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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May 10. 2019

제 아이는 편식을 합니다

편식하는 아이에 대한 엄마의 마음가짐

오늘도 아이는 유치원에서 밥만 먹고 왔다. 다른 날의 경우 보통 한 가지 정도는 먹을 반찬이 있는데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오늘 점심메뉴는 부대찌개, 비엔나 파프리카 조림, 고사리 볶음, 김치, 청포도. 부대찌개와 김치는 매웠을 테고 비엔나와 파프리카, 고사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과일도 마찬가지. 아침에 메뉴를 확인할 때 ‘오늘은 밥만 먹겠구나’ 싶긴 했지만 정말 그랬다는 얘길 들으면 참 속상하다.


아이는 그 와중에 작은 고사리 하나를 먹어봤다고 자랑한다. 먹지 않더라도 한 번은 꼭 맛을 봐야 한다는 선생님의 친절한 설득으로 입에 넣어본 것이다. 한 번 맛을 봤지만 더 먹고 싶지 않다면 더 권하지 않기로 학기초 담임 선생님과 입을 맞췄기 때문에 아이가 노력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했다고 칭찬을 해줬다. 밥만 먹고 온 아이에게 칭찬을 해야 하다니, 아들은 엄마의 타들어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의 6살 첫째 아이는 편식을 한다. 편식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 때문에 가능한 ‘음식을 가려 먹는다’고 얘기하곤 하지만 사실 그게 그 말이다. 아이가 음식을 가린다고 얘기하면 주위 엄마들은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뭐. 우리 아이도 그래”라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한다. 아이가 또래에 비해 키가 작거나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아이가 안먹어도 나는 열심히 야채를 산다. 언젠가는 먹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우리 아이 편식은 그리 호락호락한 수준이 아니다. 최근 10여 년 간 5세 반을 맡아온 작년 담임 선생님은 “지안이 편식은 그간 10년 동안 본 아이 중 손가락에 들긴 해요”라고 인정해주셨다. 보통 아이들은 안 먹는 음식이 있어도 다른 아이가 먹거나, 선생님이 먹어보자고 하거나, 숨겨서 먹이면 먹기도 하는데 지안이는 전혀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얘길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나는 아이 이유식을 정말 열심히 했다. 아이가 많은 재료를 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만들어 먹였다. 이유식 책의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으로 매끼 맛있는 식사를 준비했다. 하다못해 어묵까지 만들어 먹였으니까. 그때 나는 이유식을 잘하면 편식이 없다는 많은 육아서를 철썩 같이 믿었다.


아이가 편식을 시작한 건 15개월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찬과 밥을 먹기 시작하자 슬슬 가리는 게 생겼다. 시금치, 브로콜리, 파프리카처럼 색깔이 뚜렷하거나 식감이 부드럽지 않은 것은 멀리했다. 다진 고기로 이유식을 할 때는 몰랐는데 고기도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식을 할 때에도 과일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으나 밥은 잘 먹으니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클수록 남들 다 좋아하는 딸기, 수박, 사과, 바나나 조차 좋아하지 않으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싫어하는 음식이 나오면 '엄마 나 이거 싫어해요’라고 정확히 의사표현을 했다. 여러 번 설명하고 먹이려 해도 먹기 싫다는 마음이 바뀌진 않는다. 밥 속에 숨겨서 먹여도 봤지만 정말 귀신같이 찾아냈다. 이때부터 아이의 입맛이 다른 아이와 달리 유난히 예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렸을 때 남편의 편식은 어머님께 얘기만 들었는데 뭐 거의 그 수준인 것 같다. 어머님은 남편 초등학교 때 김치를 먹이려고 이틀 굶겨도 봤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리고 남편의 편식은 20대가 돼서야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쯤 되면 그럼 아이는 뭘 먹고 사느냐고 물어볼 수 있다. 아이의 선호는 아주 분명하다. 아이의 최애 반찬은 계란. 그중 Sunny side up을 가장 좋아한다. 노른자는 절대 다 익히면 안 된다. 부드러운 두부나 묵도 곧잘 먹는다. 크로켓, 돈가스, 치킨 같은 바삭한 식감의 음식도 좋아한다. 볶음밥은 안 먹어도 그릴에 파니니처럼 눌러주면 또 그건 먹는다. 감자조림은 안 먹지만 후렌치 프라이는 먹고, 당근은 싫지만 당근전은 또 먹는다. 특히 다른 게 안 들어간 빵 종류는 다 좋아한다.


에어프라이어로 요리한 삼겹살 감자구이

 

그릴에 구운 밥파니니
미트볼과 유부초밥
야채볶음밥으로 만든 크로켓


첫째의 편식 때문에 둘째는 아이 주도 이유식을 했다. 아이 주도 이유식은 아이가 스스로 먹을 음식과 양을 정하게 하는데 미음으로 시작하는 보통 이유식과 달리 찐 채소로 이유식을 시작한다. 그렇게 하면 둘째는 편식을 안 할 줄 알았다. 둘째 이유식 초기에 당근, 호박, 브로콜리를 쪄서 스스로 먹도록 했다. 중기까지는 아주 잘 먹길래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둘째 역시 반찬식을 시작하니 가리는 게 생겼다. 첫째 위주의 반찬을 하다 보니 그것에 맞춰 둘째도 음식을 가리게 된 것이다. 2살이 봐도 브로콜리 반찬보다는 돈가스가 맛있어 보이겠지.


그럼 둘째 반찬을 따로 하지 그랬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변할 건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형 반찬을 먹으려 했을 테니까. 그렇다고 둘째 중심의 반찬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럼 첫째가 아예 밥을 먹지 못했을 테니까. 두 아이 모두에게 각각 맞춰서 해주라고 한다면 그건 엄마에게 좀 가혹하다. 엄마의 에너지도 한계가 있지 않은가.


아이의 편식이 이쯤 되면 엄마는 편식에 관한 책을 찾아보게 된다. 그중 인상 깊은 책은 ‘프랑스 아이는 편식하지 않는다’다. 캐나다에 살다 프랑스에서 1년 살게 된 작가에 따르면 정말 프랑스 아이들은 편식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에는 프랑스 국민의 음식에 대한 인식, 각 가정의 일관되고 엄격한 식습관 교육, 체계적이고 훌륭한 프랑스의 급식 체계가 근거로 꼽힌다. 식습관에 대해서는 우리 집에서도 교과서의 정석을 따르고 있지만 책의 모든 부분을 적용하긴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놀이터에 가면 간식을 먹으며 노는데 우리 아이만 간식을 못 먹게 하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놀이터에 못 가게 할 수도 없고.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도 찾아봤지만 우리 아이의 경우와는 상황이 좀 달랐다. 국민 육아 멘토 오은영 박사는 자신도 어릴 때 편식이 심했으며 고기는 아예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느냐며 자신을 보라고 반문했다. 아이들마다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걸 존중해주라는 게 오 박사의 조언이다. 아이의 편식은 본능이며 일부 미뢰가 발달한 아이의 경우 다른 아이보다 심하게 편식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것도 존중해주라고 했다. 오 교수가 제시하는 편식의 해법은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을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해주라’는 것이다. 크면 결국 다 좋아진다며. 정말 크면 좋아지냐고 되묻고 싶지만 화면 속 박사님은 대답이 없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아이의 입맛은 타고 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미각이 발달한 남편의 유전자가 분명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 게 틀림없다. 물론 엄마의 부단한 노력이 그것을 상쇄할 수는 있겠으나 그건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지안이의 경우가 그랬고, 나 역시 나대로 노력은 했지만 아이의 행동교정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아니 아직은 진행 중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그래서 나는 쿨하게 첫째 아이의 남다른 미각과 편식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니 좀 마음이 편해지더라.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 집 두 아들은 오늘도 편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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