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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Jun 13. 2019

더 이상 생일이 설레지 않기 시작했다

정확히 기억한다. 35살, 나는 생일이 설레지 않기 시작했다. 34살 생일까지만 해도 나는 생일 몇 주 전부터 설레며 생일을 기다렸다. 어떤 생일 선물을 받을까? 저녁 식사로는 뭘로 할까? 꼭 이런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냥 일 년 중 하루 나에게만 특별한 날이 있다는 점에서 나는 내 생일을 참 좋아하고 기다렸다. 자기 생일을 깜박하는 사람이 있다는데 정말 그런 게 가능이나 한 걸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내가 생일에 설레지 않게 되다니!


그렇다고 35살 생일에 별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생일날이지만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하루가 시작됐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남편은 일요일 저녁에 미역국을 끓여놓았고 아침에 아이들과 먹으라고 했다. 남편에게는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생일날의 기쁨에 찬 설레는 기분이라기보다는 차분한 감정에 가까웠다.


아이들 등원 준비를 마치고 첫째는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둘째는 어린이집에 데려다줬다. 그리고 보통의 날처럼 집을 정리하고 청소를 했다. 그러고 돌아서니 아이들 하원 시간. 아이들을 데려오고 조금 있으니 남편이 장을 봐서 퇴근했다. 그리고 저녁을 만들었다. 둘째가 아직 어려서 외식보다는 집에서 식사하는 게 더 편하다. 이날 저녁 메뉴는 양 갈비 스테이크. 짧은 시간에 샐러드와 스테이크, 스테이크 소스까지 만들었다며 남편은 그것에 더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서른다섯 번째 생일날의 저녁 메뉴.
생일 카드를 만든 첫째 아들.

생일날이라 메뉴가 특별하긴 했지만 그날의 대화나 분위기는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다. 남편은 생일 선물로 뭘 해줄까 고민하다 뮤지컬 마틸다 티켓을 예매했다고 했다. 일단 적당한 것으로 예매는 해두었으나 다른 걸 보고 싶다면 얼마든지 바꿔도 좋다고 덧붙였다. 참 좋아하던 뮤지컬이었는데 아이 낳고는 거의 보질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변화된 나의 처지가 서운하거나 속상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 후에 나는 마틸다 표를 취소를 하고 라이언킹 내한 공연을 혼자 보러 가겠다며 호기롭게 한자리를 예약했지만 결국 그것도 보러 가지 않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 겨울에 혼자 예술의 전당까지 가나 싶은 생각이 우선 들었고, 첫째 아이가 8살이 되면 함께 보러 가야지 하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무엇보다 귀찮은 마음이 컸다. 결국 난 생일선물을 스스로 받지 않은 셈이 됐다.


남편은 내가 생일 몇 주 전부터 뭘 갖고 싶냐? 뭘 먹고 싶냐? 물어도 생일이 뭐 대수냐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생일인데 어떻게 설레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남편은 정말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갖고 싶은 것도 없다고 했다. 그땐 그게 참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 내가 그렇게 됐다. 


설레게 기다려온 내 생일은 물론 내가 태어난 날이긴 하지만, 365일 이어지는 나의 일상의 어느 하루일 뿐이라는 생각이 35번째 생일날 문득 들었다. 앞으로도 매년 다가올 것이고, 그렇게 몇십 번의 생일이 또 오겠지. 그리고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 내 생일이라고 해서 뭔가 특별한 걸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 또한 내 생일만큼 특별히 챙겨야 하는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남편 생일, 아이들 생일, 결혼기념일, 양가 부모님 생일, 크리스마스, 어린이날 등. 


며칠 전 첫째 아들 지안이가 물었다. “엄마, 생일이 내가 엄마 뱃속에서 나온 날이야?”하고. 아이는 생일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케이크에 꽂힌 초의 불을 끄고 갖고 싶던 선물을 받는 날인 건 알았지만 그날 자신이 엄마 뱃속에서 나왔다는 것까진 연결 지어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내가 “그렇지. 몰랐어?” 하고 말했더니 “그럼 엄마가 그날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고 대답했다. 자신의 생일은 누군가가 자신을 힘들게 나은 날이라는 걸 알고 저렇게 얘기하는 걸 보며 생일이라고 혼자 설레 했던 나는 그럼 뭐가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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