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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로 Oct 12. 2024

단 한 사람_최진영

나무


책을 읽을 때면 가끔 이런 글귀는 영어로 어떻게 번역할 수 있지? 생각할 때가 있다. 한국인의 감성과 절묘한 표현을 나의 어학 수준으로는 도저히 번역할 수 없다. 번역만 완벽하다면 한국작가들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를 보유한 나라에 살고 있다. 국적이 같다. 그 단 하나의 이유로도 요 며칠은 마음이 충만해졌다. 몇 년 전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으려고 책을 펼쳤다가 단 몇 페이지 만에 책을 덮고 말았다. 숨길 수 없는 슬픔이 몸속 깊은 곳에서 몰려나왔고 차마 글 한 줄을 더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국에서는 문화계의 블랙리스트였으나 세계적으로는 최고의 작가로서 인정받는 아이러니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또한 부끄럽기도 하다. 노벨 문학상을 축하하며.....


고등학생일 때 학교 뒤편에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그중 오른쪽 나무 하나를 친구 삼아 독백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학업에만 열중해야 하는 수험생 시절, 나는 그럴 수가 없는 환경이었기도 했고 가끔 혼자 삭혀야 하는 상황들이 있었던지라 나무를 바라보며 '너는 내 마음을 알겠지' 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해본 사람은 안다.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것을.


내 고향 섬마을 앞산을 넘어가면 할아버지 밭이 나온다. 할아버지 밭은 키위 나무 밭이었는데 그때는 양다래라고 불렀다. 지금은 풀이 무성해 갈 수 없는 맹지가 돼버린 그곳을 아주 어렸을 때는 조그만 아이가 겁도 없이 혼자서 잘도 다녔다.  가려면 길고 이쁜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곳을 지나가게 된다. 그 나무들의 이름을 모르지만 그곳에서만 느껴지는 나무 냄새와 공기, 햇살이 참 좋았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걸 보면 그 꼬마는 무척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만의 아리에띠가 있다면 그곳에서 살 것이라고 상상한 적도 있다. 그 나무들은 모두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겠지?


책을 읽는 내내 그 나무들이 생각났다.

잘 있느냐?


사람을 살리는 나무?

책을 읽고선 친구가 물었다.

"근데 언니! 금화는 진짜 어디로 갔을까?"

'그러게 어디에 있을까?'

'나무가 됐을까?'


어째서 할머니와 엄마, 목화에게도 금화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가족 모두에겐 한이 될 일일 것이다. 수많은 죽음 중 선택될 한 사람은 그들이 지정할 수 없다. 지정은 나무만이 할 수 있다. 다른 죽음은 그냥 지켜봐야 한다. 그것이 중개인의 역할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단 한 번 주어진다. 그 단 한 번의 삶 중에서 나무에게 선택되어 생을 연장할 수 있다? 그 단 한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다.


 할머니 임천자에게는 단 한 사람이 다행이었고, 엄마 장미수에게는 단 사람만인 것이 좌절이며, 목화에게는 단 한 사람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나무처럼 삶과 죽음을 하나로 여기게 된 목화는 자신의 중개인의 삶을 받아들이고 후회 없이 사랑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나무가 지시하지 않아도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된 목화는 금화의 나룻배를 띄워 보낸다.


사람을 살리는 나무가 있다는 웹툰 소재 같은 설정이다. 그러나 사람을 살리는 것이 나무인데 반해 사람들은 그들의 이기로 산림자원을 훼손하는 악행을 자행하고 있음을 알리는 책이기도 하다.


나무는 오늘도  단 한 사람을 구하고자 하며, 그 단 한 사람이 내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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