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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Dec 09. 2021

겨울 딸기와 선행 학습

늦봄의 딸기를 초겨울에 만나며 드는 생각

"와~ 딸기다!"


오랜만에 아이들을 보러 오신 어머님 손엔 딸기가 들려 있었다. 올 겨울 첫 딸기였다. 딸기를 먹은 날이면 저녁까지 손에서 딸기향이 가득한 둘째 아이를 위한 것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 둘러앉아 딸기를 먹는데 문득 남편이 그러는 거다.


"딸기가 원래는 언제 나는 거지?"


"늦봄에 나지. 예전엔 5월은 돼야 먹을 수 있었는데 말이야"

장미과의 딸기는 25도 정도의 선선한 날씨를 좋아하는 여러해살이 열매채소다. 아무런 시설의 도움 없이 열매가 빨갛고 맛있게 익으려면 5월 중순은 넘어야 한다.



나 어릴 적 살던 시골 마을에서는 딸기를 키우는 집과 수박을 키우는 집 두 종류가 있었다. 우리 집은 수박을 키웠는데, 그래도 늦봄이 되면 이웃들이 나눠주는 딸기를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전부 노지 딸기였다. 딸기를 따다 팔고 난 뒤 상품성이 떨어지는 걸 한대야쯤 받아왔는데 먹다 남은 것으로 엄마는 딸기잼을 만드셨다.

그러다 노지 딸기를 키우는 집이 점점 줄었다. 수박도 하나둘 하우스 수박으로 바뀌었다. 그 많던 밭엔 하우스가 늘어섰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우스 수박이 더 크고 맛있고 비싸니까.

부모님은 수박을 한 해에 꼭 두 번을 심었는데 3월에 심어서 6월에 한 번, 6월 말에 심어서 9월(보통은 추석 즈음)에 한 번 따다 팔았다. 수박값은 초여름이 더 좋곤 했다.

순리대로라면 딸기는 찬기운 가시고 따뜻해진 늦봄에, 수박은 뜨거운 여름 한가운데에 열매를 맺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사람들은 딸기와 수박이 제 힘으로 노지에서 영글 때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듬해 5월이 돼야 익는 딸기를 한겨울도 오기 전인 12월에 수확하니 6개월이나 앞서는 것이다.

때 이르게 찾는 사람이 먼저인지,
때 이르게 키우는 사람이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www.freepik.com

초겨울 빨갛게 익어 우리 집 식탁에 올라온 딸기를 보며 문득 요즘 아이들의 선행학습이 떠올랐던 건 왜 일까? 나 역시 겨울 방학을 앞두고 아이의 2학년 1학년 문제집을 보러 서점에 다녀왔던 탓인 것 같기도 하고.

학교 공부는 각 학년마다 배워야 할 내용이 정해져 있고, 그 내용은 일단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끝난다. 정해진 양과 끝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요즘 웬만해선 선행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없다고 한다. 정말 필요해서 하는 건지, 남들이 다해서 하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고3까지 정해진 공부를 제때 차근차근하면 하면 될 것 같지만, 다들 초등학교 때부터 윗 학년 공부를 하며 슬슬 달리기를 시작한다. 빨리 배워서 빨리 잘해야 좋은 고등학교에 갈 수 있기 때문인 건가? 출하를 앞당긴 딸기가 더 비싼 값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늦봄의 노지 딸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우스 딸기와 비교해 수지가 안 맞기 때문이다. 노지 수박도 마찬가지. 하우스에서 일정한 온도와 물을 주며 키우는 하우스 딸기와 수박의 품질을 노지 열매는 절대 따라갈 수가 없는 탓이다.

사람은 하우스 속 딸기와 수박과는 달라서 남들 다 하는 선행 없이도 뭔가 다른 결과물을 내놓을 것 같은 맘 한편으로, 그래도 하우스 딸기와 수박이 노지의 것과는 때깔부터 다른 것처럼 요즘 아이들에게도 선행 학습이 꽤 영향을 주지 않을까는 불안함이 주는 나약한 믿음이 없지는 않다.

딸기는 가만있는데 농부의 마음만 먼저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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