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사막을 달리는 간호사’
어느덧 신규 간호사 교육기간이 끝나고 독립을 하게 됐다. 독립을 하고 나서부터가 중환자실 간호사로서 병원 생활의 진짜 시작이었다. 환자의 침상 머리맡에는 ‘담당 간호사 김보준’이라는 명찰이 내 근무시간 동안 걸려 있었다. 그것은 한 근무 동안 나에게 주어진 담당 환자들을 모두 책임지고 감당해야 하며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내 몫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아직 일이 많이 서툴고 손이 느린 탓에 주변에서 선배 간호사들이 많은 도움을 주긴 했지만 결국 내 환자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고 내 환자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 또한 담당 간호사인 나였다. 독립은 중환자실이라는 정글 한가운데에 내던져져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일을 잘하는 간호사는 아니었다. 손이 빨라 일처리가 빨랐던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놓치는 부분 없이 꼼꼼하게 일을 해내지도 못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간호사로 일하기에는 그리 적합한 사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독립을 하고도 일은 생각처럼 빨리 늘지 않았다. 항상 무엇인가에 쫓기듯 정신없이 일을 해야만 했고 매시간의 투약과 기본적인 업무만으로도 너무나 버거웠다. 내가 담당하는 환자에게 크고 작은 이벤트가 생기는 날에는 밥은 고사하고 물 한 모금 마실 틈도 없이 12시간 내내 일해야만 했다. 물론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빨리 다녀오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직접 일을 해보지 않으면 믿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 정도 찰나의 시간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건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
내 능력 안에서 최대한 빠르게 일을 하려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해야 할 일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쌓여 있곤 했다. 쉴 틈 없이 주사약을 만들고 주사기로 약물을 뽑아내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얼얼하게 느껴졌다. 가끔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고 이를 악물고 일을 해도 좀처럼 일이 줄어들지 않는 상황이 절망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거기다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지기라도 하면 담당 의사의 추가 처방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 상황은 마치 밑바닥이 뚫려 있는 물 항아리에 정해진 시간 안에 물을 가득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물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아등바등 물을 열심히 부어도 물 항아리는 좀처럼 차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럴 때면 정말이지 하던 것들을 모두 내려 두고 중환자실 문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 중환자실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는 너무 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진다는 점이었다. 투약 카트에 있는 환자의 약과 투약카드를 확인하는 도중에 환자가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듯 가래가 그르렁거리는 기침을 하면 하던 일을 내려놓고 가래를 뽑아야만 했고 그 사이에 요청한 혈액이 올라와 바로 수혈 준비를 해야 했다. 동시에 엑스레이 촬영을 위한 방사선사가 왔고 엑스레이 촬영을 돕고 있는 중 아까 내렸던 혈액검사 샘플에 문제가 생겨 다시 내려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던 중 옆에 있는 다른 환자의 혈압과 산소포화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해 지금 당장 담당의에게 알리고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매일같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이러한 상황은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한 가지 일을 하면서도 항상 머릿속에는 다음에 해야 할 여러 일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미처 하던 일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항상 새로운 일들이 생겨났다. 업무의 흐름이 끊기다 보니 하던 일을 잊고 놓치는 경우도 자주 생겼다. 근무 때마다 마스크를 낀 얼굴은 항상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어떻게든 일을 해내기 위한 고군분투의 연속이었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해내지 않으면 안 됐기에 모두들 근무시간 동안 초인적으로 일을 해내야 했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해 내는 멀티태스킹(Multitasking) 능력은 간호사에게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일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이런 상황에서도 우선순위를 나눠 빠르게 일을 해결하는 능력이 생겼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3교대 간호사의 일은 혼자서 일정한 업무를 맡아 처리하는 여느 직업과는 다르다. 또한 오늘 못했던 내 일을 잠시 내려 두고 퇴근하고 내일 다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교대 근무의 특성상 내가 손이 느려 나 때 처리되지 못한 업무는 고스란히 내 다음 번 근무자에게 넘어가게 된다. 그것은 본의 아니게 나로 인해 다른 동료 간호사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신규 때 더욱 빨리 일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거침없이 해결하고 능수능란한 선배 간호사들처럼 돼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 일이라도 잘 해낼 수 있는 ‘딱 1인분’을 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명의 중환자실 간호사로서 주변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일을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중환자실에서 한 명의 간호사로서 오롯이 일을 해낸다는 것은 독립한지 얼마 안 된 신규 간호사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깃집에서는 2~3인분도 거뜬한데 어째서 일은 1인분을 채우기가 이렇게도 어려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