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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Aug 03. 2019

노력의 증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성공하진 않지만 분명 헛수고는 아님을


요즘 열심히 하는 게 있는데 잘 되지 않는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나는 객관적으로 노력을 신뢰한다. ‘할 수 있다’ 같은 뻔한 주문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노력도 잘한다. 물론 노력한다고 모두 성공하고, 이뤄지고,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경험해보니 그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노력을 신뢰한다. 노력은 언제나 무언가를 남겼다. 비록 그게 성공은 아닐지라도.



내 고등학교 2학년 모의고사 성적의 발목을 잡은 건 수학이었다. 내신은 그냥저냥 나오는데 모의고사에서는 영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수학 공부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루 6시간 이상 수학 공부만 했던 걸로 기억한다. 기초부터 차근차근하면 성적이 오를 거라고 믿었다. 순진했거나, 머리가 안 좋았거나 둘 중 하나다.


매일 하루 6시간씩 수학 공부를 하면 문제풀이 연습장이 쌓인다. 한 권을 다 쓰면 책상 서랍에 넣었다. 다 쓴 연습장이 쌓여가자 나는 내 수학 성적이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몇 달 뒤 모의고사를 치렀다. 늘 40점대를 맞던 내가 놀랍게도 딱 하나만 틀렸다. 전교 1등도 2개를 틀린 그날 모의고사에서 말이다.


나는 내 노력이 결실을 맺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해피엔딩은 여기까지. 그날 모의고사가 그냥 내 문제풀이 스타일과 맞았을 뿐, 다시 점수가 떨어졌다. 공부를 하긴 했으니 아예 안 오른 건 아니지만 드라마틱한 성적 향상은 없었다. 깊은 책상 서랍에 다 푼 연습장이 가득 채워지도록 말이다.


노력한다고 다 이뤄지는 건 아니라는 걸 그때 처음 았다. 나는 수학 머리가 없다는 깨달음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노력이 부족했다는 수학 머리 있는 사람들의 비판은 정중히 거절한다).


내 노력의 증거로 남겨뒀던 취재수첩.

첫 직장에서 나는 취재수첩을 모았다. 매일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의 대화를 수첩에 기록했다. 노트북보다 수첩이 편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손으로 적었다. 수첩엔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날아가는 글자가 가득했다.


나는 다른 기사보다 인터뷰 기사 쓰는 게 좋았다. 그 사람이 하려는 이야기의 핵심을 뽑아내고 그것을 살려 기사를 쓰면 꼭 맘에 드는 기사가 나왔다. 국장도 내게 인터뷰 기사가 좋다는 얘길 하곤 했다.


그렇게 회사 책상 밑에 취재수첩이 쌓였다. 퇴사를 할 때도 그 취재수첩만은 낑낑대고 들고 나왔다. 기사로 이름을 날리는 기자로는 성공하지 못했을지언정 열심히 살았던 그때를 스스로 기억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취재수첩은 3번의 이사를 하면서도 꼭꼭 갖고 다니다 얼마 전에야 놓아주었다. 이고 지고 다니던 그 취재수첩이 없더라도 치열했던 그때의 내 기억이 상쇄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난 뒤였다. 그거면 됐다.


첫째 아이 이유식 식단표

최근까지 내가 신경을 쓴 건 아이의 식습관이다. 유난히 편식이 심하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됐다. 열심히 해 먹이면 뭐든 잘 먹는 아이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노력뿐. 아이의 편식이 심해질수록 나는 매 끼니에 더 공을 들였고 식사 노트를 적기도 했다. 평균적으로 8번 노출하면 그 식재료와 친해진다는 육아서의 말을 그때는 믿었다.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니란 걸 둘째를 낳고야 확실히 알게 됐다.  아이는 못 먹는 것을 둘째 아이는 노력도 없이 먹는 걸 보면서 ‘아 그냥 다른 거구나’ 하고 번뜩 깨닫게 됐다. 첫째 아이가 예민하다는 걸 인정하면서 나는 내 안의 죄책감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지나고 보면 노력해서 이룬 것도 있고, 이루지 못한 것도 있다. 노력한다고 모두 이룰 수 없다는 것쯤은 아는 성인이 다. 그런데 이렇게 적고 보니 성공하지 못한 기억이 크게 남았구나. 그 노력의 증거와 함께 말이다. 그렇다고 나는 내 노력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말 열심히 수학 문제를 풀었던 몇 달을 통해 나는 수학 점수는 못 얻었을지언정 내가 수학 머리가 없다는 걸 알게 됐고, 수북하게 쌓인 취재수첩을 통해 그때의 내가 얼마나 열정적이었나 기억하게 됐다. 엄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음식을 가리는 첫째 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는 다른 아이와 다르구나 인정하게 됐다.


노력이 매번 성공하지 않음을 알게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노오력, 노오오력* 같은 젊은 세대의 자조섞인 푸념을 이해한다.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누군가는 1만 노력해도 얻을 수 있는 걸, 다른 누군가는 10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 모른다. 로또 당첨도 로또를 사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인 것처럼. 꼰대 같지만 내가 여전히 노력을 하는 이유다. 언제나 성공하진 않았지만 분명 헛수고는 아닐 그 노력을 말이다.



노오력*

노력보다 더 큰 노력을 하라는 뜻. 노오오력은 노오력보다 더 큰 노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회가 혼란스러워 노력 가지고는 되지 않음을 풍자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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