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 다시 와야 하는 이유

그 유명한 케이블카도 한 번 못 타봤네

by 김수정

점심은 어부의 부두, 피셔맨스 워프(Fisherman's Wharf)의 피어 39(pier 39) 근처에 위치한 유명한 보딘 베이커리에서 하기로 했다. 1849년 문을 열었으니 무려 1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입구부터 빵내음이 진동을 하고 진열장엔 빵이 가득하다. 천장에 연결된 레일로 빵이 담긴 바구니가 이동한다. 식당 옆 공간에서 직접 빵을 만들고 있는데 아이들은 이걸 구경하는 게 더 재밌는 눈치다. 여기서는 사워도우 안에 크램차우더를 담아내는 메뉴가 가장 인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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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보딘 베이커리와 그곳에서 가장 유명한 메뉴인 크램차우더.


남편과 내 입맛엔 맛있었다. 대단히 특별하진 않지만, 두루 사람들의 입에 맞는 맛이다. 하지만 우리 집 아이들에겐 아닌가 보다. 빵을 뜯어 크램차우더에 한 번 찍어 먹고는 자기 맛이 아니란다. 첫째가 그러니 둘째도 시큰둥. 크램차우더가 입맛에 맞지 않으면 빵이라도 먹어보라고 했지만 빵에서도 신맛이 나 싫다고 했다.


남편은 아이들이 잘 먹을 거라며 큰 기대를 한 모양인데 한 번 먹고는 입에도 대지 않으니 벌써 맘이 상했다. 나는 저녁까지 배고플 아이가 안쓰러워 속이 상한다. 하지만 속상한 거야 부모의 마음인 것이고, 저녁까지 배가 고픈 걸 참아야 하는 건 아들의 몫이다(낯선 음식을 잘 먹지 않는 우리 집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자).


결국 남편과 나는 속이 상하지만 배는 부른(아이들 몫까지 다 먹었으니) 점심식사를 끝낸 뒤 피어 39(Pier 39) 근처에 산다는 바다사자를 보러 갔다. 이곳은 아이가 가장 기대한 곳이기도 하다. 정말 이런 곳에 바다사자가 사냐며 도착할 때까지 믿을 수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바다사자가 사는 건 정말 뜬금없긴 하다.


바다사자가 있다는 곳이 가까워 오자 비릿한 냄새와 함께 바다사자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몰려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도 그 틈에 합류했다. 아이는 정말 바다사자가 있다며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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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사자를 보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졌다. 뜬금없이 왜 이런 곳에 바다사자지? 내용은 이렇다. 1989년 10월 샌프란시스코에 지진이 난 뒤 몇 마리의 바다사자들은 이곳 피어 39의 데크(dock)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갑자기 찾아와 자리를 잡고 앉은 바다사자를 두고 고민했고 결국 어부들은 그들의 데크를 바다사자에게 내주기로 한다. 그렇게 피어 39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다사자의 서식지가 됐다. 전문가들은 이곳이 바다사자의 먹이가 많고 천적이 없는 데다 지내기에도 좋아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처음엔 300 마리 였던 개체수도 2009년 조사 때는 1701마리까지 늘었다고 한다.


바다사자를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아이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마술쇼에 한 번 더 눈길을 뺏겼다. 생각보다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남편은 주차 시간을 연장하고 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고 나와 아이 둘은 그곳에 앉아 마술쇼를 구경했다. 사람이 상자에 들어가고 그 안을 칼을 집어넣는 전통적인 마술이었는데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진 게 어찌나 귀엽던지.


우리는 커피숍을 찾아 걷다 케이블카 정거장을 발견했다. 마침 이곳이 종점인 파웰 맨슨(Powell & mason street) 노선의 케이블카가 도착했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끝에 잠시 서있다가 직접 사람이 케이블카를 돌려 방향을 바꾸는 모습을 보게 됐다. 21세기에 이런 아날로그함을 보게 되니 이곳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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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그곳에 서서 시간표를 확인하며 다음에 올 때는 케이블카를 꼭 타보자 했지만 결국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우린 케이블카를 타지 못했다. 이날은 예매해둔 야구 경기를 보러 가야 했고, 다음에 왔을 때는 골든 게이트 브리지 아래 해변에서 석양을 봐야 했다. 또 다른 날엔 사이언스 뮤지엄의 운영시간과 아이들의 컨디션에 우리의 일정을 맞춰야 했다.


샌프란시스코를 차로 여행한 것은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자전거와 이층 버스, 케이블카와 페리를 타지 못한 건 내내 아쉬웠다. 자전거를 타고 골든 게이트 브릿지를 건너 소살리트 마을을 돌고, 그곳에서 출발하는 페리를 타고 바다를 건너고, 낭만적인 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곳곳을 누비는 여행을 우린 하지 못했다. 낭만과 현실 사이에서 나는 낭만을 선택하고 싶었지만, 남편은 주어진 시간 안에 계획한 것들을 하기 위해서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역시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선택과 포기의 연속이다.


다시 이곳에 오면 그때는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곳곳을 누비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보기도 하고, 2층 버스에 몸을 싣고 달려볼 생각이다. 그러다 케이블카를 타로 천천히 낭만의 샌프란시스코를 만나야지. 그리하여 나는 다시 샌프란시스코에 와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행의 낭만을 이해할 수 있을 때가 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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