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는 학원에 대한 이유 없는 믿음으로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는 것이 불편했다. 그러면서도 영어학원은 보내고 있으니, 나 스스로도 앞 뒤가 맞지 않다. 사교육의 늪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엄마의 노력?
해당 학년의 수업을 제때 들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고, 공부가 전부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1등이 아니어도 괜찮다. 1등이고 의사여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탑이 아니어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비중 3인 딸과 예비중 1인 아들은 집에서 해당 학년에 대한 복습만 했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이 것은 엄마 기준이다.
기준이 높지 않은 엄마의 생각과 판단이 잘못된 것일까? 자녀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주변에서 들려오는 염려가 많았다.
"수학 학원을 안 보낸다고?"
"혼자서 수학공부를 한다고??"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았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런 말들에 흔들리는 엄마가 되었다. 탑이 아니면 행복할 수가 없나? 내가 아이들을 망치고 있는 것일까? 조언을 가장한 소음일까? 아니면 마지막 채찍질일까? 고민됐다.
요즘은 대학입학합격 유무를 알 수 있는 시기다. 카더라 통신이 지인 자녀들 대학입학 소식까지 알려준다. 애써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다들 참 잘났다.
'주변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과거 제법 큰 종합학원에서 수학 강사를 2년간 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에 오는 어린 학생들을 보며 '투잡을 뛰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안쓰러웠고 대단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학원이 정말 필요한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학원에서 선정해 준 교재를 수업시간에 공부한다. 수준별로 나뉜 반에 들어가 수준에 맞는 교재로 수업을 한다. 시험기간엔 기출문제와 다른 학교 시험문제 그리고 보다 더 많은 문제를 추출하여 풀게 한다. 자습시간을 추가로 부여하고 풀이하게 하고 질문하게 한다. 의지만 있다면 학원 없이도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학원 전기세를 내주러 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기력한 학생도 여럿 있었다. 내 아이가 그러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나 스스로도 학원을 다니지 못했다. 학원이 없이 학교 수업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며 자라왔다. 우물 안 개구리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나 말고도 모든 친구들이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우리 동네엔 학원이 없었다. 깡 시골마을이었다.
엄마인 나의 이런저런 사정으로 학원에 대한 시각은 좋지 않았다.
주변의 은밀한 질타를 듣고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 중학교 2학년인 딸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이제는 수학 학원을 가도 될 것 같아요"
"이제는?이라는 의미가 뭐야?"
"드디어 수학 수행평가를 100점 맞았어요! 이제는 수학학원 가도 돼요. 수학학원 안 다녔어도 100점을 맞았으니 수학학원 다녀서 100점 맞는다는 소리 들어도 괜찮아요. 제 자존심이랍니다."
"자존심 ㅎㅎㅎ?"
"이제는 저도 학원 갈래요. 혼자 하는 게 힘들어요. 점점 의지력이 떨어지고 있어요. 친구들처럼 저도 학원 갈래요."
수학학원을 정말 알아봐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딸의 저 말은 당장 알아봐야 할 이유를 던져주었다. 그래 가고 싶으면 보내줘야지. 엄마의 선입견은 선입견일 뿐일 것이다. 딸은 스스로 자존심을 지켰으니 엄마는 희망사항을 들어줘야지.
주말에도 늘 학원 다니는 친구들 때문에 주말 늦은 시간이 되어야 친구를 만나던 딸이었다. 학원을 보내달라는 뜻을 전하고 싶어 열심히 공부를 했던 것은 아닐까? 나 빼고 전부 학원에 다닌다는 불안감, 다들 선행을 하고 있는데 나만 하지 않고 있다는 걱정이 들었으리라 짐작한다.
엄마는 부랴부랴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누나 때문에 덩달아 학원을 가게 된 둘째는 예비 중1, 그리고 첫째는 예비 중3이다. 두 아이 모두를 위해 학원 몇 군데를 추천받아 상담전화를 했다.
"어머님. 조금 늦으셨네요. 예비 중3들은 고등학교 수업이 거의 끝나가고, 예비 중1들도 벌써 중3학년 수업이 끝나가요"
"네? 그럼 우리 아이들은 어쩌나요?"
덜컥 겁이 난 전직 학원 강사의 대답이라니 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선입견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머니,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하면 되죠~"
처음부터 두 번째 말을 해주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엄마는 순간 쫄보 걱정 대마왕이 되었다.
학원을 안 가도 된다는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학원선생님들의 말 한마디에 뇌 전체가 흔들린다. 그래서 우리까지 사교육 시장에 일조하러 간다.
엄마는 당부했다.
"얘들아. 학원에 전기세 내주러 가지만 말아 다오."
아들은 빵 터져 웃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다. 웃지 마라 이 녀석 엄마는 네가 참 염려스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