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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Jul 15. 2019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월요일, 나만 그런 거 아니죠?

그런 날이 있다. 무엇도 하기 싫은 날. 남편 없이 맞은 두번째 주말 나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삼시세끼 밥을 해 먹이고 설거지를 해가며 아이들과 놀아주고 치우기의 무한 반복. 월요일 아침 등원 준비를 위해 남겨둔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나는 방전이 됐다.


오늘은 월요일. 아침에 아이 둘을 원에 보내고 습관적으로 운동까지는 다녀왔다. 그런데 돌아와서 씻고 나니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은 거다. 이렇게 격하게 무엇도 하기 싫은 날이 종종 있다.


평소엔 혼자 있는 이 시간이 정말 중요하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엉망이 돼 있는 집도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한다. 글도 써야 하고, 사람도 만나야 하고, 저녁 준비도 해야 한다. 무언가를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아이들이 없는 바로 지금이다. 하지만 이것도 하고 싶어야 하지. 오늘은 영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그래 봤자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까지겠지만.


출처 : https://www.freepik.com/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면 일단 아무것도 하지 않을 준비를 해야 한다. 먼저 언제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을지 정했다. 일단 3시까지 그냥 소파에 하염없이 앉아있기로 했다. 아침 설거지도 그대로 두자. 청소도 내일로 미뤄두자. 하루쯤 청소를 하지 않는다고 뭐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니까. 원래 내일 걱정은 낼모레 하라고 했다.


창문은 열어두자. 시원한 바람이 내 몸의 피로를 가져갈지 모른다. 그것까지는 안 바래도 정신의 피로는 좀 거둬가겠지. 거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에 떠있는 구름은 그냥 그렇게 거기 떠있는 것 같아도 조금씩 움직인다. 내 시간도 흐르고 있다는 얘기겠지.


아! 커피는 마셔야지. 커피를 내려 다시 소파에 깊숙이 눌러 앉았다. 다시 하염없이 밖을 바라본다. 책을 몇 권 가져와 들춰봤지만 글자를 읽는 것이지 내용은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책은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내려놨다.


종종 이런 날이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몸은 무겁고 머리는 멍하다. 카페인이 부족한가 싶어 커피를 한 잔 더 마셨지만 정신이 깨지 않는다. 눈은 무겁지만 분명 졸린 건 아니다.


모든 게 멈춘 것 같아도 이러다 곧 3시가 되겠지. 그러다 문득 오늘 저녁은 뭘 해 먹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 끝없이 반복되는 ‘오늘 뭐 먹지? 지겨움. 냉장고에 뭐가 저렇게 많이 들었는데 밥 한 끼 못해먹겠나. 물론 그럼에도 항상 뭐 먹지 고민하게 만드는 게 저 냉장고이긴 하지만.


그리하여 오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예정이다. 망부석처럼 소파에 앉아 열심히, 그리고 격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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