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그 단어를 입 밖에 내면 현실이 될까 봐 두려웠다. 큰 병원에 가보라는 진단서를 들고 온 아빠와 엄마 얘길 들으면서도 그 자리의 누구도 그 단어는 말하지는 않았다. 모두 '몸이 안 좋다'는 말로 에둘러 표현했을 뿐.
김장을 핑계로 아이들과 주말을 보내려 내려간 친정에서 엄마는 아빠의 몸이 안 좋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당뇨가 있어 약을 받을 겸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녔는데 의사가 췌장이 좀 의심스럽다며 CT를 찍어오라고 했단다. 그리고 CT 결과를 보더니 소견서를 써주면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한 것이다. 지난주 금요일의 오전의 일이다.
엄마는 그래도 준비한 배추를 그냥 둘 수도 없고, 당장 주말에 병원에 갈 수도 없으니 일단 예정대로 배추를 절여놓으셨다. 셋째를 빼고 모인 우리 삼 남매가 엄마에게 아빠 얘길 들은 건 금요일 저녁이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엄마 아빠는 축협에 들러 수육 감 돼지고기를 사 오셨다. 어른만 6명인데 수육 600g짜리를 집어오신 걸 보면 엄마도 아마 제정신은 아니었으리라. 그 와중에 두 분은 삼겹살로 살까 목살로 살까 고민을 하셨단다.
그때까지만 해도 확인해보라는 뜻이겠지 생각했다. 그저 췌장이 좀 안 좋으신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우리 가족은 김장을 했고, 아빠는 동네 아저씨에게 받기로 한 나무가 있다며 나무를 베러 가셨다. 엄마는 병원 갈 사람이 무슨 나무를 베냐고 한소리 했지만, 아빠는 약속한 거라 가야 한다며 친한 동네 아저씨를 한 명 더 불러 기어코 나무를 하러 가셨다.
아빠는 그날 저녁 내년 농사에 필요한 비료를 신청하러 간다며 마을회관에 다녀오셨다. 엄마는 김장이야 어쩔 수 없지만, 아픈 사람이 무슨 농사냐며 목소리를 높이셨다. 아픈 곳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아빠가 전과 다를 게 없어 보여 나도 그때까지는 병명을 검색해 볼 생각을 못했다.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워서 '췌장암'이란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최장암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정보 중 하나는 5년 내 생존율 12%. 눈물이 흘러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일만 하신 우리 아빠다. 담배도 안 하시고, 술도 잘 못하신다. 술 잘하는 사위들과 반주를 하고 싶어도 한잔만 드시면 얼굴이 붉어져 곧 주무시러 들어가시곤 했다. 남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고, 해달라는 일도 거절을 못한다. 손재주가 좋아 고치는 일을 잘하신다. 농번기엔 농사를 지으시고, 겨울엔 보일러를 놓거나 고쳐주는 일을 하셨다. 그래서 아빠는 겨울에도 항상 바빴다. 평생이 그렇게 일만 하셨다.
그런 아빠가 즐긴 나쁜 생활 습관이래 봐야 친한 동네 아저씨들과 내장탕을 사 먹으러 다닌 것과, 믹스커피를 드시는 일 정도였다.
누워서 참 많이 울었다. 진작 아빠한테 잘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고, 내가 일은 해서 뭐하고 책은 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그다음에 들었다. 올해 내게 있었던 좋은 일들이 꼭 아빠에게 갈 운이 내게 잘못 온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우리 아빠에게 암이라니. 생각도 못한 일이다. 가까운 주변 친척 중에서도 암에 걸린 적은 없어서 그런 병이 아빠에게 찾아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왜 하필 췌장이야! 하고 많은 암 중에 왜 하필 췌장이냐고.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없어서 조기 발견이 어렵다. 발견을 해서 병원에 가도 수술할 수 있는 케이스는 20프로 남짓. 운이 좋아 수술을 해도 5년 생존율이 20프로 밖에 되지 않는다. 수술할 수 없는 10명 중 8명은 2년을 채 넘기지 못한다.
이 무섭게 차가운 통계의 숫자를 보며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우리나라 암 완치율은 평균 70%. 아빠가 안 좋을 수 있다는 얘길 들었을 때도 치료받으면 괜찮을 거다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서 주워들은 그런 암 치료율 때문이었다. 우리 아빠가 그 무시무시한 숫자에서 예외가 될 수 있을까. 그래도 빨리 발견했다는 의사의 얘기에 작은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수요일에 병원에 입원하시고 바로 검사를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 가도 아빠를 볼 수는 없다. 보호자 1명만 들어갈 수 있어 의사 역시 볼 수 없었다. 엄마는 기어코 자기가 있겠다며 하룻밤도 아빠 곁을 내주지 않으셨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아빠가 췌장암이라는 것과 3기라는 것.
무심코 차를 타고 음악을 틀으려다가,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으려다, 친구들의 우스갯소리 카톡을 보며 피식 웃다가도 아빠가 아프다는데 딸이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빠는 내일부터 항암치료에 들어가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걱정밖에 없어서 더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