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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Aug 10. 2019

밤에 핸드폰을 놓지 못했던 이유

'어제 그냥 잘걸' 정신적 허기짐을 채운다 착각했다

보통의 날 나는 아이들을 재우면서 함께 잠들지만 어제처럼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낮에 마신 맛있는(그러나 카페인이 많았던) 커피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모두 잠든 뒤에도 나는 쉬이 잠들지 못했다.


아침 알람을 위해 발 밑에 두었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이것만 잡으면 누운 채로 2시간도 보낼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하지만, 그게 참 쉽지가 않다. 편하고 재미있는 온갖 것이 끝도 없이 나오는 이 요물을 거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분명 다음날 아침 몰려오는 피곤함으로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어제는 하루 종일 아이들과 있느라 핸드폰을 볼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걸로 특별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 봤자 카카오톡, 블로그, 카페, 브런치, 밴드 정도가 내가 핸드폰으로 하는 전부다.


결국 잠자리에 누워 핸드폰을 집어 들고는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https://www.freepik.com/


처음엔 조금만 보고 자려고 했다. 그러나 앱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핸드폰을 놓지 못하게 한다. 세상 구경을 좀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뉴스를 보다 보면 전부터 눈여겨보던 원피스가 팝업 광고로 뜨고, 파도 타듯 쇼핑몰의 옷을 구경하다 보면 30분은 그냥 지나간다.


그러다 낮에 대충 넘긴 카톡 메시지를 정독하기 시작한다. 누군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또 한참 대화에 빠져든다. 낮엔 대화가 끝나고 뒤늦게 톡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아 이야기에 끼지 못할 때가 많지만, 누구의 방해도 없는 밤 대화를 할 때면 내가 정말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 블로그, 카페를 순차적으로 돌며 글을 읽다 보니 벌써 12시가 다 돼 간다. 그래도 여전히 잠이 오지 않는다. 작은 휴대폰 하나를 들고 유유히 세상을 돌아다니던 나는 문득 양쪽에서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깜깜한 방 안, 휴대폰 불빛 속에 킥킥대는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왜 이 밤, 잠들지 못하고 핸드폰을 하고 있는 걸까?


어제만 해도 그렇다. 나는 낮 동안 아이들의 스케줄에 내 모든 것을 맞췄다. 아침을 해 먹이고, 치우고, 놀아주고, 책을 읽어주고, 또 밥을 하고, 치우고, 같이 뒹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간식 먹이고의 무한 반복. 그러다 저녁을 먹이고 씻겨 침대에 눕혀 재우면 엄마로서의 일이 끝난다.


이렇게 하루 종일 아이에게 내 모든 시간을 맞춘 날 밤에는 내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커진다. 나를 위한 일종의 휴식이랄까? 적어도 이 밤 이 시간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을 만회하려고 이렇게 잠들지 못하고 핸드폰을 잡고 있구나. 일종의 보상 심리 같은 건가 보다.


물론 침실 밖으로 나가 무언가를 시작할 수도 있지만, 하루 종일 육아로 지쳐버린 몸을 일으키긴 쉽지 않다. 몸과 정신의 부조화. 그러니 몸은 편하지만 정신은 뭔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인 핸드폰을 들고 정신의 허기짐을 채우는 수밖에.


한 때 이것이 나를 사회와 연결해주는 유일한 고리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아이가 어려 밖에도 못 나가고 집에만 있을 때 대화를 나눌 사람도, 정을 붙일 곳도 없을 때 이 작은 휴대폰이 들려주는 소식을 듣는 게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너무 휴대폰만 보는 게 아니냐’는 남편의  핀잔에 ‘당신이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내 맘을 아냐’고 쏘아붙이던 그런 때가 있었다.


아이들 방학이 시작되고 2주 동안 내 시간이 전혀 나지 않자 아이들을 재우고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었다. 문제는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고 나의 헛헛한 정신이 채워지는 건 아니란 거다. 다음날 아침 ‘아 어제 그냥 잘 걸’하는 후회가 밀려오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자 그 숱한 밤들의 무의미한 핸드폰질에 후회가 밀려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핸드폰 시계를 보니 벌써 2시가 넘었다.



다음 날 아침, 엄마보다 먼저 일어난 아들들은 “엄마, 언제 일어날거야?” 하며 내 기상을 재촉한다. 원래도 잘 못 일어나지만 오늘 아침잠은 더욱 깨지 않는다. 안 일어나는 게 아니라 못 일어나는 거다. 어제 그렇게 늦게 잠들었으니 당연하지. 오늘도 찌뿌둥한 몸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어제도 알고 있었지만  어제의 휴대폰질은 역시 후회만 남았다.


 확실해졌다. 나의 정신적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 잠자리에서 들었던 한밤 중 핸드폰은 이젠 안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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