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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로 Jan 09. 2024

수학학원에 대한 중학생의 자존심

혹은 엄마의 자존심

올해부터는 둘째까지 중학생이 된다.


지금까지 나는 학원에 대한 이유 없는 믿음으로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는 것이 불편했다. 그러면서도 영어학원은 보내고 있으니, 나 스스로도 앞 뒤가 맞지 않다. 사교육의 늪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엄마의 노력?


해당 학년의 수업을 제때 들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고, 공부가 전부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1등이 아니어도 괜찮다. 1등이고 의사여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탑이 아니어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비중 3인 딸과 예비중 1인 아들은 집에서 해당 학년에 대한 복습만 했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이 것은 엄마 기준이다.


기준이 높지 않은 엄마의 생각과 판단이 잘못된 것일까? 자녀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주변에서 들려오는 염려가 많았다.

"수학 학원을 안 보낸다고?"

"혼자서 수학공부를 한다고??"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았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런 말들에 흔들리는 엄마가 되었다. 탑이 아니면 행복할 수가 없나? 내가 아이들을 망치고 있는 것일까? 조언을 가장한 소음일까? 아니면 마지막 채찍질일까? 고민됐다.


요즘은 대학입학합격 유무를 알 수 있는 시기다. 카더라 통신이 지인 자녀들 대학입학 소식까지 알려준다. 애써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다들 참 잘났다.


'주변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과거 제법 큰 종합학원에서 수학 강사를 2년간 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에 오는 어린 학생들을 보며 '투잡을 뛰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안쓰러웠고 대단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학원이 정말 필요한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학원에서 선정해 준 교재를 수업시간에 공부한다. 수준별로 나뉜 반에 들어가 수준에 맞는 교재로 수업을 한다. 시험기간엔 기출문제와 다른 학교 시험문제 그리고 보다 더 많은 문제를 추출하여 풀게 한다. 자습시간을 추가로 부여하고 풀이하게 하고 질문하게 한다. 의지만 있다면 학원 없이도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학원 전기세를 내주러 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기력한 학생도 여럿 있었다. 내 아이가 그러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나 스스로도 학원을 다니지 못했다. 학원이 없이 학교 수업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며 자라왔다. 우물 안 개구리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나 말고도 모든 친구들이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우리 동네엔 학원이 없었다. 깡 시골마을이었다.


엄마인 나의 이런저런 사정으로 학원에 대한 시각은 좋지 않았다.


주변의 은밀한 질타를 듣고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 중학교 2학년인 딸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이제는 수학 학원을 가도 될 것 같아요"

"이제는?이라는 의미가 뭐야?"

"드디어 수학 수행평가를 100점 맞았어요! 이제는 수학학원 가도 돼요. 수학학원 안 다녔어도 100점을 맞았으니 수학학원 다녀서 100점 맞는다는 소리 들어도 괜찮아요. 제 자존심이랍니다."

"자존심 ㅎㅎㅎ?"

"이제는 저도 학원 갈래요.  혼자 하는 게 힘들어요. 점점 의지력이 떨어지고 있어요. 친구들처럼 저도 학원 갈래요."


수학학원을 정말 알아봐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딸의 저 말은 당장 알아봐야 할 이유를 던져주었다. 그래 가고 싶으면 보내줘야지. 엄마의 선입견은 선입견일 뿐일 것이다. 딸은 스스로 자존심을 지켰으니 엄마는 희망사항을 들어줘야지.


주말에도 늘 학원 다니는 친구들 때문에 주말 늦은 시간이 되어야 친구를 만나던 딸이었다. 학원을 보내달라는 뜻을 전하고 싶어 열심히 공부를 했던 것은 아닐까? 나 빼고 전부 학원에 다닌다는 불안감, 다들 선행을 하고 있는데 나만 하지 않고 있다는 걱정이 들었으리라 짐작한다.


엄마는 부랴부랴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누나 때문에 덩달아 학원을 가게 된 둘째는 예비 중1, 그리고 첫째는 예비 중3이다. 두 아이  모두를 위해 학원 몇 군데를 추천받아 상담전화를 했다.


"어머님. 조금 늦으셨네요. 예비 중3들은 고등학교 수업이 거의 끝나가고, 예비 중1들도 벌써 중3학년 수업이 끝나가요"

"네? 그럼 우리 아이들은 어쩌나요?"

덜컥 겁이 난 전직 학원 강사의 대답이라니 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선입견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머니,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하면 되죠~"

처음부터 두 번째 말을 해주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엄마는 순간 쫄보 걱정 대마왕이 되었다.


학원을 안 가도 된다는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학원선생님들의 말 한마디에 뇌 전체가 흔들린다. 그래서 우리까지 사교육 시장에 일조하러 간다.


엄마는 당부했다.

"얘들아. 학원에 전기세 내주러 가지만 말아 다오."

아들은 빵 터져 웃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다. 웃지 마라 이 녀석 엄마는 네가 참 염려스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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