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정 Oct 21. 2020

배달 일이 직업으로 존중받길 바라며

박정훈의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를 읽기에 앞서

며칠 전 인터넷서점에서 배달노동자인 박정훈씨가 쓴 책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와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를 주문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생각났던 건 그가 쓴 기사가 하도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기억은 2018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요즘 자주 들려오는 택배 노동자의 사망 뉴스에 마음이 좋지 않았았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그의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 계속 글을 쓰셨으면 좋겠네요.”

2018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 인터넷 기사를 읽다 버럭 화가 났다. 뉴스에 화가 나는 건 사실 흔한 감정이지만, 그날 그 기사 <”배달음식은…” 고급 아파트 주민들의 ‘놀라운’ 합의안>은 더욱 그랬다. 서울 합정역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주민들이 배달하는 사람들에게 일반 엘리베이터가 아닌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도록 합의했으며, 배달 노동자들이 그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시위를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은 배달 노동자인 박정훈 씨가 하루 전인 크리스마스에 쓴 글이었다.


<”배달음식은…” 고급 아파트 주민들의 ‘놀라운’ 합의안>

http://www.ohmynews.com/NWS_Web/Event/Premium/at_pg.aspx?CNTN_CD=A0002498320


헬멧을 쓴 배달 노동자들은 “우리는 화물이 아니고, 손님은 귀족이 아니다”라는 플래카드를 펼쳐 들었고 그 일대는 이를 취재하려는 기자들까지 몰려들어 아수라장이었다. 아파트 보안담당자들은 ‘건물의 명예가 훼손된다’며 그들의 시위를 막아섰다. 그는 말했다. “건물의 명예가 훼손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라이더들의 명예는 확실히 손상됐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같은 세상을 살지만, 같은 세상 사람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 글을 읽으면서 또 한 번 놀란 건, 그 기사가 잘 쓰인 글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를 읽고 난 뒤 평생 한 번도 달아보지 않은 댓글을 달기 위해 로그인을 했다. 댓글에 기사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계속 글을 썼으면 한다고 적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올라온 그 글에 분개한 사람은 비단 나뿐이 아니었던지라, 다음에 송고된 기사에만 8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오마이뉴스 본 기사에도 100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그가 눈의 띄지도 않았을 내 댓글을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어쨌거나 그가 계속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 뒤로 그는 종종 뉴스에 비쳤다. “올해는 컵라면 말고, 폭염 수당 100원을 주세요”라며 맥도널드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것도,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라이더 유니온’을 만들어 라이더들의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그였다. 그는 배운 것 없고, 할 것 없는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는 편견 가득한 배달일을 하는 노동자들도 당연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출처 : http://www.freepik.com

예고 없이 들이닥친 코로나로 배달이 필수가 되었을 무렵, 배달 기사가 일주일에 470만 원을 벌었다는 글이 화제가 됐다. 댓글은 크게 세 가지 반응이었다. 배달 알바가 회사를 다니는 자신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고 불편해하는 시각. 여전히 우리 사회에 알바노동자는 정직원보다 적게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아마 배달노동자겠지.) 저렇게 버는 건 사실 상 불가능에 가까우며 사실이라면 아마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었을 것이라는 것. 노동자 관점의 시각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배달 노동자들의 수고에 감사를 전했다. 나 역시 그들이 없었다면, 집에서 밥도 제대로 못해 먹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노동이 적절한 법과 제도로 보장받길 바란다.




얼마 전 인터넷 서점의 신간에서 '박정훈' 그의 이름을 만났다.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의 저자로 말이다. 그의 이름을 클릭하니, 그는 이미 여러 편의 글을 쓴 작가였다. ‘계속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나의 응원이 무색하게 그는 2014년부터 책을 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책 두 권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와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를 결제했다.


그의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의 머리말을 읽다 함께 읽고 싶어 공유해 봅니다.


“근로기준법은 정직원과 알바를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쓰는 ‘비정규직’이나 ‘정규직’이라는 말도 없다. 오로지 ‘근로자’라는 말만 있다. 사용자와 일하기로 계약을 맺고 임금을 받는 사람은 모두 근로자로서 똑같은 법의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이것은 법적 규정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정직원, 비정규직, 알바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차별을 둔다. 이 차별의 중요한 근거가 바로 ‘자격’이다.


…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갔다면 능력이 있는 셈이므로 그에 상응하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이 능력은 때때로 노력과 등치되고, 이 노력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시험이 제시된다. 시험을 잘 치르는 능력이 없다면 노력 안 하는 게으른 사람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분노한다. 노력도 안 하고 거저먹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알바는? 잠깐 왔다 가는 존재일 뿐이다. 사람들은 알바가 해외여행을 가거나 비싼 스테이크를 먹고 고급 옷을 입으면 사치라고 여긴다. 능력과 자격에 따라 욕망도 통제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 욕망을 포기하고 더 나은 자격 획득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 말고 가난한 사람, 청년, 알바들의 의무라고 충고한다. … 남 불편하게 하는 이상한 알바노동자가 되더라도 나는 세상에 계속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


그의 말대로, 알바 노동자(나를 포함하여)는 하찮은 알바도, 불쌍한 알바도 아닌 자기의 삶을 사는 인간일 뿐이다. 모욕과 동정이 아닌 연대와 존중, 보호가 아닌 보장이 필요함에 동의한다.



예스 24








작가의 이전글 둘째 옷을 안 사주겠다는 게 아니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