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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Jul 19. 2019

매일의 난제 '오늘 저녁 뭐 먹지?'

편식하는 아이를 위한 엄마의 집밥

매일 반복되는 난제 ‘오늘 뭐 먹지’

내 하루의 가장 큰 고민은 '오늘 저녁은 뭘 먹지'다. 이 고민은 쉽게 해결되는 날도 있으나 대부분의 날은 그렇지 않다. 저녁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 다가오면 점점 마음이 급해진다. 매일 저녁에 풀어야 하는 숙제를 남겨둔 기분이랄까.


냉장고 앞을 서성이다 냉장실 문을 열었다. 각종 소스 등이 가득한 맨 윗 칸부터 야채와 과일이 든 맨 아래 칸까지 뭔가가 꽉 차 있다. 뭐가 있나 한참을 둘러보지만 쉽게 결정을 못한다. 냉동실 문도 열어본다. 뭘 더 넣을 수 없을 만큼 꽉 차 있다. 저녁에 먹을 것도 없는데 여기 가득한 이건 다 무엇인가.


냉장고 문을 열고 한참을 들여다봐도 저녁에 뭘 할지 쉽게 결정을 못 한다.

꽉 찬 냉장고를 들여보다 '경고음' 소리에 문을 닫는다. 그렇게 오래 문을 열어두지 말란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아직도 오늘 저녁 메뉴를 결정하지 못했는데 어쩌지.


내게 저녁 식사 준비가 부담인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다. 특히 우리 집 첫째. 편식하는 첫째 아이는 유치원의 점심으로 제 양을 채우지 못하고 집에 오는 날이 허다하다. 간단하게 허기를 채운 아침과 운 좋으면 반찬 하나가 입에 맞았을 점심. 그렇게 유치원에 갔다 돌아와서 먹는 저녁은 적어도 아이에게 맛과 영양을 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오늘 저녁은 뭘 하지?’ 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


고기로 단백질을 채워주고, 가능하면 채소 맛도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고민하다 보니 벌써 저녁시간.


하루 종일 부산을 떨며 비장하게 식사를 준비해도 잘 먹지 않는 날이 있고, 급하게 대충 차려도 아이가 잘 먹는 날이 있다. 이러나저러나 언제나 잘 먹는 메뉴도 물론 있다.


토르티야에 고기와 채소를 듬뿍 넣어 만든 토마토소스를 바른 뒤 치즈를 올려 구운 피자.
양파 한 개를 갈아서 오래 볶은 뒤 감자를 넣어 만든 카레. 고기를 따로 구워 곁들이면 맛이 더욱 좋다.


“오늘 엄마가 만든 카레는 식당에서 팔면 사람들이 맛있어서 줄을 서고, 계속 사 먹겠다고 해서 밤까지 문을 못 닫을 맛이야!”


“오늘 엄마의 피자는 피자 대회에 나가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모두 딸만큼 맛있어!”


아주 구체적이고 정교한 칭찬에 하루 종일 고민한 엄마의 수고로움은 싹 씻겨 내린다.


이제 치킨 정도는 눈을 감고도 만들 수 있다. 핵심은 닭다리살을 사용하는 것과 전분 가루를 묻히는 것.
일명 빠삭밥. 우리 집에만 있는 메뉴다. 야채 고기 등을 작게 잘라 주먹밥을 만든 뒤 치즈를 올려 파니니 그릴에 굽는다.
수요 미식회에도 나왔다는 유명한 식당의 들기름 국수의 맛을 재현했다. 여름만 되면 이 국수를 해달라고 난리다.
야채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의 식성을 고려해 만든 햄버거.
그냥 당근은 안 먹어도 당근을 갈아 부친 당근전은 참 좋아한다. 전에 밥을 야무지게 싸 먹곤 한다.
엄마가 보내주신 생선을 찌고, 두부를 굽고, 어묵은 탕을 끓였다.

어떤 엄마는 내게 그런 말도 했다. "엄마가 그렇게 해주니까 아이가 다른 음식은 더 안 먹지. 앞으로 더 심해질걸." 나의 정성이 오히려 아이에게 안 좋을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그렇다고 엄마가 안 먹는 아이를 그냥 둘 수는 없잖아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노력을 할 뿐. 내 노력이 잘못됐다는 말은 지금도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다만 아이가 식사 시간을 즐겼으면 한다. 편식하는 아이일수록 식사시간이 즐겁기만 할 수는 없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뭘 하나 더 먹이기 위한 엄마의 꾀와 익숙하지 않은 건 먹지 않으려는 아이와의 기싸움도 사실 있다. 하지만 크면 점점 좋아진다고 하니 우리 아이의 편식도 점점 나아지겠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엄마 나름의 노력을 하며 기다리는 것뿐.


중요한 것은 반찬 하나를 더 먹고 안 먹고가 아니다. 음식을 먹는 게 즐겁고 가족과 함께 앉는 저녁 식사 자리가 아이에게 행복한 시간이었으면 한다. 적어도 아침은 끼니를 때우기에 바쁘고, 좋아하지 않은 반찬이 나왔을 점심은 먹어보려고 노력했다면, 저녁만은 그런 스트레스 없이 식사를 즐겼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저녁 메뉴를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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