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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Sep 29. 2020

둘째 옷을 안 사주겠다는 게 아니라

엄마도 둘째라 그 마음 알아, 근데...

“지안아, 문 앞에 택배, 아니다.”


아이에게 택배를 가져오라고 하려다 말았다. 형의 새 신발을 보면 둘째가 속상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봄에 신던 운동화는 발이 아프다는 첫째에게 이번 주에도 샌들을 신길 수는 없고. 최대한 있던 신발인 양 꺼내놓고 자연스럽게 신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제발 둘째가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며.


둘째 아이가 형의 새 옷과 신발을 부러워하기 시작한 건 올해가 되고부터였다. 아기 같던 둘째가 벌써 시샘을 하는 어린이가 됐다. 순해서 그런 거 없을 줄 알았는데, 엄마가 무심했지. 성별이 같은 형, 언니가 있는 동생은 으레 그렇듯, 우리 집 둘째는 형의 옷과 신발을 그대로 물려 입고 신고 있었다.


이날은 여름에 주문해 놓은 아이들 옷이 배송됐다. 예쁜 디자인과 괜찮은 가격으로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한 개인 디자이너 브랜드다. 첫아이의 점퍼, 티셔츠, 목도리와 둘째 아이 티셔츠가 도착했다. 하나하나 마음에 들었다. 여기 옷은 15만 원 이상을 사면 해당 차수의 디자인이 들어간 가방을 서비스로 준다. (알아요. 이것도 다 내가 낸 돈인 거…). 둘째 아이는 형 입던 옷이 있으니 구색 맞춤으로 티셔츠 하나 정도를 끼워 넣고 서비스로 주는 가방을 줄 생각이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하원하며 운을 뗐다. 첫째 옷을 보면 속상해할까 봐 둘째 얘기부터 시작했다.


“지오야, 엄마가 지오 가방을 샀어”

(15만 원 사면 공짜로 주는 그 가방 말이다.)


새 가방이라며 좋아한다. 집에 들어와 둘째에게 가방을 주었다. 함께 온 베이지색 기본 티셔츠야 뭐 하나씩 샀으니 문제가 없다.


다음은 첫째 아이의 점퍼 차례다.  
“지오는 가방을 샀고, 형은 점퍼를 샀는데 볼래?”


하고 안방에 걸려있는 점퍼를 내려 첫째에게 보여주자, 둘째 아이의 눈에 서운함이 역력하다. 입꼬리가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둘째는 울음을 참다 내게 안겨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거 지오도 가지고 싶어”하면서. 떼를 쓰면서 우는 게 아니라 서러워서 우는걸 알겠기에 내 마음이 더 미안하다. 그렇게 우는 아이에게 너는 다 있어서 안 샀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둘째는 형의 새 점퍼를 입고 한참 벗지 않았다.

내게 안겨 울던 둘째는 형의 점퍼를 입고는 벗지 않았다. 그걸 입고 입꼬리가 내려간 채 누워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그렇다고 첫째 입던 티셔츠, 바지, 바람막이, 점퍼, 운동화 다 멀쩡한데 형 사준다고 다 똑같이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둘째는 매번 이 서운함을 참아야 하는 걸까?


우리 집 첫째는 양가의 첫 손주였다. 친구들 중에서도 남자아이는 처음이어서 옷을 물려줄 사람이 없었다. 첫아이의 모든 옷은 새 옷이었다. 아이 어릴 때는 금방 커버릴 아이 옷을 내 눈에 예쁜 걸로 다 사 입히기는 부담스러워서 만들어 입히기도 하고, 가능한 저렴한 걸 사기도 했다.


3년 뒤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는 첫째와 출생월이 1월로 같아 첫아이의 3년 지난 옷을 그대로 물려 입었다. 앞으로 계속 형의 옷을 물려 입을 게 미안해 배냇저고리만은 새것으로 사줬다. 선물을 많이 받아 돌까지는 내의도 새것을 입었지만 다른 옷은 형의 것이 많았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어차피 둘째도 입을 건데 첫째 옷을 예쁘고 좋은 걸로 사 입히자 싶었다.


그때부터 첫째 옷을 사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어차피 첫째 입고 3년 지나면 둘째가 입을 텐데, 둘째 때 또 사느니 첫째 옷을 좋을 걸로 사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둘째 옷을 아예 사지 않은 건 아니다. 첫째 때 못 입혔던 신발이나 옷은 내내 눈에 밟혀 둘째 때는 그냥 사주기도 했다.


계절이 바뀌면 아이 옷을 사는 것도 일이다. 둘째야 있는 것을 입히면 되지만, 첫째는 정말 사지 않으면 입힐 옷이 없다. 신발이 작아져 운동화를 사야 했고, 바지가 짧아져 새 바지가 필요했다. 팔이 짧아진 옷을 입히기 싫어 서둘러 한 계절 앞서 옷을 주문하곤 했다.


한참을 그대로 신긴 실내화와 봄에 신던 운동화가 잘 안 들어간다는 말에 주문한 첫아이 실내화와 운동화가 하루 차이로 배송됐다. 형의 새 실내화를 보고도 자기 거는 왜 없냐고 자꾸 묻던 둘째 때문에 새 운동화의 소식은 정말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신던 운동화처럼 현관에 꺼내 두었는데, 외출하려고 현관에 선 둘째는 형의 새 운동화만 보였나 보다.


제 신발을 놔두고 형 신발을 신더니 벗지를 않는다. 자기한테 맞는다며. 형 신던 거 라도 말해도 소용이 없다. 왜 자기는 이 신발이 없냐며 자기도 사달란다.

형의 새 신발을 신고 벗지 않는 둘째 아이

“지오야 지오는 신발 있잖아. 이것도 거의 새 거야”하고 달래 보지만, 4살 눈에도 새 운동화와 헌 운동화 정도는 알아볼 수 있겠지. 새 신발을 신는 형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둘째를 보면서 엄마 마음은 또 미안해진다.


내가 둘째 옷을 안 사주겠다는 게 아니라, 있으니까 첫째 쓰던 게 다 있으니까 그래서 가끔 하나씩 사주는 건데 둘째가 보기에 형은 매번 새 신발, 새 내복, 새 점퍼가 생기니 속상할 수밖에 없겠지. 그렇다고 다 있는걸, 서운하지 말라고 새로 사 줄 수는 없고. 나나 남편이나 둘 다 둘째라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둘째에게 새 옷 사 주는 게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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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 @rubi_su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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