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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nd Turtle Jun 04. 2022

기분은 기분이고 명상은 명상이다

명상 기록 19일째


퇴근길에 도로 위에서 목격한 장면이 명상하는 중에 자꾸 떠올랐다.


사거리에서 신호가 바뀌어 차를 세웠는데, 도로 한복판에, 깨지고 뜯겨 엉망진창이 된 플라스틱 야구방방이처럼 생긴 흉측한 물건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그 크기와 모습이 나같이 주의력이 부족한 운전자들에게는 큰 위협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초래할 만했다. ‘저게 뭐지? 야구방망이인가? 그냥 밟고 지나가도 될까?’ 내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앞 차 운전자가 창문이 아닌, 운전석 차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지는 않고 그 물건을 자세히 살피는 것이 아닌가? ‘왜 저러지? 아마 나처럼 저 물건을 그냥 밟고 지나가도 될지 확인하려고 그런가 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차 문이 닫혔다.
 
반전은 몇 초 후에 일어났다.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그 물건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더니 그것을 집어 들었다. 어디 안전하게 놓아둘 곳이 없는지 알아보려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는지, 그것을 본인 차의 조수석에 던져 넣었다. 그러고는 바뀐 신호를 따라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 저게 뭐지? 왜 저렇게 하지?’


나라면 절대로 그렇게 못한다. 차에서 내리기도 싫고, 거기까지 걸어가기도 싫고, 그것을 집어 드는 것도 싫고, 내차에 싣는 것은 더욱 싫고, 또 쓰레기통까지 그것을 가져가서 버리는 것도 싫다. 어느 것도 하고 싶지 않다. 피할 수 있기에 피해야 한다. 그냥 나만 잘 피해 가면 되지 그 더러운 물건을 집어 들고 나의 차에 실을 수 있을까? 나는 눈앞에서 기적을 본 것이다.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처음에 차문을 열었다가 바로 닫은 것은 아마 나처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럽고 귀찮은 일, 하지 않아도 책임이 없는 일이니 그냥 지나가자는 생각. 그도 나와 같은 평범한 마음의 소유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흉측한 물건을 도로 위에 그냥 두고 갔을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차마 그냥 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맑은 정신을 가진, 나 같은 사람이 백날 명상을 해도 따라갈 수 없는 고고한 정신의 소유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아름다운 사람의 아름다운 행동을 본 내 마음이 밝아졌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명상도 틀림없이 잘 될 거야.’ 나는 집으로 가는 대신 인근 암자로 갔다. 공부모임의 취소로 생긴 여분의 시간을 명상하는데 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암자는 방문객은 없었지만 조용하지는 않았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귀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법당에 홀로 앉아 명상을 시작했다.


그런데, 기분은 기분이고, 명상은 명상이었다. 기분이 좋다고 해서 명상이 더 잘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처음에는 자꾸 아까 그 기분 좋았던 장면으로 마음이 가면서, 숨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기분은 좋지만 집중은 되지 않았다. 그렇게 50여분이 흘러가고 말았다.


기분도 전환할 겸, 뭉쳐진 다리도 풀 겸, 법당 안에서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잠시 걷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번엔 마음이 좀 가라앉아 있었다. 숨에 마음을 모으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숨으로 모아진 마음은 금방 다른 곳으로 도망갔다. ‘1학기 말 평가는 어떻게 하지?’ ‘다음 주에 있는 체험활동 준비는 어떻게 하지?’ ‘오늘 명상 기록은 무엇을 적을까?’ 등등의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망상이 줄줄이 일어났다. 초반에는 그래도 정신이 좀 생생해서, 이것들이 망상인 줄 알고 얼른 다시 숨으로 마음을 모을 수 있지만, 명상이 지속되어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면, 그나마도 할 수가 없다. 이때는 잠시 쉬어 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명상하다 쉬다 하면서 그럭저럭 명상을 이어가고 있는데, 법당을 관리하시는 스님께서 문 닫을 시간이라고 하셨다. 비구니 스님의 몸으로 홀로 법당을 관리하고 있어서 저녁 8시 이후에는 방문객을 받지 않는데, 내가 열심히 공부를 해서, 문 닫는 시간을 조금 더 연장해 주었다고 하셨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나가는 나에게 스님이 물으셨다.


“처사님은 누구를 의지해서 공부를 하시나요?”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이번 여름휴가 때 OO스님을 찾아뵐 생각입니다.”

“그 스님이 위빠사나를 잘 가르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와 운문사에서 같이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처음부터 스승을 잘 만나야 하는데, 제가 한 30년 동안 마음공부를 했는데, 제 말을 믿고 OO스님께 한 번 가보시지요.”


스님의 법명은 가산이었다. ‘아름다운 산’ 스님께서는 드문드문 와서 잠시 앉았다가 가는 나를 지켜보고 계셨나 보다. 그리고 한 말씀해주시려고 타이밍을 찾고 계셨을 것이다. 그리고는 오늘 마침내 나에게 질문도 하시고, 스승으로 삼을만한 스님도 소개해 주셨다. 공부하는 나에게 길을 일러주시려는 스님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 스승으로 삼을 만한 스님을 소개해 주셨다는 사실보다는, 가산스님께서 나를 알아봐 주셨다는 사실이 더 감격스러웠다. 아래채 법당은 늦게 까지라도 사용할 수 있으니 언제든지 와서 공부하라고도 하셨다. 그리고 더 고마운 것은, 거기는 벽시계의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너무 커서 명상을 할 수가 없다고 했더니, 그러면 명상하는 동안에는 배터리를 빼놓아도 된다고 하셨다. 사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법당의 물건을 주인 허락 없이 함부로 만지기가 뭐해서 참았는데, 안 그래도 된다고 말씀해주시니 참 고마웠다.


사찰이 무엇을 하는 장소인지 불교가 왜 존재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가산스님, 감사합니다.


명상을 하니, 명상의 진전은 더디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름다운 행동들이 더 잘 보이고,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는 것 같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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