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평소 간호학과를 다니다 보면 주변에서 “간호학과는 졸업 후 취업 걱정이 없어 좋겠다.”며 부럽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계속되는 극심한 취업난을 겪고 있는 요즘 세대를 생각해 보면 그들이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취업률이라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일부분을 보고 하는 이야기이다. 간호학과에서도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좋은 병원을 들어가는 일은 다른 학과에서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간호학과도 취업 시기가 오면 모두들 많은 걱정과 고민을 하고 원하는 병원에 들어가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단순히 취업률이 높다는 것이 그 높은 취업률만큼이나 쉽게 취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교 4학년이 되자 나에게도 ‘취준생’이라고 불리는 취업 준비생의 기간이 찾아왔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부터 못 다한 영어성적을 위한 공부와 각종 자격증, 그리고 학교 공부와 병원 실습까지 동시에 모든 것들을 준비해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지난 대학생활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기에 은연중에 취업에 대한 자신감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다. 그것도 항아리째로. 취업은 생각보다 더 만만치 않았다. 가고자 했던 두 개의 병원에서 먼저 서류를 접수하기 시작했다. 몇 날 며칠을 자기소개서를 쓰고 고치고를 반복하며 컴퓨터 앞에서 머리를 싸매고 지냈다. 하지만 내 자만을 비웃기라도 하듯 거의 동시에 두 개의 병원에서 보기 좋게 서류 탈락을 통보받았다.
지금까지 스스로 생각했을 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대학생활을 해 왔고 학업에도 많은 노력을 해 왔다고 생각했기에 연이은 탈락의 충격은 쉽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서류 탈락의 쓴맛을 보고 나서부터는 자신감이 한없이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앞으로 다른 곳에 지원을 하게 되더라도 또다시 나에게 돌아올 결과는 탈락이 될 것만 같았다. 취업 준비의 기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심리적으로는 점점 더 위축되고 예민해졌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다른 친구들의 합격 소식은 나를 더 움츠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무너지거나 좌절할 수는 없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언제나처럼 꾸준하게 문을 두드린다면 분명히 어딘가에서 나를 알아주고 반겨 주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왜 탈락했는지를 고민해 보고 다시금 자기소개서를 다듬고 조금 더 나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도 한 번의 탈락을 더 겪은 후에서야 다행히 몇 군데의 병원에서 서류전형 합격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가장 가고 싶어 했던 꿈의 병원인 ‘서울아산병원’도 포함돼 있었다. 어렵게 주어진 소중한 면접의 기회를 쉽게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면접 준비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면접 때 이야기할 자기소개 멘트를 자다가도 튀어나올 수 있을 정도로 외웠다. 자기소개서로부터 나올 수 있는 모든 질문들의 리스트를 모아 답변을 달고 그것 또한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했다. 또한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면접 후기들을 모조리 다 읽고 분석해 면접을 보게 될 병원의 면접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첫 번째 면접은 간호학 이론과 지식을 주로 평가하는 면접이었다. 그때 질문 받은 내용이 내가 인증평가를 준비하며 익혔던 내용에 똑같이 포함돼 있었다. 인증평가란, 5년을 주기로 간호학과가 있는 대학교가 간호교육의 평가를 받는 것을 말하는데 하필이면 당시 내가 있던 3학년이 인증평가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수업을 마치고도 매일같이 남아서 인증평가를 위한 간호지식 공부와 술기를 준비해야 했다. 왜 5년마다 하는 인증평가를 내가 다닐 때 하게 됐는지, 우리 학년은 참 운도 지지리도 없다는 생각에 매일같이 투덜거리고 불평하며 인증평가를 준비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덕에 면접관의 질문에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었다. 거침없이 질문에 대답하는 나를 보는 면접관의 눈은 만족스러워 보였고 첫 번째 면접의 결과는 합격이었다. 당시 인증평가를 준비하는 과정은 굉장히 힘들었고 취업 준비를 위한 시간을 뺏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때의 시간들은 취업에 큰 도움이 됐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면접 대비를 할 수 있었고 실제로 면접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할 수 있었다.
살다 보면 지금은 당장 죽기보다 싫은 것처럼 느껴지는 일들도 언젠가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결코 인생에서 의미 없는 경험은 없다. 모든 일들은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얽히고 설켜 언젠가는 일련의 사건을 만들어 내는 법이다.
최종 면접을 보면서 겪은 웃지 못 할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치열한 서류심사와 1차 면접까지 모두 통과했다. 이제 마지막 최종 면접의 관문을 통과하면 꿈의 병원에 취업하게 되는 것이었다. 유심히 내 자기소개서를 읽어 보던 면접관 한 분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보준 학생은 바쁜 간호학과 일정 속에서 성적을 이렇게 관리하면서 다른 대외활동도 엄청 많이 하셨던데 혹시 비결 같은 게 있나요?”
“저는 항상 자기 전에 다음 날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는 편입니다.”
나의 대답을 들은 면접관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또다시 질문을 했다.
“아침 일찍 몇 시에 일어나세요?”
나는 당당하게 평상시 일어나는 시간을 거짓 없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7시요.”
나의 답변에 면접관분들은 모두 웃음을 참지 못했고 곧 면접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3교대를 하는 간호사들의 아침 근무 출근시간은 보통 6시쯤이다. 오랜 생활 간호사로 일하며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 왔을 수간호사 선생님들로 구성된 면접관들 앞에서 7시라는 대답을 당당히 내뱉은 것이다.
그들의 시각에는 나는 상대적으로 늦잠을 자고 일어나는 평범한 대학생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순간 큰 실수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최종 면접에서의 일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고 합격 발표를 하는 날까지 나는 긴장의 끈을 쉽게 놓을 수 없었다. 다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점은 모두에게 웃음을 줬다는 점 정도였다.
대망의 최종 합격자 발표 날 최종 면접 결과를 알아보기 위해 병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너무 떨리고 긴장된 나머지 바로 합격 화면을 확 인할 수 없을 것 같아 한 손으로 모니터를 반쯤 가리고 실눈으로 조금 씩 화면을 확인했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합격’이라는 단어를 확인 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합격을 확인하고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았다. 모든 간호학과 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꿈의 병원에서 간호사가 되어 첫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취업을 준비하면서 탈락의 쓴맛을 여러 번 경험하고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언젠가 나를 받아줄 병원이 있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합격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 입시가 그러했듯 취업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진짜’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