과에 따라 연구의 방향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칼릭스가 가진 T-오가넬 기술과 바이오젠이 가진 바이오프린팅 기술. 이 둘이 만나면 무엇이 가능해지는가.
완전한 인체의 창조.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두려웠다. 과학자로서의 흥분과 인간으로서의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
바이오젠 본사는 케임브리지의 바이오테크 클러스터 한가운데 있었다. MIT와 하버드 사이,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은 생명과학 연구 지대.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건물 앞에 차가 섰다.
로비에서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제임스 모리슨 박사였다. 바이오프린팅 부문 총괄. 마흔 중반의 남자였는데, 회색 눈에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악수하는 손의 힘은 단단했다.
"은 박사님, 윌리엄.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지하 2층 연구동으로 안내받았다. 보안 게이트를 세 번 통과했다. 생체 인식, 홍채 스캔, 정맥 패턴 확인.
"보안이 철저하군요."
"여기서 하는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복잡해지거든요."
그 말의 의미를 나는 나중에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
연구동 내부는 거대한 클린룸이었다. 흰색 벽, 양압 환경, HEPA 필터를 통해 정화된 공기. 그 한가운데에 바이오프린터들이 줄지어 있었다.
"4세대 바이오프린터입니다."
모리슨 박사가 가장 큰 장비 앞에서 멈추며 설명했다.
"기존 프린터들이 단일 바이오잉크를 사용했던 것과 달리, 이건 최대 12가지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해상도는 10 마이크로미터. 세포 수준의 정밀도입니다."
옆에 있는 워크스테이션 화면에 복잡한 3D 모델이 회전하고 있었다. 혈관 네트워크처럼 보이는 구조.
"저건 뭡니까?"
"ARIA입니다. Adaptive Regenerative Intelligence Architecture. 바이오프린팅 설계 AI예요."
모리슨 박사가 화면을 가리켰다.
"프린팅 경로 최적화, 바이오잉크 조성 계산, 혈관 네트워크 설계. 인간이 수개월 걸릴 계산을 몇 시간 만에 처리합니다."
화면에서 AI가 실시간으로 혈관 배치를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산소 확산 모델, 영양분 전달 경로, 세포 생존율 예측. 수천 가지 변수가 동시에 계산되고 있었다.
"인간의 손으로는 이 복잡성을 다룰 수 없어요. ARIA 없이는 장기 프린팅이 불가능합니다."
윌리엄이 장비에 다가가 표면을 손으로 쓸었다. 그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아이가 새 장난감을 발견한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위험한 것을 발견한 사냥꾼 같은 눈빛.
"장기 프린팅은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윌리엄이 물었다.
"피부, 연골, 각막은 이미 임상시험 중입니다. 방광과 요도는 이식 성공 사례가 있고요. 간과 신장은 아직 동물실험 단계입니다."
"심장은요?"
"가장 어렵습니다. 혈관화 문제 때문에."
혈관화. 그 단어에 귀가 쫑긋했다. 바이오프린팅의 가장 큰 난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직이 일정 두께를 넘으면 내부 세포들이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요. 확산 한계가 약 200 마이크로미터입니다. 심장처럼 두꺼운 장기는 내부에 미세혈관 네트워크가 없으면 프린팅 후 괴사합니다."
***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테이블 위에 NDA 서류가 놓였다. 서명을 마친 후, 내가 T-오가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토콘드리아를 개조하여 만든 새로운 세포소기관. 신경 활동을 에너지로 변환하여 세포 재생을 극대화하는 기술.
모리슨 박사는 처음에는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하지만 데이터를 보여주자 눈이 점점 커졌다.
"이게 사실입니까?"
"동물실험 결과입니다. 마우스, 토끼, 그리고 영장류."
"재생 속도가..."
"일반 세포의 약 10배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다른 데이터를 띄웠다. 뇌파 측정 그래프. 처음에는 정상이던 패턴이 점점 불규칙해지더니, 결국 평평한 선으로 변했다.
"뉴럴 쇼크입니다. T-오가넬이 신경 활동을 과도하게 소모할 때 발생해요. 특히 뇌에서."
모리슨 박사가 이마를 짚었다.
"그러니까 T-오가넬로 재생 능력을 가진 인체를 만들 수 있지만, 뇌가 버티지 못한다?"
"그렇습니다."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T-오가넬이 통합된 상태로 인체 전체를 프린팅할 수 있다면, 뇌도 처음부터 T-오가넬에 적응된 상태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공 장기 프린팅이 아닙니다. 완전한 인체 창조. 그게 우리 목표입니다."
***
회의가 끝난 후, 모리슨 박사가 복도에서 나를 불러 세웠다.
"은 박사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엔 이 미팅을 거절하려고 했습니다."
그의 눈이 진지했다.
"윌리엄의 평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천재적이지만 위험하다고. 선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평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수락하셨습니까?"
"당신 때문입니다, 은 박사님. 당신 논문을 읽었어요. 윤리위원회 보고서도. 당신은 선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에요. 당신이 이 프로젝트에 있다면 최소한 통제 불능으로 치닫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말이 무거웠다. 나에게 기대를 거는 것인지, 짐을 지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
본격적인 공동 연구가 시작되었다. 바이오젠에서 모리슨 박사를 포함한 5명의 연구원이 한국으로 파견되었다. 칼릭스 지하 3층에 공동 연구소가 설치되었다.
첫 번째 목표는 간 조직의 혈관화였다.
"오늘의 실험입니다."
모리슨 박사가 회의실 스크린에 3D 모델을 띄웠다.
"5 x 5 x 3 센티미터 간 조직. 내부에 200 마이크로미터 간격으로 혈관 성장 유도 채널을 배치합니다. 채널 직경은 150 마이크로미터. 벽면에 VEGF를 코팅하고, T-오가넬 내피세포를 주입합니다."
"T-오가넬 농도는?"
"표준의 50%로 시작합니다. 너무 높으면 세포 과활성화 위험이 있어요."
프린팅에 6시간이 걸렸다. 여러 카트리지가 번갈아 가며 바이오잉크를 토출했다. 간세포 잉크, 지지세포 잉크, 희생 재료 잉크. 층층이 쌓여가는 구조물을 모니터로 지켜보았다.
72시간 후 결과를 확인했다.
외부층은 건강한 간세포 색깔을 유지하고 있었다. 적갈색. 정상.
문제는 내부였다.
"채널 주변 세포들은 살아있어요. 하지만..."
모리슨 박사가 화면을 확대했다. 채널에서 200 마이크로미터 이상 떨어진 영역. 세포들이 변색되어 있었다. 괴사의 징후.
"채널 간격이 너무 넓었습니다."
"이론상 200 마이크로미터면 충분해야 하는데..."
"이론과 현실의 격차입니다."
***
두 번째 실험. T-오가넬 농도를 75%로 올렸다.
결과: 채널 간격 내에서 괴사는 줄었지만, 일부 영역에서 비정상적인 세포 증식이 관찰되었다. 암세포와 유사한 패턴.
"과활성화입니다. T-오가넬이 너무 강하면 세포 분열이 통제를 벗어나요."
세 번째 실험. 농도를 60%로 조정하고, 채널 간격을 150 마이크로미터로 줄였다.
결과: 일부 영역에서 혈관 형성 성공. 하지만 전체적인 네트워크 연결은 불완전.
네 번째 실험.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실패가 계속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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