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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Jul 11. 2019

얼리어답터 아내의 고충

테슬라 모델 3가 나오기는 할까?

남편이 차를 팔아버렸다. 나름 아낀다고 기계 세차 한 번 하지 않은 차를 남편은 사흘 만에 팔고는 휙 출장을 떠났다. 1년 동안 정도 참 많이 들었는데.


남편은 3년 전쯤 전기차인 테슬라 모델 3*를 예약했었다. 문제는 전기차 양산이라는 난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아 아직도 한국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 테슬라는 아이언맨의 롤모델이기도 한 애론 머스크가 지난 2003년 설립한 미국의 전기자동차 회사다. 모델 3는 테슬라가 내놓은 보급형 모델로 타 기종(모델 S, 모델 X)과 비교해 가격 면에서 매력적이다.


모델 3을 기다리다 지친 남편이 차선책으로 선택한 차가 이번에 판 전기차 쉐보레 볼트 EV다. 몇 달 집을 비우니 차를 그냥 세워두는 것보다 파는 게 낫고, 올 하반기로 넘어가면 값이 떨어질 테니 지금이 적기이며, 내년엔 예약한 모델 3가 나오겠지 하는 생각이 맞물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차를 팔아버렸다.


볼트 EV는 전기차에 대한 남편의 실험이었고 남편은 이를 통해  앞으로 전기차를 계속 타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남편은 얼리어답터다. 관련 기술과 제품에 관심이 많고 그중 일부는 집에 들인다. 제품 구매에 관해서는 가성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쉽게 물건을 사지는 않는 합리적 소비형 얼리어답터쯤 되겠다.

https://www.tesla.com/ko_KR/model3

이런 남편의 성향은 한때 내게 업무적으로 도움이 되기도 했다. IT 문외한인 내가 IT업계에 몸을 담고 있던 시절, 남편의 지속적인 관심과 조언은 업계 동향 파악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가정에서 얼리어답터 남편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번에 판 차만 놓고 봐도 그렇다. 통근버스를 타면 출퇴근 시간이 더 걸릴 테고 원래 타던 작은 차로 몇 달은 더 나야 한다. 3년간 안 나온 차가 앞으로 언제 나올지도 모르지 않나.


남편이 예약한 건 차뿐만이 아니다. 그 시기쯤, 그러니까 이것도 3년이 지났다. 아주 신박한 아이템이라며 ‘골전도 안경’을 예약했다. 골전도란 음파가 두개골에 전도되어 직접 내이에 전달되는 현상으로 안경에 골전도 블루투스 이어폰이 결합된 형태라고 보면 된다. 문제는 이 안경도 여태 나오지 않아 결국 작년에 다른 안경을 사야 했다(물론 아직도 남편은 이 안경을 기다리고 있지만).


https://www.kickstarter.com/profile/vue

남편은 집도 스마트홈으로 만들었다. 출발은 아마존 에코 구매에서 시작했다. 출시 초기 아마존 프라임 가입까지 하며 기다려 구매한 것이다. 지금은 구글 홈, 카카오 미니, 네이버 클로바 등 음성인식 스피커가 흔해졌지만 몇 년 전엔 오직 이것뿐이었다. Alexa를 부르고 명령하면 전등, 프로젝터, 리시버 등의 전원을 제어할 수 있다.


편리하라고 세팅해놓은 것인데, 솔직히 말하면 난 불편할 때가 더 많다. 내 영어를 못 알아 들어서 서너 번 얘기할 때면 이게 뭐 하는 건가 싶다. 리모컨 버튼을 누르는 게 왜 불편하단 말인가.


에코를 산 뒤에는  이것을 활용해 제어할 수 있도록 하는 이름 모를 장치도 더 주문했다. 이것들 때문에 이사를 할 때마다 집을 세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난 스위치를 눌러 전등의 불을 켜고, 리모컨으로 뭔가를 작동시키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다. 나의 생활이 더 편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 그게 별로 불편하지 않으며 불편을 느껴도 그냥 그렇구나 생각하고 만다. 하긴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세상에 발전이 없겠지.


남편은 작은 불편이 생기면 더 편리하게 바꾸고 싶어 궁리를 하는 사람이다. 청소를 하다가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청소도구를 바꿔서라도 문제를 해결한다. 주방기구도 더 좋은 것이 있으면 그렇게 사고 싶어 한다.


차를 파는 남편을 보며 얼리어답터의 아내로 사는 것도 나름 고충은 있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남편 같은 사람들이 바꾸고 있는 세상의 변화가 놀랍긴 하다. 그나저나 모델 3는 정말 나오기는 할까? 애론 머스크에 대한 나의 신뢰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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