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선물하고 간 인생의 행복

by 리오주인


이번주를 시작하면서부터 브런치에 글을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써서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볼 수 있다"라는 건 나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실제로 브런치 작가로 신청하던 그 순간도, 나름 마음의 다짐이 3년 정도 필요했던 일이었다.


한번 써 내려가면 일정하게 키보드를 치며 상대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글을 완성하지만


그와 별개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야 할지, 혹은 읽는 누군가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는지를 생각하는 건 시간을 아무리 들여도 정답이 없는 나와의 긴 대화시간이다.






그 긴 대화 시간을 깰 수 있었던 것은 최근 나는 "행복하다" 라고 영혼 충만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 진단받은 자가면역질환은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환이고 아직까지도 항응고제, 면역억제제, 스테로이드제 등 매일 약을 챙겨먹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난 인생의 쉼을 누리고 있고 집안에서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하는 모든 시간과 일들에서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가 어린이집을 등원하고 난 뒤, 가족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혼자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가서 각종 검사를 받고 입원 수속을 밟고 남편에게 "나 입원해.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 끝나고 병원에 와도 돼~"라는 연락을 했다.


회사에도 바로 나의 근황을 알리며 덧붙이는 말은 그렇지만 급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도 된다 였다.


혈전으로 인해 폐가 정상적인 호흡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입원하는 동안 모든 업무 연락을 다 받았지만, 다들 병원에 입원해서 즉답을 못한다는 나의 대답에 기겁하며 "팀장님, 일단 건강부터 챙기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통화를 끊었다.


평생 굳쎄었던 엄마는 나를 보고 눈물을 흘렸고

정말 눈에 넣어도 안아플 것 같은 딸은 내 목에 주렁주렁 달린 링거 바늘을 보자 나를 안지 못했다.

남편은 늘 그렇듯 평소와 같은 태도로 날 대했지만 왜 또 그 모습이 내 마음 속에 아프게 박혔는지 모르겠다.





무쓸모를 넘어 내가 가족에게 민폐를 끼치는 민폐덩어리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작년 여름과 가을은 나에게 덥고도 지금 내가 보내는 시간들이 뭔지 잘 모르겠는 시간들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있고 점차 건강이 좋아진다는 건 좋은 시그널들이었지만

아프고 난 뒤 휴직을 통해 난생 처음 쉬게 된 나는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어떠한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었다.





처음에는 회사 생활처럼 계획했던 것 같다.


아침 6시에 눈이 떠졌고 공부를 했고 일과 유사한 것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동네 부동산 사장님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고 매일 주식과 부동산을 공부했다.


1개월 정도 지나자 아이 등원때 맞춰 일어났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운동을 갔다.

아이의 어린이집이 회사들이 많은 한가운데 있는 위치여서 멀끔히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민낯에 츄리닝만 입는 내 자신이 조금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운동은 그런 내 자신을 "나는 운동하는 여자야"로 잘 포장할 수 있었던 좋은 수단이었다.


3개월 정도가 지나자 추위가 찾아왔고 차를 가지고 다니는 남편에게 아이의 등원을 부탁했다. 남편과 아이를 보내고 오전 시간에 하염없이 잤다. 점심 즈음 눈을 떠서 집에 있는 밥과 반찬들로 대충 한 끼 떼우고 쉬다가 아이를 하원해주러 나갔다.


6개월 정도가 지나자 아이의 초등입학이 다가왔다. 오전에 쉬는 루틴을 그대로 두고 아이의 하원을 2시 30분에서 3시로 바꿔서 일찍 하원시킨 뒤 초등학교 때 갈 학원들에 등록해서 미리 초등학교 방과후 루틴들을 만들어 같이 다녔다. 주1회 정도는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았다. 그저 같이 쉬고 자며 나는 아이의 온기와 숨결을 느꼈고 아이는 엄마와 하루를 보내며 자기 전 "역시 엄마와의 집데이트가 최고야!"라는 말을 남기고 잠이 들었다.








그 쯤이었다.


아, 난 뭘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러지 않아도 행복하구나.


물론 늘 통장에 꽂히던 월급이 사라진 불안함에 가계부를 쓰고 시작했고

주식의 등락에 무덤덤했던 나는 주식에 좀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되었고

내가 가진 작은 부동산 자산의 상태를 늘 점검하고 언젠가 갈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을 대비해 부동산 시장들을 꼼꼼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바쁘다고 잘 보이지 않았던 가계의 지출들이 어느덧 선명하게 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아까운 지출과 아깝지 않은 지출도 생기게 되었다.

지출이 눈에 보이니 우리 집 수익이 어느정도 되면 이 삶을 유지할 수 있는지 혹은 이 이상의 경제적 혜택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지 등을 알 수 있었다.


나의 삶에 옵션지들을 꽤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고

나의 행복, 그리고 내 가족의 행복은 어느 기준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지를 생각하며 오로지 내가 선택하는 삶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아프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나만의 인생 선택지들을 살펴볼 수 있었을까?

그보다 더 단순하게는 곧 40대를 앞두고 있는 내가 매일 낮 12시까지 잠을 자며 게으름을 부리며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덜어내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을까?

아이에게 일하는 엄마의 죄책감을 가지며 어떤 경험을 꼭 제공해야지라는 생각이 아니라 그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그 자체에 만족하며 둘이 까르르 거리며 놀 수 있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나의 아픔에 진심으로 같이 걱정해주고 자연인 그 자체인 나의 안부를 물어봐주며 아끼고 챙겨주는 주변인들의 깊은 진심에 대해 알 수 있었을까?


아마, 아프지 않았더라면 이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알기 힘들었을 꺼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도 삶은 나에게 어떠한 방향을 가리키는지도 모르겠고, 어떠한 길을 걷고 선택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난 요즘 매우 행복하다.



모든 순간을 충분히 즐기고 있고 만끽하고 있고 행복함이 나라는 사람을 감싸고 있음을 느낀다.






작가의 이전글많이 아팠던 25년 여름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