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ind Turtle Jun 12. 2022

인생은 봄날처럼 짧다.

명상 기록 20일째

최근에 여러 가지 이유로 명상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몸은 가만히 앉아 있지만, 마음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과거와 미래로 내달렸다, 마음은 코끝의 숨이 아니라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을 떠올리며 그때의 느낌들을 오롯이 다시 느끼고 있었다. 오늘은 다음과 같이 다짐하면서 명상을 시작하였다. ‘방석에 앉자마자 바로 코끝의 숨에 집중하리라.’ 그러나 이것은 나의 희망사항이었을 뿐, 마음은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마음껏 달렸다.


오늘 마음은, 초반의 흔들림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어제 있었던 공부 모임에서 주고받았던 대화에 주로 머물러 있었다. 어제의 주제는 ‘이론과 실천의 관계’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이어받은 철학의 입장에서는 ‘이론 또는 지식은 이성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데 반하여,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듀이는 ‘모든 이론 또는 지식은 경험에서 나온다’라고 생각한다. 이 상반된 두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론’, ‘지식’, ‘경험’, ‘실천’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이 말들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독서와 토론이 필요할지 지금으로서는 가늠할 수가 없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모임에 대해서는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는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훨씬 크다. 일주일에   있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책을 꼼꼼하게 읽게 되고 모임에서는 신중하게 말하려고 애쓴다. 교수님께  소리를 들으면 위축되지만,  칭찬을 들으면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기에, 가능한  조금이라도  오래  모임을 유지하고 싶다. 읽어야   목록이 자꾸 길어지지만, 그래도 읽는 재미가 커서, 시간을 아껴 책을 읽게 된다. 아직 일찍 일어나지는 못하지만 늦게 까지 책을 읽는 날이 많아진다. 허투루 쓰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진다. 합류한  3개월밖에   공부 모임이 나에게 가져다준 긍정적인 변화이다. 그러니 공부를   도리가 없다.


책 공부에 빠지다 보니, 명상 공부에 소홀해진 듯 느껴지지만, 그래도 명상은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는 믿음은 변함이 없다. 공부 모임을 하고 온 날이면 어김없이, 명상을 할 때, 책 내용, 대화 내용, 질문과 대답이 저절로 떠올라, 코끝의 숨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강한 집착은 오래가지는 않는다. 이틀이 지나니 공부 모임에서 나누었던 대화 내용도 희미해지고, 책을 읽으려는 의지도 많이 약해진다. 명상에 큰 방해가 되지도 않는다.


생각의 매개 없이 실제를 경험하기 위해서 명상을 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명상을 통해 만나게 되는 실제에 대해서 붓다와 같은 과거의 사람들과 전현수 박사와 같은 현재의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음은 붓다가 깨달음의 순간 읊었다고 전해지는 오도송이다. 이런 오도송을 할 수 있는 경지는 대체 어떤 경지일까? 나는 어느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한량없는 세월,
생사윤회를 거듭하면서
집 짓는 자를 찾아 헤매었으나 찾지 못하여
계속해서 태어났나니 이는 고통이었네

아, 집 짓는 자여! 이제 너를 보았으니
너는 이제 더 이상 집을 짓지 못하리라.
모든 서까래는 부서졌고,
대들보는 산산이 조각났네.

나의 마음은 조건 지어진 것들에서 벗어났고
모든 갈애는 파괴되었도다.

<붓다의 오도송>


그러나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나의 경험은 되지 못한다. 명상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실제를 나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나는 명상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죽음을 직면해야 할 순간, 나에게 필요한 것은 명상을 통해 얻은, 선정으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것이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노력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은 명상 공부와 책 공부, 어느 하나도 버리고 싶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책은, 좀 더 복잡하고 정교화된 생각을 매개로, 실제와 관계를 맺도록 해 준다. 책은 마음을 쏙 빼놓기도 하지만, 마음에게 길을 일러주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좋은 책들은 한 곳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생은 봄날처럼 짧으니 이 짧음을 도외시한 채 자신의 에너지를 분방하게 낭비할 순 없지 않겠는가.
[집중과 영혼, 김영민, 91쪽]




매거진의 이전글 기분은 기분이고 명상은 명상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