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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준 Sep 04. 2020

# 간호사가 의사처럼 뭉치지 못하는 이유

이번 의사 파업을 보며 솔직히 부러웠다. 저렇게 단합하고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게. 간호사는 과연 비슷한 상황에서 저렇게 전국의 모든 교수들과 학생들까지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을까? 간호사의 근무환경이나 인력 문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바뀐 게 없다. 기본욕구조차 제대로 충족되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임상에 있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바쁠 때는 아직도 밥도 잘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글은 간호사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간호사들은 왜 저렇게 뭉치기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대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시작된다. 다른 학과와는 달리 간호학과는 거의 모든 학기 시간표가 정해져 나온다. 자율적인 선택이나 본인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물론 실습 스케줄도 마찬가지다. 또 입학을 한순간부터 졸업 후 간호사가 된다는 명확히 정해진 목표가 오히려 다양하게 생각할 기회를 한정한다.

간호학과만큼 학구열이 불타는 곳은 또 흔치 않다. 학교생활을 하는 4년 동안 매일 같은 쪽지시험과 과제, 더블 수업에 1000시간의 실습까지 쉴 틈이 없다. 만나는 사람들이라고는 같은 과 친구들이 전부다. 다른 학과나 주변을 둘러볼 여유는 찾기 힘들다. 그러다 보면 점점 더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한다. 시키는 것만 하는 수동적인 삶에 점점 더 익숙해진다. 당연히 타 분야에는 더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간호사가 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3교대라는 특수한 근무환경에 같은 간호사는 물론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병원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지만 서로 인계를 주고받는 관계라 결국 깊이 친해질 순 없다. 같은 직장의 간호사들끼리 모이려고 해도 교대 근무 하에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근무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나이트 전에 잠을 못 자고 나와야 하며 누군가는 황금 같은 오프에 나와야 한다.

회비만 축내는 간협도 한몫한다. 모든 간호사를 대표한다는 단체가 어째서 간호사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헛짓거리만 하고 있는가. 전국에 면허를 가진 간호사 중 겨우 절반만이 병원에 남아 있다. 그 절반도 언제 그만둘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이렇게 의료진의 열악한 환경은 결국 의료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그 환자는 내가 될 수 있고 우리 가족이, 지인이 될 수도 있다. 부디 이번 파업이 간호사들에게도 큰 자극과 작은 불씨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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