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보다 회사일보다 더 중요했던 건강
잘 하고 있는 줄 알았다.
아니, 잘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플 줄은 몰랐다.
내 몸이 주는 신호들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달려나갈 앞날들만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말 그대로 그렇게 되었다.
병명은 폐색전증과 자가면역질환 MCTD.
혈전이 생겨서 폐의 혈관을 막아 폐의 작은 일부가 괴사되어버렸고
폐색전증의 원인을 추적하다 보니 자가면역질환이 드러나 버렸다.
병이 드러나던 시점에는 많이 울었다.
아파서도 많이 울었지만, 제대로 눕지도 걷지도 못하는 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낮밤이 눈물로 가득했다.
가장 아끼는 후배의 결혼식도 가지 못했고,
반짝반짝 빛나는 나의 아이가 엄마를 걱정하는 시간들로 가득차게 만들었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 주는 남편은 육아-회사-내 병간호를
한번에 하려고 하니 괜찮다고 웃으며 말하지만 지쳐가고 있는게 한 눈에 보였다.
엄마는 병원에서 링거를 목에 꽂은 내 모습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고
친한 친구들도 병원에 와서 모두 다 한마디씩 우려의 소리를 내 맘 속에 콕콕 넣고 갔다.
건강이 당연한 건데, 처음으로 정말 느끼게 되었다.
건강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그저 걷고 싶어도 걷는 것조차 내 의지와 달리 움직이지 않는 몸에 집 안에서도 주저앉아 엉엉 울었던 하루들이 있다.
그럼에도 병원이 너무 무서워서 39도가 넘는 열에 시달리고 엄마와 남편이 병원에 가자고 이야기를 해도 병원이 무섭다며 공황이 오기도 하고... 그렇게 올해의 무더웠던 여름날은 나에게 상실과 공포의 시간들 뿐이었다.
나는 인생에 쉼없이 달렸고, 이 브런치 작가조차도 출산날 정상퇴근해서 아이를 낳은 사람이 저입니다 라는 캐치프라이즈로 브런치 작가가 되었건만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쓰게 되었다.
원래는 이 브런치의 작업물들은 회사와 육아를 해나가면서 씩씩하게 개척해나가는 이야기들로 가득채우려고 했으나 뜻하지 않게 육아휴직을 하며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들이 중간에 섞이게 되었다.
그 것조차 내가 사랑해야 하는 내 삶이기에 받아들여야 되지만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실 지금도 내가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지금은 모든 수치들이 정상으로 돌아와서 요양이라기 보다는 집에서 그저 잘 먹고 잘 쉬고 있다. 감사한 것들도 꽤 많이 생겼다.
걷는 게 소중해졌고 여전히 운동은 귀찮아서 자주 못가지만 그래도 가는 것 자체가 축복임을 안다.
아이가 내 걱정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들로 하루를 채우는 게 너무 예뻐보이고,
건강을 잃고 난 뒤 흔들렸던 내 자신이 쳤던 사고들을 그럴 수도 있다 라고 토닥여준 남편의 아량에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감탄을 하기도 했다.
친한 회사 후배는 회사 후배를 넘어 친한 동생이 되었고
역시 이럴 때일수록 곁에 남을 사람들이 선명하게 보여서 그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