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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May 03. 2019

권고사직 당하던 날, 그날의 기분


20**년 7월 27일. 마지막 출근 날이었다. 두 번째 직장 생활이 끝났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는 그렇게 마음에 홀가분하더니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두던 날은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자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는 회사에서 잘렸다.


좋게 표현해 권고사직. 그렇다고 특별히 잘못한 게 있는 건 아니다. 매출이 좋지 않은 부서에 대한 회사의 경고 차원의 처사였다. 나와 같이 같은 부서에서 두 명이 함께 회사를 나와야 했다. 다른 부서를 포함하면 십수 명은 됐다.


회사의 권고사직 결정이 있기 며칠 전 친하게 지내던 총무 팀 친구로부터 내가 잘릴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매우 보수적인 회사 고문은 진보 매체에서 그것도 기자 일을 했던 나를 입사 때부터 탐탁지 않게 생각해왔다고 했다. 입사 때는 사정상 나의 입사를 거부할 수 없어 받았으나 다니는 내내 마뜩잖았던 모양이다.


‘내가 권고사직이라니. 드라마 같은데’ 처음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담담했다. ‘이 회사의 역량은 고작 여기까지구나. 역시 사람 귀한 줄 몰라. 나야 그렇다 치고, 우리 부장은 어쩌나 아이도 있는데’ 좋아하는 회사는 아니었기에 회사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함께 일하던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은 좀 남았다.


권고사직 얘길 들은 건 화요일. 마지막 출근일은 금요일. 내가 잘린다는 걸 알고 회사를 다니는 묘한 기분으로 남모르게 자리를 정리했다.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기분은 아니니 그날의 감정을 기록해둬야지 했던 생각도 난다. 그 나흘 동안은 기분이 참 묘했다.


목요일 점심, 같은 부서 전무가 점심을 먹자고 했다. 나는 알겠다며 따라나섰다. 유명한 집이라며 맛있는 식사를 사주고 근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을 거란 걸 알면서도.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너는 20여 년 간 내가 함께 일한 여직원 중 최고였다”고. ‘여직원이라고 할 건 또 뭐야. 하긴 같이 일한 남자 직원이 많긴 하겠지’ 전무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래도 이 사람들과 함께 일한 1년이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구나 싶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미안해하지 마세요. 이건 제게 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내내 미안해하던 전무의 얼굴을 향해 나는 웃어 보였다. 사실 여긴 아니다 싶어 그만두고 싶던 차에 잘리는 거라 나에게 나쁠 게 없을 것 같다는 얘긴 물론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퇴근을 하고 일찍 집에 돌아왔다. 회사에서는 내가 소송이라도 걸까 봐 걱정이라는데 사실 이 회사는 내가 그런 노력을 들여 다시 들어가고 싶은 회사가 전혀 아니라 난 그럴 생각조차 없었다. 하지만 담담했던 낮의 기분과는 분명 달랐다. 무엇보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건 나를 안쓰럽게 보던 다른 직원들의 눈빛.


그날 오후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며 좋아하는 책을 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마침 그때 읽은 글의 제목이 '이제 그만둬버릴까'였다.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지? 물론 나는 자의는 아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중.


비틀스의 프로듀서인 조지 마틴의 회고록 '귀야말로 모든 것 (All you need is ears)' 에 대한 이야기다. 비틀스는 여기저기 데모 테이프를 들고 레코드사를 찾아다녔지만 그들을 알아봐 주는 사람은 없었고 그러다 조지 마틴을 만났다. 그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지금의 비틀스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하루키는 말했다.

"인생 앞날은 알 수 없다"


동요하지 않고 꿋꿋할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은 내가 반성할 대목이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인생 앞날은 알 수 없고, 하루키는 서른 살에 작가가 됐다. 하루키의 한마디가 내겐 그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의 숱한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됐다.



“그래 내 인생 앞날도 알 수 없어!”



후에 나에게 권고사직을 귀띔해 준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다. 회사는 계속된 감원 정책의 일환으로 내가 있던 부서의 이사와 전무와도 계약을 해지했다. 이사는 그냥 다른 회사로 갔지만 전무만은 회사와 소송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그 후 회사는 중국에 큰 돈을 받고 회사를 팔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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