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대생, 스타트업에 가다-7 (부제 : 당신은 어떤 회사에 다니나요?)
작은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과정은 흔히 J커브와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커브를 프러덕 자체가 이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그건 조직 자체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조직은 하나의 팀이다. 팀이 에이스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모를까, 혼자만의 플레이로는 팀 경기를 뛸 수가 없다. 세계에서 제일 빠른 단거리 선수 우사인 볼트도 400m 계주를 혼자 달려 우승할 순 없다.
5명으로 시작했던 조직은 규모가 빠르게 커져 30명을 채우더니 곧 50명을 넘겼다. 매주 많은 사람을 만나고 채용하고 아쉬운 인사를 전했다. 그럼에도 조직은 무척 ‘우리스러운’ 사람들로 채워졌다. 일하는 태도, 커뮤니케이션 방식, 수평적인 관점 등 조직은 큰 무리 없이 성장해 갔다. 하지만 모든 영화에서 그렇듯, 가장 행복할 때 문제의 씨앗은 탄생한다.
우리가 만난 문제는 ‘다움’이었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워크샵(지난 브런치 화 참고)을 통해 ‘회사다움(조직 관점)’,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다움(팀 관점)’, ‘나다움’을 정리하고 전사 발표도 하였기에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안일한 생각이었다.
매주 새로운 팀원이 합류하였다. 그중에는 다른 조직에서 경력이 많은 팀원들도 있었다. 우리 조직은 워낙 ‘신념’과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고, 그것을 기준으로 마케팅, 제품 소싱, 프러덕 개발 등을 진행하였기에 새로운 멤버들은 혼란스러웠다. 무언가를 하기 전에는 기존 멤버들에게 물어보고 확인받았다. 그러다 혼자라도 진행하면 기존 멤버들이 ‘아, 이거는 쓰면 안 돼요’라고 달려왔다. 그들 입장에선 얼마나 답답했을까(이제야 이해한다..)
워크샵 후 발표로 전사 팀원들이 대표님, 브커팀과 같은 생각이 되었다면 그 프레젠테이션은 더 큰 일을 위해 쓰일 정도의 설득력과 몰입도를 준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오 좋다!’라는 생각뿐 실제 각자의 업무에 갔을 때는 전혀 떠오르지 않은 ‘공지’ 정도의 임팩트를 보인다.
회사 다움에 대한 정의는 팀원들에게 동기부여를 주긴 했지만, 멀리 있는 이상 같은 것이었다. 그걸 각자의 실무에 어떻게, 얼마나, 잘 녹일 수 있을지의 방법은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우린 ‘브랜드 가이드’를 만들기로 하였다.
브랜드 가이드의 목표는 오래되었든, 새로 합류했든 우리 조직의 모두가 일을 하기 전 이 가이드를 통해 회사와 회사의 비전, 우리의 일하는 방식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그렇기에 두루뭉술 머릿속에 있던 단어들을 끄집어내려 각자의 이유를 논의했다.
브랜드 로고의 뜻과 컬러 선택의 이유, 브랜드 히스토리와 브랜드 하이어라키 그리고 각 서비스의 정의 등 세세하게 적어 내려갔다. 단어 하나에도 끈질기게 ‘이게 맞아?’, ‘무슨 뜻이야?’를 반복하며 캐내었다.
그리고 우린 ‘매거진’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만 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책. 브랜드 가이드의 문서에서 설명하지 못하였던 창업자들의 이야기와 각 팀별 리더들의 이야기, 우리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우리 회사의 비전에 대해 적었다.
이 매거진의 역할은 조직원의 동기부여를 끌어올리고 원팀원스피릿을 이루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다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바로 우리의 부모님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회사. 스타트업 초창기에는 회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몰라 부모님의 질문 앞에 항상 버벅거렸다. 헬스케어는 뭐며, 스타트업은 무슨 뜻이냐, 너희가 하는 일이 뭐고, 돈은 많이 버는지 등… 브랜드 가이드 매거진 책은 부모님의 질문에 모두 답할 수 있는 만능 키였다.
브랜드 가이드를 만들고 우리는 기준을 가진 채 일하게 되었다. 우리다움의 일관성을 지킬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이 조금씩 더 또렷하게 우리를 인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 브랜드 가이드는 만드는 것보다 그걸 잘 유지하는 게 중요하고 어렵다. 조직의 성장에 따라 가이드의 기준도 미세하게 조정되어야 하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디테일한 실무 영역에도 적용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수정되어야 한다.
모든 조직은 살아 있다. 각자의 속도는 있겠지만 아주 미세하게라도 한 발씩 앞으로 향한다.
*브랜드 가이드를 만들고 몇몇 분이 저에게 ‘브랜드 가이드’의 필요성과 타이밍에 대해 많이 물어보셨습니다. 저 또한 브랜드 가이드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고, 언제 필요한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만 조직의 성장과 함께 구성원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필요’를 느꼈습니다. 서두에 이야기했듯, 조직의 성장엔 두 가지를 꼭 염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객의 이야기에 집중해 만드는 프러덕트와 구성원의 목소리에 집중해 만드는 조직 문화. 이 두 가지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걸 잃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