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중환자실 간호사가 되다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by 김보준
간호사로서 처음 근무를 시작하게 된 ‘외과계중환자(SICU)'


내가 간호사로서 처음 근무를 시작하게 된 곳은 ‘외과계중환자실’ 이었다. 처음 중환자실에 발을 내딛었을 때 병동과 사뭇 다른 분위기 에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중환자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의료기계들로부터 간간히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알람 소리뿐이었다. 보통 병동은 중증도에 따라 환자들이 독립적으로 보행 가능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환자실은 병동과는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의식이 있는 환자들보다는 의식이 없는 환자들 이 많았고, 그나마 의식이 있는 환자들 도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거나 진정치료 중인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대 부분의 환자들과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 는 것조차 중환자실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환자들의 침대 옆에는 그 환자가 얼마나 위중한지를 나타내는 듯 약물을 일정하게 주입해 주는 ‘의약품 주입펌프 (Infusion Pump)’에 수액이 주렁주렁 매 달려 있었다. 환자들 주변으로는 각종 의료기기들이 한 자리씩 꿰차고 있었다. 호흡을 도와주는 인공호흡기부터 시작해 신장의 기능을 대신 해 주는 인공투석기 그리고 환자의 활력징후와 심전도가 실시간으로 나타나는 모니터까지 환자 한 명에게 기본적으로 두어 대 이상의 의료 기기가 달려 있었다. 한눈에 봐도 환자들의 중증도와 위중함이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환자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환자실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중환자실에서 일을 하게 된 첫날에는 사수였던 프리셉터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앞으로 내가 하게 될 일들을 보고 전반적인 업무의 흐름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기본적인 투약은 물론이고 각종 검사와 시술, 그렁거리는 환자의 가래를 뽑아 주는 일까지, 해야 할 새로운 일들이 매시간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노련한 프리셉터 선생님의 손은 잠시도 쉬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많은 일들을 능숙하게 처리해 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중환자실에서 프리셉터 선생님을 따라다니던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과연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둘째 날부터는 첫날 봤던 것들을 하나씩 직접 해 보면서 일을 배워 나갔다. 학교를 다닐 때 책에서 배우고 마네킹을 대상으로 실습을 할 때는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하니 너무나도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일을 배우는 과정은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것이 없었다. 환자의 혈압과 체온을 재는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 환자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사정하고 주사기로 수액과 약물을 섞어 정확한 용량을 투약하는 것까지 차근차근 하나씩 일을 익혀 나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환자 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환자실


지난 4년간 전공 서적을 통해 배운 것들은 임상에서 많은 도움이 됐지만 눈앞에 들이닥치는 일들과 전공 서적 사이에는 큰 괴리감이 존재했다. 처음 중환자실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인생은 실전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부터 새로이 배워 나가야 했다. 그것은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배워 나가는 과정과 흡사했다.


처음 일을 시작하며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불규칙한 3교대 근무였다. 교대 근무라고 하면 하루 24시간을 세 타임으로 나눠 8시간씩 3교대로 근무를 하는 것을 말한다. 낮 근무(Day), 오후 근무(Evening), 밤 근무(Night) 세 종류의 근무로 나눠 근무표에 따라 번갈아 가며 일하게 된다. 교대 근무의 특성상 각 근무번이 해야 하는 일들이 조금씩 달랐는데 처음에는 그 일들을 익히는 것도 좀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교대 근무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수면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상근직과 다르게 3교대 근무를 하는 간호사는 근무에 따라 수면 패턴이 하루 이틀 사이에도 급격하게 달라지곤 한다. 그래서 잠을 자야 하는데 잠이 오지 않거나 잠을 자지 말아야 할 상황에 잠이 오는 등 난감한 경우를 많이 경험하게 된다. 가장 힘든 날은 처음 밤 근무에 들어가는 날이었다. 야간 근무를 위해 낮에 잠을 충분히 자 둬야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일을 시작하며 처음 밤 근무를 했던 날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처음으로 밤 근무를 한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많이 됐던 탓에 잠을 한숨도 못자고 출근했다. 아직 독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날도 한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근무를 했다. 그날 따라다녔던 선생님은 병동에서 가장 무섭다고 소문이 났던 선생님이었다. 잠도 못자고 왔는데 멍한 상태로 큰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근무 시작부터 바짝 긴장을 했다. 선생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밤 근무 때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교육받았다. 혹여나 잊을까봐 수첩이 까맣게 되도록 열심히 받아 적었다. 중환자실의 새벽은 너무나 고요했다. 게다가 밤에는 환자들의 수면을 위해 전체 등을 모두 소등하고 간호사들이 약을 준비하는 투약 카트에만 작은 불을 켜놓고 일을 한다. 세상이 잠드는 늦은 새벽에도 중환자실 간호사들의 손은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분주하게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밤 근무에서 가장 바빠지는 시간은 바로 환자들의 체중을 측정하는 때였다. 중환자실의 침대는 침대 자체에 체중계의 기능이 있다. 환자를 제외한 베개, 담요 등 나머지 무게가 나가는 것들을 침대에서 모두 내리면 침상에서 환자의 몸무게를 측정할 수 있었다. 매일같이 환자들의 몸무게를 측정하고 기록하는 이유는 바로 I/O(섭취량과 배설량, Intake/Output)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수액, 혈액, 영양액 등 하루 동안 환자에게 들어간 양을 꼼꼼히 기록하고 대변, 소변, 배액, 투석 등으로 몸에서 빠져나간 양을 기록해서 그 차이를 매일 체크했다. I/O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은 작은 요인에도 활력징후가 흔들릴 수 있는 중환자들에게는 치료적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체중 측정이 모두 끝나면 환자들의 체위를 바꿔 주면서 욕창이 생겼는지를 꼼꼼히 확인했다. 그리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침상목욕을 시켜 드린 후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혀 드렸다. 중환자실의 환자들은 대부분 의식이 없거나 의식이 있더라도 거동이 힘들어 침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소변은 소변 줄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지만 대변의 경우는 기저귀에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 중환자실에서 일을 시작할 때는 환자분들의 대변을 치워드리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얇은 비닐장갑을 끼긴 했지만 아무런 거리낌 없이 환자분들의 대변을 치우고 몸을 닦아 드리는 선배 간호사분들의 열정적인 모습은 그런 나를 반성하게 했고 나에게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한바탕 체중을 재고 자리 정리 시간이 끝나고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그때부터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눈을 뜨고 버텨 보려고 해도 누군가 눈꺼풀 위에 무거운 쇳덩이를 올려놓은 것처럼 자꾸만 눈이 감겼다. 허벅지를 펜으로 여러 번 찔러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나도 모르게 서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갑자기 나를 향한 차가운 시선이 느껴지며 간담이 서늘해졌다. 눈을 뜨고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지금의 상황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를 크게 꾸짖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돌아온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나이트 근무는 잠을 못 자고 오면 많이 피곤해서 버티기 힘들어.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푹 자고 와. 간호사가 잠을 못 자면 결국 환자분들한테도 좋지 않으니까.”


첫 밤 근무를 버텨 내지 못하고 서서 졸고 있는 신규 간호사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걸까. 무섭기로 소문났던 선생님은 나에게 그 이상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말처럼 간호사가 잠을 못자고 근무에 투입되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날의 밤 근무는 간호사 생활을 이제 막 시작하는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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