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정 Jun 21. 2019

내 육아의 3할쯤은 커피의 몫

커피가 육아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

오늘 커피는 언제 마시지?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로 아이들 밥을 차리면서 나는 커피 생각을 한다. 나는 보통 하루 한잔의 커피를 마시는데 이 커피를 언제 마실까 고민하며 아껴뒀다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을 때 커피머신의 전원을 켠다.


아이들을 보내고 난장판인 집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소파에 앉아서 마실 때도 있고, 집 정리를 끝낸 뒤 마실 때도 있다. 운동하고 들어오다 시원한 아메리카노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커피숍에 들르는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약속을 위해 집 커피를 아껴두기도 한다. 일할 때는 하루 몇 잔씩 마시던 커피를 임신하고 수유를 할 때는 끊어도 봤지만, 나는 결국 커피에게 돌아왔다. 아니 오히려 커피는 하루 종일 온전히 아이를 돌봐야 하는 육아 집중기에 나를 외로움과 피로에서 구원했다.

출처 https://www.freepik.com/

그때 내 육아의 3할쯤은 커피가 담당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첫아이는 잠에 예민했다. 재우기가 힘들었고 밤에도 몇 번씩 깼다. 아이가 잠을 잘 못 잔다는 것은 엄마도 잠을 잘 잘 수 없음을 의미한다. 원래 잠이 많은 나에겐 더욱 힘든 일이었다.


아이가 하룻밤에도 열 번씩 깨서 울 때면 나도 같이 깨서 울고 싶어 진다. 우는 아이를 앉고 거실로 나와 어르고 달래어 다시 재우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 나면 아침이 밝는다. 새벽같이 출근하는 남편은 이미 자리에 없고 나는 우는 아이와 함께 퀭한 눈으로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이때 필요한 게 커피였다. 몽롱한 정신과 피곤한 몸에 카페인이 들어가면 그래도 그때부터는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비우고 나면 뭐랄까 본격적으로 오늘의 육아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솟는 것 같았다. 비록 카페인이 내 몸을 속이고 있을지언정.


커피 힘으로 폭풍 같은 오전 시간을 보내고 나면 1시쯤 아이가 낮잠을 잔다. 아이 낮잠 시간에는 할 일이 많다. 설거지와 빨래를 해야 하고 난장판이 돼 있는 집도 정리해야 한다. 씻는 것도 이 시간에 끝내야 한다. 정신없이 이 일들을 해치우고 난 뒤에도 아이가 잠에서 깨지 않으면 나는 커피 한잔을 더 마실 수 있다. 꿀보다 값진 한 잔의 커피를.


어떤 날은 모든 집안일을 다 놔두고 커피 먼저 마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일을 하다 말고 커피를 내리기도 한다. 어쨌거나 오후에 마시는 커피는 나에게 충전을 의미했다. 우두커니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동안은 휴대폰을 충전하듯 커피로 몸속 어딘가 숨어있는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기분이다.


아이를 낳은 뒤 처음 커피를 마실 때는 사실 사람들과 함께 마시는 커피가 참 그리웠다. 회사를 다닐 때, 매일 아침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는 게 나름의 낙이었다. 출근을 해서 하루 일정을 정리하고 간단한 오전 일을 마친 뒤 10시쯤 함께 커피를 마셨다. 1층 회사 커피숍에서 마실 때도 있었고, 회사 앞 커피숍에 들르기도 했다. (이 커피숍은 스타벅스 바로 옆에서 당당히 장사를 했는데 라테가 워낙 맛있어서 아침, 점심시간에는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임신을 하고는 커피 대신 다른 음료를 마시기도 했지만 그 시간만은 참 좋았다.


출처 https://www.freepik.com/


아이를 낳고 4개월쯤 됐을 때 남편에게 커피머신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수유기에 카페인이 아이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지만,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게 나에게 더 악영향을 주는 것 같았기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말도 못 하는 아이와 있는 엄마 사람은 어쩌면 커피보다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더 그리웠을 것이다.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커피라도 만나게 해 달라. 기왕이면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맛과 편리함 등을 모두 고려해 집에 커피머신을 들였다.


혼자 커피를 마시는 날이 늘면서 나만의 커피 시간이 새롭게 시작됐다. 오전의 커피가 하루를 깨웠고, 오후의 커피는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그렇게 매일 마신 커피가 도대체 몇 잔이던가. 지금은 오후 늦게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을 못 자는 날도 있어서 가능한 한잔만 마시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하루 한잔의 커피를 언제 무엇을 하면서 마실 건지는 나에게 꽤 즐거운 고민이다. 그러고 보니 별 일 없이 무사한 나의 육아 생활의 영광을 커피에게 돌려야 겠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커피 마니아는 아니다. 필요에 의해 마시다 맛있게 마시고 싶어 하는 사람 정도가 됐다. 적당히 내가 좋아하는 커피 맛을 찾고, 그런 커피숍 몇 개를 알아두고 가끔 한 번 들른다. 콜드 블루보다는 에스프레소를 좋아하고 아메리카노보다는 라테를 선호한다. 산미가 풍부한 드립커피보다는 밀도 높은 밀크폼의 고소한 카페라테가 좋다. 가끔 맛있는 원두가 있으면 모카포트를 쓰기도 한다. 처음 가는 커피숍에서는 항상 카페라테를 주문한다. 육아와 함께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생긴 내 커피 취향이다.


오늘은 노트북에 워드 창을 띄워놓고 커피 한잔을 내렸다.

오늘의 커피는 글과 함께 했다.

이전 07화 애 볼래? 밭 맬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