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생일, 나에게 퇴사를 선물했다

내가 퇴사를 한 이유

by 김보준
2장 관련 사진들 (24).jpg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고 용기의 문제다 - 파울로 코엘료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 직장, 남부럽지 않은 연봉. 힘들었던 일들도 이제는 손에 익었고 일을 시작한지는 벌써 2년이 훌쩍 넘어 있었다. 직장 동료들과의 인간관계도 나쁘지 않았고 중환자실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간호사로 일을 하는 생활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쉽게 말해 나는 ‘안정’이라는 단어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스물아홉의 생일날, 불현 듯 사표를 던졌다.


사직서.jpg


주변에서 보기에는 갑작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계획해왔던 일이었다. 세계일주를 하는 것은 오랜 시간 가슴 속에 품었던 버킷리스트였다. 취업을 하고나서부터 지금까지 언젠가는 꼭 세계일주를 위해 ‘퇴사’를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퇴사를 위한 결정은 늘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던 나에게도 좀처럼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에서 오는 달콤함을 거부하고 또 다시 낯설고 불안한 곳을 향해 나를 내 모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서류 및 면접 준비.jpg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꿈만 같은 기회가 찾아 왔다. 작년 초 항공사 ‘에어아시아’에서 에어아시아가 취항하는 22개국 100개 도시를 무료로 보내주는 이벤트를 했다. 최종적으로 선정된 4명에게는 9개월간의 여행경비 총 1억 원과 항공권을 전액 지원해 주는 커다란 이벤트였다. ‘여행 로또’와 같은 이 이벤트에는 전국에서 총 3만 3천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응모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지원자들 중에는 나도 있었다.


여행 기간만 무려 9개월,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에 만약 합격한다면 지금 다니고 있는 병원을 그만둬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원래 세계일주를 위해 퇴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전액 지원으로 세계 여행을 갈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3만 명 이상의 지원자들을 보고는 안 된다고 지레짐작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은 모두 복권을 샀기 때문에 복권에 당첨된 것이다. 복권을 사지 않았다면 당첨조차 기대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크고 작은 기회가 찾아온다. 나에게도 어느 날 큰 행운이 찾아왔다. 서류, 그리고 면접의 과정을 거쳐 8,000:1의 경쟁률을 뚫고 최후의 4인에 선정 된 것이다. 살면서 추첨이나 뽑기에는 항상 운이 없었는데 ‘여행로또’의 행운의 주인공이 내 가 될 줄이야. 늘 다른 게 없는 지루한 일상을 살고 있던 나에게 꿈만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합격 발표 후 여행 출발까지는 앞으로 한 달이 채 남지 않았기에 시간이 촉박했다. 지내고 있던 곳의 방을 급하게 빼고 9개월간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리고 2년 넘게 다닌 직장에 사직서를 썼다. 사직사유 항목에는 고민 없이 ‘버킷리스트였던 세계일주 여행’이라고 적어 제출했다. 늘 생각하고 살았지만 나에게 이런 날이 오게 됐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나에게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기까지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여행을 떠날 때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여행도 좋지만 그렇게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어요?”


한줌의 후회도 전혀 없는 선택이 이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양손에 두 개의 물건을 쥐고서 새로운 물건을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새로운 한 가지를 얻기 위해서는 손에 쥐고 있는 다른 한 가지를 내려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양손에 쥐어 진 것이 ‘안정적인 직장’이었다면 나는 꿈이었던 ‘세계여행’을 잡기 위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은 것뿐이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것을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한 법이다.


중환자실 식구들 (1).jpg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날짜를 확인했다. 3월30일. 일부러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퇴사 하는 날이 내 29번째 생일이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 간호사분들이 송별회 겸 깜짝 생일 파티를 준비해 주셨다. 갑자기 내가 정말 퇴사를 한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2년 4개월 동안 울고 웃으며 정들었던 직장 생활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비행기 창밖 풍경 (1).jpg


다음 날, 나는 커다란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느껴 본 적이 없는 두근거림이었다. 비행기 창밖으로는 아름다운 하늘이 보였다. 9개월간의 기나긴 대장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스물아홉 생일, 나는 나에게 퇴사를 선물했다’

매거진의 이전글#현대인들이 겪는 난독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