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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May 20. 2019

우린 모두 누군가의 워너비

나는 내가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될 줄 알았다네

전쟁 같은 아이들 등원 준비를 마치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천천히 열린 문 안쪽으로 반듯한 옷차림에 화장까지 완벽한 출근하는 여자가 서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 다음 돌아서서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다. 은은한 화장품 향이 가득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문득 아침에 일어나 세수도 하지 못한 게 생각났다. 내려가는 동안 엘리베이터의 문이 꼭 벽같이 느껴졌다.


아이들을 보내고 들어와 난장판이 된 집을 우두커니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될 줄 알았는데…’ 뭐 대단한 걸 꿈꾼 건 아니다. 적어도 계속 일을 할 줄 알았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네가 집에서 아이 키울 줄을 몰랐어’라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나도 그럴 줄은 몰랐어’라고.


출처 : https://www.freepik.com/


문득 일할 때 생각이 났다.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 월간 뉴스레터 발행을 마친 다음 날 점심은 좀 여유롭게 하곤 했다. 회사에서 10분쯤 걸으면 트렌디한 맛 집이 모여 있는 식당가가 나온다. 그런 날은 점심 회식을 하듯 천천히 식사를 하고 커피까지 마시는 호사를 누렸다. 11시 30분, 식사를 하긴 좀 이르지만 식당엔 벌써 자리가 몇 남지 않았다. 다른 테이블의 중년 여성 모임은 벌써 식사가 거의 끝났고, 그 옆 테이블의 아기 엄마들은 식사보다는 이야기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와 이 동네는 팔자 좋은 사람 많네요. 이 시간에 식사라니”

“다시 태어나면 ‘이 동네 아줌마’로 태어나야지 원”.


귀에 거슬리는 농담이 오간다. 나 역시 말은 안 했지만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누구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일하기 바쁜데 저 아줌마들은 무슨 팔자가 좋아서 맨날 브런치나 먹고 다니는 걸까’ 하고. 워킹대디, 워킹맘 일행 누구도 그 모습을 유쾌하게 보지 않았던 건 분명하다.


아이를 낳고 난 뒤 전에 일하던 회사 사람들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아이와 집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니 어찌나 설레던지.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해도 벌써 약속시간이 빠듯해 온다. 앞에는 아기띠에 아이를 안고 어깨엔 기저귀 가방을 메고 회사 근처 역에서 내렸다.


먼저 식당에 들어가 앉아 있는데 유모차와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아이를 달래는 엄마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들은 언제 다시 안아야 할지 모르니 아기띠도 풀지 않은 채였다. 그땐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던 여성들의 모습이 그 아기 엄마의 입장이 되어보니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곧 지인들이 들어왔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밥을 먹고 있는데 뒤 테이블의 이야기가 귀에 들린다.


 “식당에 자리가 없어. 이 아줌마들 때문에”


그 얘기를 듣자 나까지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저 아줌마들도 가끔 한번 나온 거예요. 저도 그렇고요. 맨날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다 어쩌다 한번 나온 거라고요.” 입 밖으로 내고 싶었던 말이 한가득이지만 끝내 꺼내지는 않았다. 식당에서 식사하는 여성들을 마치 매일 브런치나 먹으러 다니는 팔자 좋은 사람들로 성급하게 일반화했던 건 비단 그들뿐 아니었다. 부끄럽게도 1년 전 나조차 그랬으니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대로 생각하고 그녀들의 점심 식사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본 것에 대해 깊게 반성한다.

출처 : https://www.freepik.com/free-photos-vectors/business


오늘 아침 나는 정장을 입고 화장을 한 여성의 모습이 부러웠던 것일까? 아이가 있음에도 일을 하고 있는 용기가 부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매일 출근을 하는 모습 그 자체가 부러웠던 걸까? 어쩌면 그 여성은 반대로 나를 보며 ‘출근하지 않고 여유롭게(그렇다고 여유롭진 않지만) 아이의 등원 준비를 할 수 있어서 좋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지만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다시 집으로 출근한 나는 오늘 아침 흔들렸던 나의 시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한다. 


우린 모두 누군가의 워너비다.

누군가는 매일 출근하는 사람이 부럽고,

출근해 일하는 사람은 낮에 식당에서 밥 먹는 사람이 부럽고,

집에서 아이를 보는 사람은 여전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부럽다.

다들 서로 가지 않은 길을 바라보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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